예강1  

 

 

신기남,"독립투사,유족에 선친대신 사과"  

2004.8.16 (월) 21:07   노컷뉴스

 

(부산=CBS정치부)김재덕/도성해기자=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자신의 선친이 일본군 헌병으로 복무했다는 신동아 보도와 관련해 "목숨바쳐 싸운 독립투사와 유족들에게 선친을 대신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을 방문중인 신기남 의장은 16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고위직은 아니었지만 선친의 경우도 친일진상규명의 대상이 될수 있다고 본다"며 "조사하겠다면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신기남 의장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밝히려 했다"며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선친은 일제시대때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가 군에 입대했다고 들었다"며 "광복후에는 경찰에 입문해 서남지구 전투사령관으로서 지리산 지구 내전을 종식시켰다"고 말했다.
신동아는 17일 발매되는 9월호에서 "신기남 의장의 부친 신상묵씨가 지금의 하사 계급에 해당하는 일본군 헌병 오장이었다"며 신씨의 일본군 지원병 합격자 명단과 창씨개명기록등을 공개했다. 신동아는 또 "신상묵씨의 대구사범 동기생의 말을 인용해 "신씨가 1943년 6월 충북 옥천군 죽향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헌병 오장 군복을 입은 신씨가 말을 타고 집으로 찾아와 '일본군 징병 기피자들을 찾고 있는데 정보가 있으면 달라'고 해 '모른다'고 답했다"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CBS정치부 김재덕 기jdeog@cbs.co.kr  (CBS정치부 정보보고)
신기남 의장 기자간담회 전문
"선친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처음 꺼낸다. 굳이 숨기려하지 않았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밝히려고 했고 지금이 기회라고 본다. 세세한 내용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아는 것은 선친은 일제시대에 대구사범 졸업하고 교사 생활하다가 군에 입대했다고 들었다. 아시는 분들로부터 들은 얘기에 의하면 군생활 하면서도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했고 동족을 사랑했고 은혜를 많이 베풀어서 칭송이 높았다. 광복후에는 경찰에 입문, 태극무공훈장까지 받았다. 그리고 서남지구 전투지구 사령관으로서 지리산 지구에서의 내전을 종식시켰다. 그 과정에서 철저한 인화전략으로 포로들을 포용하고 민심을 얻는 전략으로 칭송이 높았다. 주민 스스로 세운 공덕비도 남아 있다. 한국전쟁중에 구례 화엄사를 지켜낸 것도 선친의 업적이라고 주위 분들이 말하고 있다. 그 곳이 전쟁의 본부 노릇을 하니까 군은 이곳을 소각하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선친이 문화재 소각 끝까지 반대해서 막아냈다고 전해내려오고 그 내용이 공덕비로 남아 있다. 공직 생활이외 분야에는 수완이 없었다. 가족에게 많은 어려움을 남기기도 했다. 일생을 청빈하게 사셨다. 애국애족의 인생관 심어주기 위해 애썼다 일제하에서의 군생활이 선친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이해는 하지만 한편으로 목숨바쳐 싸운 독립투사와 유족들에게는 아버님을 대신해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선친의 경우도 친일진상규명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고위직은 아니었다고 한다. 조사하겠다면 최대한 협조하겠다. 어떤 경우에도 친일반민족 행위 진상은 규명되야 하고 친일 잔재는 청산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은 계속되야 한다는 것이 저의 신념이다.
->신동아 내용은 사실인가?
= 저도 잘 모르는데 추후에 알아보겠다. 교사를 하다가 군에 입대했다는 것만 알고 있다. 그리고 광복후에 경찰 창설된 이후에 경찰에 입문하셨다고 알고 있다. 군 입대 과정이나 계급 등은 알지 못했다.
앞으로 밝혀져야 될 것으로 본다. 저도 좀 알고 싶다.
->관련된 사진이나 자료가 있나?
= 그런 것은 없다.
->일전에 부친이 친일 경찰이었다는 논란이 있었을때 군 입대 경력 등을 밝힐 기회가 있었는데?
= 광복후에 경찰에 입문했다고 해명했는데, 언젠가는 밝혀질 것으로 봤다. 선친의 문제와 친일진상규명은 별개의 문제다. 개인적인 것과 민족적인 문제는 구분되야 한다. 제 선친이 일본군에 있었다고 해서 친일진상규명에 나서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선친의 일이 명백히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정치적으로 더 진출하게 되면 언젠가는 밝혀질 것으로 봤다. 후련한 것은 독립투사와 그 후손들에게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럽다고 본다.

(끝) (CBS 창사 50주년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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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1) 음...

촌평2) 저번 미국 忠米액션 < 클릭후 16번의 촌평1) > 때미 기막혀 했는디... 역시나... 애비의 전철을 밟지 말지 그랬어. 애비가 충일에 전념했었다면 내 피도 그럴 것이라고 전율을 느꼈어야지. 신기한년 < 클릭후 10번의 촌평2) >신기한넘 몸통안에 흐르는 대일본? 쪽빠리 충성똥개 피가 정화되려면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겠지?  '나는 나다!!' 외칠 수 있을려면 뼈다귀 대패질은 기본인디...

촌평3) 내가 당했던 2000년 9.14 테러이후, '종자'에 대한 관심이 유별난 예강이다. 종자가 나쁘면 그 후손들의 후손까지 좋은 열매를 거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포일보 윤사장=됴다.... 언론은 심각히 다뤄야 할 부분이다.

촌평4) 반민특위가 길거리에서 마빡에 총알박히고, 각목으로 타살되었기 때미 나는 승냥이승만 넘을 아주 매우 싫어하지. 김구주석님을 많이 사랑하지만 잘 내색을 안하지. 忠日 후손된 <클릭~> 기회주의자들이 얼마나 기민한 가? ㅎㅎㅎ, 어느새 독립투사 집안되어, 김구주석님 편에 붙어서 간쓸개 붙일 곳을 찾을까 우려~

촌평5) 670쪽 내 집필서적 '이땅의 쿠데타'에서 가상전개, 국회에서 반민족행위평가특별위원회군사쿠데타평가특별위원회 활동을 전개시켰지. 왜? 역사는 국가의 생명.

촌평6) 가증교활 됴다의 수제자다운? 불량놈!현은 내 민족의 절실한 민족정통성의 미래때미 민족정통성의 과거 현재를 더듬질하는 가? 과거사 청산을 울부짖는 가? 아니다. 먼저번 나에게 당한 보복? 대척점에< 클릭후 1번의 촌평19) > 있다?  대척? 쩜?? ㅎㅎ, 1차원 수준이 3차원 x,y,z 축에 꼴리는대로, 3차원 좌표를 니 맘대로 찍냐!! ㅎㅎㅎ, 꼴갑육갑이었지. 과거사 청산의도가 불순하기 때미 불량놈!현의 대가리 수순을 똥개수준으로 격하한다.

 

 

 

 

 

 

 

   예강2  

 

辛의장, 부친 일본군 헌병 복무사실 시인

2004.8.17 (화) 07:14   조선일보  

[조선일보 정우상 기자]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장은 16일 ‘부친 신상묵(辛相默·1916~1984)씨가 일본군 헌병 오장(伍長·하사)이었다’는 시사 월간지 신동아 9월호 보도에 대해 “아버지가 일제 때 교사하다 군에 들어갔다”고 인정했다. 신동아는 신상묵씨가 1938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전남 화순군 청풍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1940년 일본군에 지원, 조선총독부 국군병 지원자 훈련소에 입대했다고 보도했다.

신 의장은 지난달 인터넷에 부친의 일경(日警) 복무 주장이 제기되고 이를 일부 언론이 보도하자 “제 선친에 대해 일경 간부를 지냈다느니, 친일파라느니 기초적인 사실 확인작업도 없이 오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허위 사실, 명예 훼손에 해당된다”고 부인했었다.

신 의장은 지금까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추진 중인 친일 진상 규명을 앞장서 ‘역사적 당위’로 강조해 왔으며, 16일 오전 확대간부회의에서도 “역사문제에서 밀린 숙제를 그냥 놓아두고 다음 진도를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신 의장은 부친의 일제(日帝) 헌병 근무 경력이 공개되자 “독립투사 유족들에 사과한다”고 말했다.

한편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은 “신 의장이 스스로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신 의장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거취문제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정우상기자imagine@chosun.com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촌평0) 눈을 지그시 감고 뭐하시나. 소금기둥된 롯의 아내를 생각혀봐요. 과감히 미련을 버리고, 똥다리 마을이장직을 한강에 투척, 투신?하게. 세상 권력과 명예, 부귀영화는 항상 그래. 헛되고 헛되도다~~ 2004년 그 나쁜년의 폭염, 한여름 밤의 꿈, 백일홍이여~ ㅎㅎㅎ

촌평1) 애비가 신기년넘이었던 아니던 그게 뭐 큰 문제인 감? 땡감영감고연감?  문제가 있다면 북한고무찬양죄? 미국가서 忠米, 대담하게 아양떤 죄가 천인공로할 만행이었지. 마을이장이라면 몰라도, 국가중심축 한자리 버티는 사람이, 국가의 체통몸통 품위유지 했어야지. 난 그걸 아주 심각하게 문제 삼고 싶은 거여.  빨개벗게. 삭뚝질 당하기 전에....

촌평2) 혼자 빨개벗기 싫으면 목욕탕가자고 불량놈!현을 꼬시던말던...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떻하든 불량놈!현을 옷과 격리, 홀라당하시게. 방법은 많지? 지금 하야 결단하면 그리 많이 늦었어도 후회많지 않을 거라고, 지리산빨치산 초야에 묻혀 추악한 빨간세상을 비웃으며 만고땡! 호연지기 삶을 살자고 꼬셔봐아~ 그네도 홀라당하자고 꼬셔봐. ㅎㅎㅎ

 

 

 

  예강3  

 

 

辛의장, 즉각 사퇴 거부  

  2004.8.17 (화) 08:36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안수훈 기자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장은 17일 부친의 일본군 헌병 근무 파문과 관련, "현재로서 거취표명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 해 당장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신 의장은 이날 오전 MBC 라디오에 출연, "당 의장으로서의 거취문제는 절대 가 볍게 처신할 일은 아니며, 중지를 모으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신 의장은 특히 `금명간 거취를 밝힌다'는 보도에 대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 으며, 사실이 아니다"면서 "국민여론과 당원동지의 뜻을 지켜볼 것이며, 언제 거취 를 밝히겠다고 하는 것은 가볍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어 "친일진상규명법 등으로 여야간의 대립구도인데 앞으로 불편하지 않 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민족정기 의원모임 멤버이고, 친일진상규명법 발의에 참여했으며, 선친문제와 별개로 이 문제는 중요한 역사적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적극 참여할 것이며, 당 의장으로서 원만하게 성사되도록 열심히 할 것" 이라고 말했다.
ash@yna.co.kr

촌평1) 처음부터 민족정기 의원모임 멤버? 忠日 후손된 <클릭~> 기회주의자들이 얼마나 기민한 가? ㅎㅎ, 내가 염려를 고무줄로 오라질한 이유지.

촌평2) 사내답지 못하군. 혹시? 옷벗으면, 그만두면 생계 막막?

 

 

 

  예강4  

 

 

신의장 일단 ‘사퇴 시간벌기’  

2004.8.17 (화) 17:53   한겨레

 

[한겨레] ■ '아버지 일본군 헌병복무' 거짓말 파문
선친의 친일문제로 궁지에 몰린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이 사퇴 여부를 놓고 장고에 들어갔다. 신 의장은 17일 울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가볍게 처신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며 “국민여론을 보고 당의 중지를 모아보겠다”고 말했다. 즉각적인 사퇴압력을 피하며, 판단할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당 지도부는 즉각 신 의장 엄호사격에 나섰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이날 예정에 없던 원내대표단 회의를 열어, “신 의장 거취 문제가 연좌제가 돼선 안 된다”며 “친일진상규명법은 연좌제를 하자는 게 아니며, 부친의 책임과 아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문희상 의원도 “신 의장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말을 않은 것일 뿐이고, 물러날 경우 당장 대안도 없다”고 변호했다. 그러나 사퇴론도 만만치 않다. 안영근 제1정조위원장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빠른 시일 내에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정도면 정치할 자격이 없다”고 ‘정치생명’까지 거론했다. 그는 나아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신 의장의 경우와는 틀리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에 대해 거짓말한 적이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문제의 본질이 ‘거짓말 논쟁’에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여론 보고 당의 중지 모아 보겠다"
당선 "대안없다-자격없다" 두 목소리
당내에서도 사퇴 문제에 대해선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 의원들을 두루 접촉한 한 중진의원은 “사퇴에 대한 의견 분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신 의장도 “자리에 연연해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측근들의 얘기다. 다만 물러날 경우의 정치적 효과에 대한 검토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야당과 일부 언론의 공세에 밀리는 모습으로 사퇴할 경우 이제 불붙기 시작한 과거사 규명에 대한 여권의 전열이 흐트러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당 관계자는 “내년 2월 예정된 전당대회 때까지의 지도부 공백 기간이 너무 길다”고도 말했다. 또 신 의장의 정치적 복권을 위해 최소한의 명분을 마련할 필요성도 사퇴의 주요 전제조건으로 보인다. 한 측근은 “정동영 전 의장도 의장직 사퇴라는 카드를 써 총선 과반의석을 확보했다”고 비교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신 의장이 그럴듯한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이래저래 신 의장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촌평) 영양가없는 시간벌기? 차라리 근면하게 돈이나 벌어라. ㅎㅎㅎ

 

 

 

 

  예강5  

 

 

바둑 두고 도시락 먹는 '백범 집무실' "민족이 이 지경이라는 게 부끄럽다"   

2004.8.17 (화) 15:17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조호진 기자]

 
▲ 임정순례단이 1만3천리의 대장정 해단식을 갖기 위해 백범 집무실을 찾았으나 삼성병원 측이 의사들의 휴게실이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이에 순례단이 병원 복도에서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2004 오마이뉴스 조호진
 
 
 
▲ 김인수 대표는 '비운의 역사현장 아! 경교장'이라는 책이 놓인 자리로 안두희의 흉탄이 뚫고 지나갔다고 설명했다.
 
ⓒ2004 오마이뉴스 조호진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최초 남북협상의 산실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 당한 비운의 역사현장 '경교장(京橋莊)'은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강북삼성병원의 사유화로 인해 독립운동 후손조차 접근이 차단돼 왔다.

이 병원은 문화재로 지정된 경교장을 천덕꾸러기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병원 측은 백범의 집무실을 보존하기는커녕 바둑을 두거나 잠을 자는 등 야간 당직의사 휴게실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광복절을 맞아 경교장을 방문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격분하게 했다.

지난 4일 중국 상하이(上海) 마당(馬當) 소재 '대한민국 임시정부(이하 임정)' 청사 앞에서 출정식을 갖고 임정이 일제의 추격을 피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광저우(廣州) 및 충칭(重慶) 등의 도시를 11박 12일 동안 순례하고 광복절에 맞춰 귀국한 '임정대장정순례단(단장 이윤구 대한적십자사총재)'은 해단식을 갖기 위해 경교장을 찾았다가 병원 측의 어이없는 처사에 분통을 터뜨렸다.

15일 오후 4시 30분께 서울 종로구 평동 강북삼성병원(구 고려병원) 본관 2층 백범 집무실을 찾은 임정대장정순례단원 48명이 문을 열어줄 것을 요청했지만 병원 측은 의사들의 휴게실이라며 거부했다. 이에 격분한 순례단원들은 1시간 동안 백범 집무실 앞 복도에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임정대장정순례에 참가한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은 "친일세력들이 역사청산과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상징적인 현실"이라며 "백범 선생이 암살 당한 현장이자 돌아가시기 전까지 집무했던 역사의 현장으로, 선생의 혼이 서려 있는 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 돌아갈 수 없다"며 병원 측의 태도를 성토했다.

재야 사학자인 이이화(전 역사문제연구소 소장)씨는 "임시정부 유적과 독립투쟁의 1만3천리를 순례하고 귀국해 백범 선생 집무실에서 해단식을 갖기 위해 왔다"며 "민족의 지도자였던 백범 선생과 독립운동의 한(恨)이 서린 경교장이 재벌병원의 소유물이 돼 독립정신을 훼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통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바둑두고 도시락 먹는 백범 집무실..."민족이 이 지경이라는 게 부끄럽다"

 
▲ 1시간 여 농성 끝에 백범 집무실에 들어간 순례단원들은 탄식을 토했다. 한 참가자는 "백범 선생의 집무실이 바둑을 두고 도시락을 먹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는 게 너무 한심하다"며 혀를 찼다.
 
ⓒ2004 오마이뉴스 조호진
 
의사들의 휴게실로 전락한 백범 집무실에는 1948년 4월 19일 경교장 발코니에서 군중들에게 통일정부 수립의 절박성을 역설하는 백범의 사진 판넬 등과 백범의 친필 액자 <독립정신>과 <행복> <백범전집> 등 관련 서적과 비디오 테이프가 책장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었다.

그리고 백범이 흉탄에 쓰러진 자리에는 의사들이 사용하는 침대가 놓여져 있고, 그 옆에는 쓰레기통과 전자레인지를 비롯해 도시락이 담긴 박스가 방치돼 냄새를 풍겼다.

1시간에 걸친 농성 끝에 집무실로 들어가 이를 목격한 임정대장정 순례단원들은 탄식을 터뜨렸다. 일부 참가자들은 역사의 무지에 내몰린 백범 선생을 생각하며 흐느끼기도 했다. 한 참가자는 "백범 선생의 집무실이 바둑을 두고 도시락을 먹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는 게 너무 한심하다"며 혀를 찼다.

이윤구 대한적십자사총재는 임정대장정에 대한 회상과 백범을 추념하는 편지를 낭독한 뒤 자신이 만든 '광복의 노래'를 부르며 흐느꼈다. 이 총재는 "처절한 조국의 현실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며 "선생께서 이런 모습을 보면…. 민족이 이 지경이라는 게 부끄럽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인수 실무단장(54·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은 "('아! 경고장 비운의 역사현장' 표지를 가리키며) 백범 선생이 흉탄을 맞고 돌아가신 뒤 통곡하는 저 시민들을 봐라"며 "(침대를 가리키며) 선생께서 흉탄에 쓰러진 역사의 현장에서 침대를 놓고 잠을 잘 수 있는가"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최충묵(76·항일의병장 최구현 선생 종손)씨는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해놓고도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 정권은 백범 선생의 정신을 말살시키기에 급급했다"며 "독립군을 토벌하던 박정희 기념관에는 200억씩 지원하면서도 대표적 독립운동가의 유적을 방치하는 이 나라 정부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삼성병원 "11월쯤 백범기념실 만들어 시민들에게 공개할 계획"

 
▲ 경교장과 삼성병원... 삼성병원 측은 오는 11월쯤 백범기념실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2004 오마이뉴스 조호진
 
서울시 문화재 관계자는 16일 "문화재로 지정한 것은 공식적으로 가치를 인정한 것이지 사유재산을 침해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며 "백범 선생 집무실 공개를 권유할 수는 있지만 행정명령으로 강요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삼성병원 측에 백범 선생 전시실을 만들도록 권유하고 있으며 병원 측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내년쯤이면 24평 규모의 전시실이 시민들에게 개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북삼성병원 관계자는 "(임정대장정순례단의 방문) 연락을 받지 못했다. (백범 집무실을) 야간 당직의사들의 휴게소로 이용하고 있으며 환자 편의를 위해 집무실 공개를 제한하고 있다"며 "오는 10월말 본관 증·개축이 끝나면 여유 공간이 생겨 오는 11월쯤 백범기념실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공개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반면 김인수 실무단장은 "지난달 26일 대장정 출발을 앞두고 경교장에 헌화하면서 해단식을 경교장에서 하겠다고 병원측에 통보했다"며 "집무실을 엉망으로 사용하는 것을 감추기 위해 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경교장은? … 반탁 포고령 발표, 남북협상 결행 장소, 그리고 '백범일지'…

 
▲ 경교장 안에 차려진 김구 선생 빈소. 온 국민이 항일투사이자 민족지도자인 백범의 죽음을 애도했다.
 
ⓒ2004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일제하 광산재벌 최창학은 건평 265평 규모의 일본식 2층 석조건물인 경교장을 환국한 백범에게 무상 임대했다. 백범은 갑신정변 당시 일본공사 죽첨(竹添)의 성을 따 지은 '죽첨장'을 '경교장'으로 바꾸었다.

백범은 1945년 11월 23일부터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1949년 6월 26일까지 경교장을 집무실 겸 거처로 사용했다. 백범은 이곳에서 임정국무회의를 열어 반탁 포고령을 발표했으며,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남북협상을 결행하고 또 자전적 일기인 '백범일지'를 썼다.

백범이 서거한 뒤 최창학에게 돌려진 경교장은 중국대사관저로 사용되었다가 6·25 당시에는 미군 특수부대가 주둔했다. 6·25 전쟁이 끝난 뒤에는 월남대사관저로 사용되다가 1966년 삼성재단에 넘어갔다. 삼성은 1968년 개축할 당시 철거할 예정이었으나 고 이병철 회장의 뜻에 따라 철거하지 않고 내부 수리만 했다.

삼성병원은 지난 1996년 2월 17층 규모의 병원을 신축하기 위해 경교장을 철거할 계획이었으나 여론의 반발로 무산됐다.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은 지난 96년부터 경교장 복원 및 국가문화재 지정을 위해 서명운동 등을 꾸준히 벌였지만 국가문화지정은 무산됐다. 서울시는 지난 2001년 4월 6일 삼성생명(주) 소유로 된 경교장을 유형문화재(제129호)로 지정했다.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김인수 대표는 "경교장 복원 및 국가문화재 지정을 위해 8년간 노력했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했고, 서울시가 문화재로 지정했지만 삼성은 공개를 차단했다"며 "헌법 전문에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하면서 환자들도 시민들도 모르도록 경교장을 방치한 정부에게 과연 정통성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또한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를 제외하고 경교장 복원을 반대할 국민은 없다. 다만 친일파 세력들은 백범 선생의 자주독립과 통일정부 수립 정신이 드러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며 "삼성병원에 대체부지를 마련해주고 경교장을 성역화 할 것을 제안했지만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고 정부를 성토했다.

/조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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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0) 내가 푸른곰팡이 기와집 근처 사직동 살 때였지. 한번은, 새벽에 남대문 시장에서 소주에 만취, 남산공원 김구주석님 동상에 갔지. 가끔하던 짓이었지. 동상앞에서 비틀휘청이다가 동상한번 둘러보려고 뒷편으로 갔는데 어떤 젊은 넘이 술에 쩔어 자빠져 자고 있더군. ㅎㅎ, 강대국에 대가리 조아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충성을 맹세하는 신기년신기넘을 보고 내가 씁쓸해 하는 것이 하나 있지. 뭐냐하믄, 대한민국의 권력과 부와 명예를 쥐고 있는 집안내력을 보면 전부 일본에 충성하던 집안이지. 그래서 그 忠日집안 후손들은 물질이 풍족하여 많이 처먹고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반대로, 독립군 집안은 쑥대밭되어 이 시대의 천덕꾸러기 집안이 되었다는 거지. 왕거지. 배울 기회도 없었고, 돈맛은 배추 잎새가 최고? ㅎㅎㅎ

촌평0-1) 내가 1994년 '반민족행위평가특별위원회' 기획을 한 이유가 민족정통성의 미래때미 였어. 그래야 냉정하고 무서븐 미래에 내민족이, 국가가 당당하게 생존할 수 있지.

촌평0-2) 난 국제역학 계산력뿐 아니라, 과학기술의 최고를 다량 보유한 한국사람이여. 그리고 세계금융전략가여. 난 어느 국가던, 강대국이던 약소국이던 차별하지 않고 수평적 경제와 과학기술, 세계금융 교류를 기본으로 하지. 우 ㅎㅎㅎㅎㅎㅎㅎ

촌평1) 삼성전자를 잘 경영해왔듯 건희년이 앞으로 잘하것지? 난 근면성실하게 잘하는 년넘은 봐주는 경향이 있지.ㅎㅎㅎ

촌평2) 내민족이 살길은 미국에 아양떠는 것도 아녀. 미국처럼, 내 민족을 억울하게 손해보게 하면 나는 어느국가던 마구 쥐어뜯을 예정~~  ㅎㅎ, 냉철이성적 국제역학 계산 능력이 없으면, 가까운 장래에 내 민족과 국가의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미, 무지 신중과감해야하지. 나는 현대사의 구심력을 항상 구심점 김구주석님을 통해 하려는 성향~

 

 

 

  예강6  

 

 

“신의장에 대한 감정 없다...친일 진상규명이 중요”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 부친 친일의혹 최초 제기한 네티즌 윤태곤씨

 

글, 사진=미디어다음 / 김진화 기자

미디어다음   2004.8.17(화) 19:15

열린우리당 신기남 당의장 진퇴논란으로까지 비화된 신 의장 부친의 과거사 의혹이 최초로 제기된 곳은 언론도 정치권도 아닌 인터넷 공간이었다. 지난 7월 13일 신 의장 부친의 과거사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해 적잖은 파문을 낳았던 인터넷 논객 윤태곤(31)씨가 미디어다음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정치토론사이트 진보누리(http://www.jinbonuri.com)에서 ‘으허허’, ‘루이’라는 필명으로 활약해 온 윤씨는 “신 의장 개인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없지 않지만, 이번 일을 통해 친일진상규명 작업이 보다 확실하게 이루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정치권이 지금까지 보여 준 바와 같이 이 문제를 정쟁으로 오염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우려를 전했다. 그는 “17대 국회에서 개정된 법안이 대상자 범위에 있어서는 결코 16대에서 통과된 법안보다 나아졌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 헌병 오장(하사관)으로 활동했던 신 의장 부친의 경우 16대 법안에서는 조사대상자에 포함되나 17대 개정안에서는 대상자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의장인 신기남 의원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작고한 윤씨의 조부는 일제 하에서 항일 좌익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독립투사다. 그는 최근까지 가족들이 쉬쉬해 온 조부의 행적을 각종 문헌과 기록, 친지들의 증언을 통해 치밀하게 추적해 이 달 초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대상자 심사 서류를 제출했다. 그는 이달 초부터 진보적 인터넷 매체인 미디어참세상(http://media.jinbo.net) 기자로 일하며 친일진상규명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다음은 윤태곤씨와의 일문일답.

 
 

-지난 7월 13일 신기남 의장 부친 신상묵씨의 일제 하 행적에 대해 최초로 문제제기를 해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는데, 당시 어느 언론도 관심을 갖지 않던 신 의장 부친의 행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신기남 의원이 당의장 취임 직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찾아가 부친 사이의 친분을 강조한데서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1951년 박정희 육영수 결혼 당시 부친 신상묵씨가 청첩인이었다며 친분을 아주 구체적으로 강조했다. 같은 대구사범 출신으로 한 명은 일본군에 입대를 했는데 다른 한 사람은 무얼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났다. 신기남 의장 홈페이지 들어가 보니 부친의 경력이 꽤 상세하게 소개 돼 있었다. 대구도경 보안과장, 빨치산 토벌대장(서남지구 사령관)을 거쳐 경무관까지 올랐다고 나와있었다. 거기에서 의혹이 커졌다. 통례에 따르면 해방 이후에야 경찰에 입문해서는 그렇게 빠르게 진급할 수 없다는 데 주목했다. 인터넷상에서 구할 수 있는 관련자료를 보다 심층적으로 검색했다. 그러던 중 대구 매일신문에 대구사범 출신으로 훈도(교사) 생활을 잠시 하다 일제 하에 경찰에 투신했고, 그 이후에도 경찰 생활을 한 것으로 서술 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해 가던 중 17대 국회에서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정이라고는 하지만 16대 때 통과된 원안에 비해 결코 나아졌다고 볼 수 없는 맹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내가 의혹을 가지고 있었던 신상묵씨 같은 경우 일제 경찰을 거쳐 미 군정, 자유당 시절 동안 경찰 고급간부로 승승장구 했는데 조사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구매일신문에서 이미 의혹을 제기했던 셈인데 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인가. 대구 매일신문은 ‘실록 박정희’라는 시리즈물을 연재했는데 신상묵씨와 관련된 내용은 단 한 두 줄만 언급돼 있어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 같다.
 
-최초의 의혹제기 직후 조선, 동아 두 신문사가 보도를 하는 바람에 파문이 커졌는데 당시 조선 동아는 친일진상규명 조사대상자 확대라는 내 글의 진의와는 관계없이 정략적으로 개인의 행적에 대한 부분만을 발췌해 친일진상규명법 자체에 대한 물타기를 시도했다. 나로선 그렇게 확대될 줄 몰랐는데 그들 신문이 기사를 쓰는 바람에 일이 커지게 됐다. 당시 열린우리당과 신 의장 측에서는 거세게 반발했는데 결과적으로 사실로 밝혀져 파장이 일고 있다. 당시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이라는 사람이 ‘법의 단죄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다’며 엄포를 놓았다. 신 의장 본인은 ‘부친은 해방 때까지 화순초등학교 훈도를 지내다가 해방이후 경찰에 투신했을 뿐 친일과는 관계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가 진보누리 운영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와 거세게 항의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당시 제기했던 의혹이 결국 사실로 밝혀졌는데, 친일 문제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신기남 의장 개인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내 문제제기의 본질이 어느 개인의 가족사를 문제삼자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일진상규명 문제가 정쟁화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명확하고 철저한 조사가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권의 합의 및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랄 뿐이다.
-개인적으로 친일진상규명법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우리 국민 어느 누가 이 문제에 관심이 없겠는가. 역사가 바로서기를 바라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또 개인적으로는 나의 가족사와 관련된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평소 이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신 의장 부친 신상묵씨가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해 일제하에 훈도(교사)가 된 38년 3월 내 조부께서는 경북 칠곡 지역 청년동지회 활동과 관련돼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그 이후 39년 10월 다른 90명의 동지들과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조선총독부 대구지방법원 검찰국에 송치되었으며 그 중 26명의 동지들과 함께 대구형무소에 투옥되셨다. 치안유지법은 국가보안법의 모태로 불리는 일제 하의 대표적 악법이다. 1940년 7월 신의장 부친은 28대 1의 경쟁을 통과해 일본 제국 군대에 입대해 헌병의 길을 걸었고 우리 조부는 같은 시기에 대구형무소에서 항일비밀결사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르고 있었다. 신기남 부친과 우리 조부의 우울한 콘트라스트(대조)는 광복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해방 이후 삶의 궤적이 그리는 극명한 대조는 더욱 심화됐다. 신상묵씨는 1946년 미군정 경찰에 투신, 경북도경 보안과장, 빨치산 토벌대장, 제주도경국장, 경무관의 길을 걸으며 승승장구 했고, 나의 조부는 미군정-한국 경찰에 의해 탄압 받고 고문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다가 5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어디 이 같은 케이스가 우리 조부와 신기남 당의장 부친만의 것이겠는가. 우리 역사의 아픈 질곡은 지금까지 우리세대의 머리를 억누르고 있다.
-끝으로 정치권의 친일진상규명 논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실 자기 당 내부에서조차 공격을 당하고 있는 신의장 개인에 대해선 별 다른 감정이 없다. 그러나 일제 하에서 피와 땀을 바쳐 독립을 위해 싸웠던 수많은 지사들과 그 자손들, 그리고 오늘날 치안유지법의 후예인 국가보안법에 고통 받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친일진상규명은 매우 절박한 문제이다. 일본 헌병대 오장의 아들과 만주군 중위의 딸이 양편에 서서 연좌제라느니 정치적 의도가 있다느니 하는 말로 우리 사회의 역사적 과제를 진흙탕 싸움으로 만든 것에 국민은 싸늘한 눈초리를 보내고 있음을 정치권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촌평1) 괜히 내가 기분이 좋아.  조부는 아주 똘똘한 손자가 보람이겠군.

 

촌평2) 연좌제? 나도 반대여. 하지만 내 민족에 불의했던 쪽발짝발 강자에게 아양떠는 근성의 피가 흐른다면? 자성, 성찰해가며, 피를 말리고, 골수에 사무치는 각고의 노력이, 청동거울을 빡빡질하는 노력이 필수겠지. 그런 노력없이 연좌제 운운하면 내 국민이 골이 찌끈지끈. 성찰없는 년넘이 지도층 하면 사고치지.

 

촌평3) 불의한 강자에게 마구 강하고 냉철, 순박한 약자에 따스한 심장의 인성을 지니면, 천하를 얻은 자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예강이었고, 앞으로도 그렇지. ㅎㅎㅎ

 

 

 

 

  예강7  

 

 

辛의장, 사퇴결심 굳힌 듯

2004.8.17 (화) 21:20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안수훈 기자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장이 17일 부친의 일본군 헌병 근무 파문과 관련해 책임을 지고 의장직을 사퇴하기로 결심을 굳힌 것 으로 알려졌다. 신 의장은 이날 저녁 김부겸(金富謙) 비서실장 등 측근들과 함께 선친의 일본군 복무 파문과 관련한 대책을 협의하고, 18일로 예정된 대구.경북 방문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신 의장은 빠르면 18일 오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거취에 대한 공 식 입장을 표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 의장 핵심 측근은 "대구경북 방문 일정을 취소한 것은 당내에서 이런저런 사 정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도 구하면서 의견을 들을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면서 " 그렇게 해야 책임있게 행동할 수 있지않겠냐"고 말했다. 당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신 의장이 사퇴결심을 굳히고 청와대에도 이같은 입 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18일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거취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힐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신 의장은 이날 오전까지 거취문제에 대해 "가볍게 처신할 일이 아니며, 국민여 론을 보고 당의 중지를 모아보겠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비당권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즉각 사퇴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일부 언론에 선친의 일본 군 복무 당시 구체적 활동이 공개되는 등 파문이 확산됨에 따라 사퇴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신 의장은 지난 5월17일 정동영(鄭東泳) 당시 의장이 사퇴함에 따라 의장직을 승계했다. 당헌당규상 신 의장의 후임은 지난 1월 전당대회에서 3위로 당선된 이부영(李富榮) 상임중앙위원이 승계하게 되어 있지만 신 의장 사퇴로 선출직 상임중앙위원 5명 중 3명이 사퇴함에 따라 비상대책위 체제로 당분간 당이 운영될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ash@yna.co.kr

촌평1) 신기넘에게 권면 한개하지. 심심한 물귀신되지 않도록, 외롭지 않도록 배려하지. 빅그네를 물고 늘어지게. 혼자 옷벗지 말고  함께 빨개벗으면 좋겠는디...

촌평2) 빅그네... 나쁜년이지? 내 기준으로 볼 때~ ㅎㅎㅎ

촌평2-1) 음, 2004년 8월 12일, 희석질 잘하는 됴다따라하기? 1995년 5.18특별법으로 전투환물태우를 구속시키는 등 민족정통성의 미래를 확보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디.. 인생 끝난 넘 됴다를 영국에서 불러들이는 등 대통령되게 하는데 최선했는디 그만 으악! 발등에 도끼질한 됴다넘때미 어느 일정기간 생을 포기하고 자학하는 삶을 살아냈지. '모든 것을 용서하것다'며 공생관계인 전투환물태우를 풀어줬지. 난 공생관계인지 까맣게 몰랐지. 됴다넘은 번개불로 콩볶아 홀라당 쩝했지.  역사의 수레바퀴를 진흙창에서 꺼내 놓으니까, 가증교활 됴다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공의가 살아 숨쉬는 나라, 사회가 되면 절대 안되는 삶이 됴다였기 때문이지. 과거 됴다 액션을 벤치마킹해서 전,노, 032翁은 내가 인정하지, 됴다를 알현했는 가? 예강고립작전? 됴다만나는 조건으로 정수장학회 안물고 늘어지기로 맞바꿨나?  흐흐, 회석질, 12일 됴다를 만나는 순간 나는 조용히 차분히 액션~ 그네를 고물상에 팔아 넘겼다!!

촌평3) 빅그네... 나를 시험하나!! 내가 뭐라고 했지? 됴다하고 짝작꿍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전투환물태우는 이미 대통령예우가 박탈되었는디... 은근히 전투환물태우를 부활해 주고 있는 세력은? 여태 됴다에게 놀아난 목포,광주.. 순진한 전라도 사람들이 불쌍해요.

촌평4) 나는 박장군을 물질적 풍요관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내가 자주예기했듯, 빅그네는 박장군이 아니지 않는가? 최근까지 지켜봤지. 좌충우돌 심약한 온상출신일 거라는 내 예측이 맞았지. 인니의 메가와티, 필리핀의 아키노 여사 수준이 자네일세. 박장군의 얼굴에 똥칠하지 말고 하야? 불량놈!현과 함께 재야에 묻히길 권면하노라~~ 내 권면을 거부하면? 수비자세, 선잠에서 떨리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경계하시게. 빅그네 하야하게. 한나라와 그네의 마빡향해 수백기 미사일 날라가기 전에...

 

 

 

 

  예강 8  

 

 

[辛의장 부친 친일행적 파문]“辛의장 부친이 직접 고문”

 2004.8.17 (화) 23:44   동아일보

 

[동아일보]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장의 부친 신상묵(辛相默)씨가 일제강점기 일본군 헌병으로 복무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혀 신씨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1944년 4월 경남 진해의 일본군 제51해군 항공창에서 태업 등 항일활동을 벌이다 체포됐던 차익환(車益煥·79·경기 고양시)씨는 17일 본보 기자와 만나 “1944년 7월 진해 헌병대에서 시게미쓰 구니오라는 이름의 한국인 헌병대 군조(軍曹)로부터 취조를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차씨와 같은 곳에서 군속으로 일했던 김장룡(金章龍·78·부산 순천의원 원장)씨도 이날 본보 기자에게 “차씨와 함께 만세운동을 벌인 혐의로 체포돼 진해 헌병대에서 시게미쓰 구니오라는 대구사범 출신 한국인 헌병에게서 조사를 받으며 모진 고문을 당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호적자료에 따르면 신상묵씨는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로 창씨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조용휘기자 silent@donga.com 고양=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차익환씨 “모진 고문에 다리 잘못써”▼
“저를 취조한 것은 잘생기고 다부진 자세의 일본군 헌병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였습니다. 그는 저를 취조하면서 거꾸로 매달아 코에 물을 부었으며 각목으로 마구 때렸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 헌병대에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는 차익환씨. 그는 17일 “시게미쓰라는 이름을 평생 기억하며 꼭 찾아내 ‘내게 한 짓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었는데 신동아 보도를 보고 시게미쓰가 신기남 의장의 부친 신상묵씨라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차씨는 1944년 4월 경남 진해에 있던 일본 해군 군용기 수리 제조공장인 해군 제51항공창에 취업했다. 한국인 근로자들의 태업을 유도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벌이며 건국동맹에 보고하던 그는 7월 일본 헌병대에 체포됐다. 그는 “당시 다른 한국인 헌병대원 한 명과 함께 취조와 고문을 한 시게미쓰는 오장의 윗계급인 군조였고, 명찰을 달고 있었으며 55일 동안 매일 고문을 했다”고 말했다. 차씨는 시게미쓰가 대구사범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은 진해형무소에서 동료 수감자에게서 들었다고 덧붙였다.당시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왼쪽 다리가 불편하다는 차씨는 “시게미쓰는 고문을 하면서도 은근한 회유를 시도했고, 있지도 않은 조직도를 내밀며 사실대로 시인하라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결국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6월을 선고받았던 차씨는 “본적지에 수형사실만 남아 있을 뿐 추가적인 입증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내가 항일운동을 하다가 일본 헌병 시게미쓰에게 고문당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당 실세와 관련된 일이니 참으라는 주변의 만류도 있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인생에서 항일운동을 인정받고 시게미쓰의 만행을 명확히 알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고양=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김장룡씨 “우물에 거꾸로 매달기도”▼
“배후를 밝히라고 집요하게 추궁했지. ‘배후가 없다’고 하니까 혹독한 고문을 했어.” 부산 부산진구 범천2동에서 35년째 순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장룡씨는 17일 “당시 취조를 담당한 일본 헌병 군조 시게미쓰가 한 달 넘게 조사하면서 우물에 거꾸로 매달고, 목도로 두들겨 패고, 옷을 벗긴 채 뾰족한 돌밭에 하루 종일 꿇어앉아 있게 했다”고 증언했다. 한마디로 동물 취급을 받았다는 것. 1943년 부산제2공립상업학교(현 부산상고)를 졸업한 김 원장은 해군 제51항공창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입창 동기인 차익환씨가 독립만세운동을 위한 조직을 만들자고 제의해 안동현씨(사망)와 함께 비밀결사대를 조직했다. 이들은 하숙집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한국인 근로자들을 상대로 조직 활동을 했다. 그러다 일본 헌병대원이 항공창에 들이닥쳐 차씨 등과 함께 체포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항공창에 위장취업한 후 비밀결사대에 가입한 일본 헌병 오장인 이희정(李熙晶)이라는 조선인이 밀고했던 것. 김씨는 “당시 조사관 시게미쓰가 ‘나는 한국인이다. 대구사범학교를 나왔다’고 해 한국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따지니까 ‘나는 너희들과 다른 방식으로 나라를 생각한다’고 말하더라”고 회고했다. 같은 해 12월 군법회의에 차씨와 함께 회부된 김씨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김천형무소에서 복역하다 광복과 동시에 출소했다. 김씨의 본적인 울산 북구청에서 발행한 그의 신원조회서에는 군법회의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기록돼 있다. 김씨는 이를 근거로 2002년 5월 정부에 독립유공자로 신청을 했지만 군법회의 판결문 등 관련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지정을 받지 못했다. 부산=조용휘기자 silent@donga.com

▼군조(軍曹)란…▼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의 부친인 신상묵씨가 일본군 ‘군조’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는 주장은 신씨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일본군 하사관 계급은 ‘오장(伍長·하사)-군조(중사)-조장(曹長·상사)’의 순이었다. 한국교원대 한용원 교수에 따르면 징병이 아니라 자원입대한 조선인은 약 2만명이었으며 이 중 상당수가 오장 계급으로 입문했다. 그러나 이들 중 진급한 경우는 일본군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극소수였다. 신씨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학력과 헌병 근무능력 등을 배경으로 군조까지 승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주백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헌병에다 군조계급을 가진 조선인은 매우 드물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헌병들에게는 일본군 순사(경찰)조차 꼼짝 못했으며 조선인 사회에서는 거의 신적인 존재였다”고 덧붙였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촌평1) 충일세력이 장악해 온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너무 초라하다. 반세기만에 입을 열 수밖에 없었던 할베들... 드러나는 진실이 서글프다. 18!! 나는 냉철따스하게 신중과감할 것이닷!! 방해하는 년넘과 세력은 마빡에 3차원의 총알 박것다. 따스한 대접~~

촌평2) 음... 얼마전, 米國간 신기넘이 미국에 아양떨 때 너무 기막혔지. 어쩐지...  몸통속에 흐르는 피의 근성의 '아양' 이었구먼. 내 민족에 불의한 아양피,  강대국에 충성 맹종하는 집안 피? 연좌제 아니지? 미국에 아양떨었으니 보너스~  빤스된 국회의원도 홀라당 했으면 좋것구먼. 全裸~

 

 

 

  예강9  

 

 

''친일파 자손들, 역사 앞에 사죄해야''  

  2004.8.18 (수) 07:43   노컷뉴스

 

노무현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과거사 청산을 언급한 뒤 다시 과거사 청산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여기에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 부친의 과거사 문제까지 불거져서 혼란스러운데요. 독립운동가 한 분을 통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과거사 규명에 대한 판단을 해보려고 합니다. 부민관 폭파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졌던 분이시기도 한데요. 지금은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계시는 <조문기 선생>을 전화로 연결해 보겠습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
노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다시 과거사 청산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불신과 반목은 굴절된 역사 때문이다’, 또 ‘왜곡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문기 이사장>말 자체야 옳은 말이죠. 과거 청산이 안돼서 오늘날 우리 역사가 이렇게 왜곡돼 있고, 민족 문제가 하나도 해결이 안 되고 있는데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자는 것은 누가 이야기해도 옳은 말이라고 생각해요.그런데 나는 그 말의 진의를 어떻게 믿어야 할지 그것이 걱정이에요. 이상한 말들이 같이 나오니까. 어느 말이 맞는지.
◎ 사회/정범구 박사>
이상한 말들이 같이 나온다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조문기 이사장>그 날 식장에서 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전에 고이즈미 총리와 앉아서 이야기한 것도 그렇고, 일관되게 어떤 의지를 가지고 하려고 해야 하는데 그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정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믿었다가도 또 이상해지고 그것이 나한테는 문제예요.
◎ 사회/정범구 박사>
노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또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와서 친일파를 처벌하거나 그들의 기득권을 박탈하자는 것은 아니다, 진상이라도 밝히자는 것이다’라고 했는데요. 이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문기 이사장>세상 사람들이 전부 그렇게 이야기해요.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상이라도 밝히자는 거라고, 다들 그래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몇 년 전에 내가 조금 성급하게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 있었어요. 나 혼자라도 민간 법정에서 정식으로 재판해서 처벌할란다고.
처벌이라고 하면, 법을 만들어서 친일파의 죄상을 기록에 남기자는 것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시대적으로 어렵다,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진상이나 규명하자고 타협안으로 나온 것 같은데 난 그 타협안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못마땅해요.
◎ 사회/정범구 박사>
대통령이 친일 문제를 포함해서 과거사를 포괄적으로 규명할 특별위원회를 국회 안에 구성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것은 방안으로써 어떻다고 보십니까?
◑조문기 이사장>국회 안에다 기구를 두든 별도로 독립기구를 만들어서 밖에다 두든 간에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정말 하려는 의지가 있어서 해야죠.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해서 조금이라도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환심을 사자는 식으로 한달까. 그러면 거기에 기대를 걸 수가 없죠.
◎ 사회/정범구 박사>
야당에서는 지금 먹고 살기도 힘든데 경제 살리기에도 왜 맨날 과거 이야기만 하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조문기 이사장>우리 민족이 이런 문제를 안고 고생을 하는 것이, 결국 과거를 깨끗이 정리하지 못하고 역사를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 아니에요? 난 그것과 이것이 무관한 것이 아니라 직결된다고 봐요. 늦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민족 문제는 하나도 해결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또 아무리 힘들더라도 기왕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으니까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해요. 이럴 때 못하면, 영영 기회를 놓친다고 생각하거든요.
◎ 사회/정범구 박사>
그런데 이 와중에 여당의 대표인 신기남 의장 부친의 친일 경력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조문기 이사장>지금 문제는 신기남 의원이나 박 대표가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아버지가 민족 앞에 죄를 지었으면 그 죄를 아버지 대신 민족 앞에 사죄하고 민족을 위해 일하는 태도를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하나같이 우리 아버지 죄 없다고 부정하고 나오는 것이 못 마땅해서 그런 사람에게 뭘 바라겠느냐, 그런 사람에게 그런 의지가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죠.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 사회/정범구 박사>
신기남 의장의 부친이 일본군 헌병 오장이었다는 이야긴데요. 헌병 오장은 당시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한 것인가요?
◑조문기 이사장>지금 오장이면 장교도 아니고 중간 위치에 있는 하사관이거든요. 그것이 무엇이 대단하냐 하겠지만, 그것은 그 시대를 모르니까 하는 이야기에요.
알고 보면 끔찍스러워요.
한국 사람으로서 일본군 헌병 오장이었다고 하면 그 사람들의 죄악상이라는 것이 아주 소름끼쳐요. 아주 눈에 불을 켜고 출세하려고 충성을 있는 대로, 가장 열렬하게 충성하던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거든요.
◎ 사회/정범구 박사>
그 시절에는 헌병의 위상이 경찰과 비교해서 어땠습니까?
◑조문기 이사장>더 힘이 있었죠. 더 강력했고, 헌병이 최고의 권력기관이고, 그 밑에 있는 권력기관이 일반 사법부였어요. 내가 직접 오장 헌병에게 붙잡혀가서 고문을 당하거나 그런 것은 없었지만, 그 사람들이 제일 악랄했었고, 정신적으로 가장 철저하게 친일하던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지금 하사관쯤으로 생각하면 큰 일이죠.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죠.
◎ 사회/정범구 박사>
전에 하신 말씀을 보면 국회 내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여전히 친일 후손들이 많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런 경우가 있는 것을 알고 하셨던 건가요.
◑조문기 이사장>내가 신기남 의장의 이야기를 알고 한 것은 아니고, 전반적으로 일제 시대 상을 내가 알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아주 깔린 것이 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죠. 그래서 얼마 전에도 어디에선가 현재 열린우리당에는 친일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냐 하고 묻길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확실히 누구 누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거기라도 하나도 없다고 하면 그것은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이야기까지 했어요.
◎ 사회/정범구 박사>
이 문제가 불거지니까 정치적으로 당의장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또 다른 쪽에서는 신판 연좌제 아니냐, 아들이 죄를 뒤집어 써야 할 이유가 어디있느냐면서 의견이 갈라지고 있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조문기 이사장>그 사실이 드러나서 할 수 없이 이야기한 것은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사과로 인정될 수 없는 것이죠. 자기 아버지가 헌병 오장을 했다는 것을 몰랐으면 모르겠어요. 그러나 알았다면, 적어도 여당의 대표라면 남이 뭐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지 꼭 들통이 나서 남들이 그 사람 안된다 물러나라하면 할 수 없이 물러나고 안 그러면 그냥 슬슬 감춰서 그대로 있고. 그런 당의장이라고 하면 그 사람이 대표하는 정당도 문제가 있는 거죠. 난 지금 모든 친일파들의 자식들이 다들 깨끗이 사죄하고 뉘우치고 민족의 양심으로 돌아와서 정직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 사회/정범구 박사>
그래도 열린우리당이 당장 과거사 청산을 주도해 왔는데요. 열린우리당의 현 당 대표가 부친의 친일 시비 논란에 휘말리면서 과거사 진상 규명 문제도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처하는 것 아닐까요.
◑조문기 이사장>한나라당에서 크게 이것을 물고 늘어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누가 누구에게 침을 뱉습니까? 한나라당이 침 뱉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당도 그렇고, 개인도 그렇고. 신 의장 뿐 아니니까 그 비슷한 사람들이 정계에도 그렇고 각계에 많이 깔렸을 거예요. 큰 인물이 못 돼서 사회적으로 주목을 못 받으니까 모르고 있는 것이지, 그 사람들이 신 의장이나 박근혜 대표처럼 큰 사람으로 두드러지게 나오면 그 사람에 대한 무엇이 또 나올 거예요. 이렇게 되면 한없이 혼란이 오게 되니까 제발 역사를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차원에서 친일한 사람들의 자식이나 유족이나 전부 스스로 민족의 양심으로 돌아와서 뉘우치고 사죄하고 정말 아주 정직하게 역사 앞에서 당당한 민족이 되도록 자성하는 것, 뉘우치는 것, 잘못했다고 사죄하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하지 지금 한 사람 한사람이 튀어나오고, 또 튀어나오고 그 때마다 문제가 되면 한없이 정계는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마침 한나라당 대표도 문제가 됐는데 알고 보니 다 그렇더라는 식으로...  다 솔직하게 양심 고백해서 민족 앞에 지금까지 떳떳하지 못한 자세를 버리고 정말 당당한 자세로 서려면 그것 안하면 안돼요! 지금 친일파 자손들이 우리나라에 와글와글 하지 않습니까?
▶진행:정범구박사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98.1MHz 월~토 오후 7시~9시) (CBS 창사 50주년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162) <ⓒ CBS 노컷뉴스 www.nocut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촌평0) 반성하고 사죄하는 거는 식은 죽 먹기지? 응당한 몰수환수명예박탈은 기본~~

촌평0-1) 오늘은 18일,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 소름끼치지? 18!! 오장 뒤집힐 5.18도 그렇고....

촌평1) 체계적으로 냉엄하게 '역사똑바로 세우기' 해야지. 국회에 반영구적 '반민족행위평가특별위원회'를 두고, 틈틈이 검증 되는대로, 틈나는대로 민족범죄재판소 판결,

촌평1-1) 매우 신중과감하게 민족정통성의 미래를 확보해야 내 민족의 생존이 보장된다.

촌평1-2) 일제때 축적한 부와 명예를 박탈!!하는 등~~  또한, 인터넷 등 忠日 인명사전에 등록~ ㅎㅎㅎ

촌평2) 정일넘 똥줄 기쁨조 도댜세력의 구성원되어 빨갱단 지휘받아 수도이전 등 빨간짓하며, 어영이부영하다가 좌충우돌, 꼬집히고 쥐어 뜯기며, 홍알홍얼비실비틀, 헐레발딱 도주하다 보니께 다급히 들어선 막다른 골목, 어떨결에 과거사 청산하는 길로 들어선 불량놈!현? 여론 도마 형식으로 일순간 과거사 청산한다는 자체가 '역사 삐둘루세우기'.

 

 

 

  예강10  

 

 

(단독) 신기남,내일 의장직 사퇴 공식 선언  

 2004.8.18 (수) 13:07   노컷뉴스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19일 의장직 사퇴를 공식 선언한다.

신기남 의장의 핵심 측근은 "신의장이 18일 오전 문희상 의원,김부겸 비서실장등 핵심 당직자들과 만나 사퇴를 결심했으며,내일 오전중 기자회견을 갖고 사퇴를 공식 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측근은 신기남 의장이 오늘중으로 상임중앙위원들에게 이같은 입장을 밝히고 광복회 방문등을 통해 신변을 정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측근은 특히 오늘 아침에 있었던 회의에선 향후 당의 진로와 관련해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다만 비대위가 당헌에 없는 기구인 만큼 권한과 구성등에 대해 오늘 오후 중진들과 논의할 방침이라고 신기남 의장의 측근은 전했다. 정치부 김재덕 기자 jdeog@cbs.co.kr
(CBS 창사 50주년 뉴스FM98.1 ) <ⓒ CBS 노컷뉴스 www.nocut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촌평1) 선언까지야 뭐. 그냥 사퇴하고 '반민족행위평가특별위원회' 발족되면 각종 보유자료 제출.

촌평2) 반민족행위평가특별위원회의 각종 증빙 등 자료와 최종 평가자료를 넘겨받은 민족범죄재판소의 최종 판결을 받길 기원한다. 뭘 근거로? 국회입법될 愛民族反民族行爲基本法~~

 

촌평3) 愛民族反民族行爲基本法을 근거로 애민족평가특별위원회도 마구 발족된다. 우 ㅎㅎㅎㅎㅎ

 

촌평4) 민족범죄재판소는 피의자의 범죄재판이 주 업무이나 환수몰수보상회복유공박탈 등 활동범위가 광활하다.

 

 

 

 

  예강11  

 

 

4·19 단체 등, 박근혜 대표 정계퇴진 촉구  

 2004.8.18 (수) 18:16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김태형 기자]
▲ 민족정기선양회 등 14개 시민사회단체 각계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18일 오전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박근혜 정계퇴진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2004 오마이뉴스 남소연

민족정기선양회 등 14개 시민단체는 18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정계퇴진을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성명을 통해 "유신독재 시절 부와 영화를 누리던 수구세력들이 민족반역자이자 독재자인 박정희의 딸을 내세워 정치적 반사이익을 노리고 있다"며 "유신정권의 핵이자 유신본당 그 자체인 박 대표는 정계에서 즉각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박 대표에게 "MBC 주식 30%, 부산일보 주식 모두를 소유하고 있는 정수장학회는 권력으로부터 강탈한 장물이므로 즉각 내놔야한다"고 요구하고, 박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었던 영남대학교에 대해서도 "관련 의혹을 밝히고 완전히 손을 떼라"고 촉구했다.

홍근수 목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상임대표)는 "박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연좌제를 적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라며 "부모가 비록 친일을 했더라도 자식이 진정 그 잘못을 알고 속죄하는 마음이 있다면 최소한 공직에서는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병호 4월혁명회 공동의장은 "우리가 지금 문제 삼는 것은 법적 정당성이 아니라 역사적·도덕적 정당성 문제"라며 "근대화란 미명 아래 식민지 청산 기회마저 말살한 군부 독재정권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서는 박 대표가 반드시 정계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의장 의장직 사퇴뿐만 아니라 정계 은퇴해야"

▲ 이날 기자회견에는 부친의 일제헌병 복무사실로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도 높았다.
ⓒ2004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편 기자회견에 참석한 일부 인사는 최근 부친의 일제 헌병 복무 사실로 인해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에 대한 정계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곽태영 민족정기선양회 회장은 "부친의 반민족적 행각을 알고도 정계에 진출 국민을 속인 신 의장의 행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신 의장은 의장직 사퇴뿐만 아니라 의원직 사퇴 등 정계 퇴진 의사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곽 회장은 "17대 국회의원 중 친일파 후손을 가려내 여야를 막론하고 퇴진 운동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규탄사에 나선 강정구 동국대 교수는 "친일과 군부독재 청산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지금과 같은 정치판이 구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한미동맹 자체가 국익이라고 외치는 숭미주의자 신 의장과 반민족·반역사·반민주 정체성의 전형 박 대표를 정계은퇴 시켜야한다"고 주장했다.

정동익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 심사위원장은 "박 대표의 정계퇴진을 촉구하는 도중 신 의장 부친 문제가 급작스럽게 대두돼 공동된 입장을 마련하지 못했다"며 "이를 둘러싸고 참가 단체들 사이 이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견장에는 구 대구대와 청구대가 영남대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청구대를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청구대 설립자 아들 최찬식씨를 비롯해, KAL 858기 유가족, 인혁당 사건 유가족, 동아일보 해고자 등이 참석했다.

[기자회견문] 유신독재정권의 핵 박근혜는 즉각 정계에서 물러나라

요즘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파시즘의 망령이 횡행하고 있다. 벌써 사반세기 전에 비명에 간 독재자 박정희를 우상화시켜 정치적 반사이익을 노리는 수구세력들의 준동이 예사롭지 않다 그들은 민족반역자요 독재자인 박정희를 경제발전의 주역인양 찬양하며 박정희 신드롬을 재현하려 획책하고 있다. 유신정권시절 독재자에 빌붙어 부와 영화를 누리던 수구세력들은 파렴치하게도 폭군의 딸인 박근혜를 앞세워 그의 아버지 박정희가 뿌려놓은 지역감정과 색깔론을 무기로 다시 정권을 거머쥐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 모든 검은 음모의 중심에 서 잇는 사람이 바로 유신독재정권 때 6년간이나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야말로 국민을 가옥하게 탄압하고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학살한 유신정권의 핵이요 유신본당 그 자체이다. 박근혜 대표는 자기 아버지 박정희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죄하기는커녕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박정희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표는 진정 자기가 존경한다는 박정희 식의 반민주, 반통일 정치를 하고 싶어 야당대표 자리에 연연하는지 묻고 싶다.

박 대표도 알다시피 박정희의 일본 이름은 다까끼 마사오이다. 그는 일왕 히로히또에게 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혈서를 쓰고 충성을 맹세하여 왜군 장교가 돼 항일 독립군을 학살하는데 앞장섰던 친일민족반역자이다. 그가 해방이 되자 재빨리 국군 장교로 변신, 남노당 군사조직책으로 암약하다가 세불리하자 동료들을 밀고하여 생명을 부지한 경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이미 다 알려진 얘기이다. 1961년 민족사의 찬연한 꽃인 4·19 혁명을 짓밟고 쿠데타로 집권한 뒤 반공을 내세워 수많은 민주인사와 시민들을 고문하고 투옥, 사형시켜 세계적으로 독재자의 악명을 떨친 바 있다. 그의 딸린 박근혜가 야당 대표로 선출되자 외신들은 야당이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독재자의 딸을 선택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언론을 탄압하고 인권을 유린한 민족반역자의 딸이 제1야당 대표로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수치요, 국민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요, 고통이다. 더욱이 박근혜 대표 자신이 유신독재의 핵이었고, 지금도 굳은 신봉자임이 분명하기에 우리는 그의 즉각적인 정계퇴진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표는 자유민주주의 수호 운운할 자격이 없다. 자유민주주의는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서 싸운 수많은 민주인사들의 희생으로 수호된 것이기 때문이다. 6·15 통일시대인 지금도 반공을 국시로 생각하고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고 있는 박근혜 대표는 통일을 말할 자격도 없다.

박근혜 대표가 역사의식이 희박하고 지역감정에 취해 있는 일부 추종세력들을 의식하고 반민족적 반통일적인 저질발언으로 나라를 정체성의 혼란에 빠뜨린다면 반드시 역사와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박근혜 대표가 민주시민들의 퇴진요구를 무시하고 출세에만 집착한다면 자기 아버지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박근혜 대표가 일말의 양심과 역사의식이 있다면 마땅히 속죄할 기회도 없이 비명에 간 아버지를 대신해서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자식된 도리로서 무엇을 할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우리는 소름끼치는 역사반동의 시대가 다시 우리 앞에 재현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독재와 불법이 난무하던 시대로 역사를 되돌리려는 어떠한 기도에도 강력히 투쟁할 것이다. 우리는 박근혜 정계퇴진운동에 국민적 힘을 모아갈 것을 천명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박근혜 대표는 아버지 박정희의 죄과를 국민 앞에 사죄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즉각 정계에서 떠나라.

둘째, MBC 주식 30%, 부산일보 주식 모두를 소유하고 있는 정수장학회는 권력으로 강탈한 장물이므로 즉각 내놓아야 한다. 더구나 국회의원 세비를 받고 있으면서 장학회 이사장 월급으로 1100만원이나 받고 있다니 도덕성을 의심받을 일이다.

셋째, 박정희가 외국에 빼돌린 거액의 비자금의 유무에 대해서도 반드시 진상을 밝혀야 한다. 이 부분은 국민적 의혹이 크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즉각 조사에 나서 진상을 밝혀라.

넷째, 박정희가 교주로 돼 있는 영남대학교, 박대표가 과거 이사장으로 있었던 영남대학교는 청구대와 대구대를 상납이란 미명으로 빼앗아 만든 대학교로 알려져 있다. 영남대학교에 얽힌 의혹을 밝히고 학교에서 완전히 손을 떼라.

2004년 8월 18일

독립유공자유족협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 민주와운동실천유가족협의회, 민족정기선양회,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 사월혁명회, 전국민주화운동상이자연합,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70년대민주노도운동협의회,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인혁당사건유족회 /


/김태형 기자     -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촌평1) 박장군은 일장일단이라니께. 5.16 평가?  정신적풍요가 一短(유신압제질)이면, 물질적 풍요가 一長(경제초석질)이고... 이건 내가 아닌 국회 군사쿠데타평가특별위원회에서 다룰 사안이다.

촌평2) 요번에 일부러 전투환, 032翁(은 괜찮다), 됴다를 알현한 것은 정의, 공의를 희석하려는 마키아벨리식 정치술로 나는 매우 분노했다. 가증교활 됴다의 희석수법(역사의 수레바퀴를 도로 진흙창에 처박기)에 여러번 학을 띤 나다. 따라서, 희석수법을 쓴 빅그네는 고물처리 되어야 한다. 나를 고립시킬 목적으로? 됴다와 만나는 조건이 정수장학회 안 물고 늘어지 거?  맞바꾼 거? 나와 맞짱 떠서 이긴 인간이 없다!! ㅎㅎㅎ, 좋은 말로 할 때 그네는 하야하라!! 광야에서 목놓아 통곡하게 해주기 전에... 정수장학회 원주인이 있어? 돌려줘야 마땅하면 마땅질해야~~ 우 ㅎㅎㅎㅎㅎㅎ

촌평3) 충일, 유신, 정수장학... 문제많은 박장군이었군. 일본군... 직업은 중요하지 않다. 忠日 문제는 내 민족, 백성을 만주벌판, 조선 삶의 현장에서, 학문에서,  문학으로 사상개조, 언론으로 백성우민화 등등... 얼마나 말살, 괴롭혔는 지가 매우 중요.

촌평3) 외롭지 않게 해주마!! 신기넘하고 동반 하야하라!!

 

 

 

  예강12  

 

 

신 의장 홈페이지 "아버지는 전쟁영웅"   

2004.8.19 (목) 05:22   중앙일보

 

[중앙일보 손해용 기자]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의 홈페이지(www.skn.or.kr)에 부친 신상묵씨를 칭송하는 글과 사진이 올라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홈페이지 중 '가족 이야기'코너에는 18일 오후 현재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제목으로 헬멧과 전투복을 착용한 신씨와 해군 정복을 입은 신 의장의 모습이 나란히 담긴 사진이 게재돼 있다. 사진 옆으로는 신씨를 "진정한 전쟁영웅"이라고 묘사하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나라를 지킨 부자의 이야기"라는 소개의 글이 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코너에서는 신씨를 "대한민국 최고의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고, 충청.전라.경상도의 전투를 책임지던 서남지구 전투사령관으로서 용맹을 떨쳤다"며 "빨치산을 소탕하기 위해 화엄사를 불태우려는 군 일부의 주장을 막아내 민족문화유산을 지켜낸 장본인으로 지리산 일대에 공덕비가 남아 있다"고 극찬했다. 또 "선친의 기개를 이어받은 신기남은 해군 전투장교를 자원하여 거친 바다 위 전투함에서 나라를 지켰다"고 밝혔다. 문제의 사진과 글은 이를 본 네티즌들이 '퍼나르기'를 하면서 사이버 공간에서 급속히 퍼지고 있다. 많은 네티즌은 "선친의 해방 이전 행적을 알고 있으면서도 국민을 속여왔다" "친일파의 자식이 친일파를 청산하자고 떠드는 세상" 등의 반응을 보였다.
손해용 기자 hysohn@joongang.co.kr ▶손해용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ysohn/ - '나와 세상이 통하는 곳'ⓒ 중앙일보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촌평) 흠... 빙산의 일각이다. 일본에 충성했던 년넘들이 지 새끼 잘둔 덕분에 묘는 황제수준, 나라 역사보다 껄쩍지근 화려한 개인 역사가 장엄중후하다. 사실은 모조리 변조, 변형, 조작, 사기 등 기회주의적 언행일색이다.  충일년넘들, 한민족의 질곡시대를 약싹빠르게 타고넘은 왜곡된 삶이다.

촌평2) 우리나라 최초 배심제 적용 민족범죄재판소는 피의자의 범죄재판이 주 업무이나 환수몰수보상회복유공박탈 등 활동범위가 광활하다 ==> 참조= 위의 10번.

촌평3) 퍼나르기... 부지런 애덜이 꼭뚜새벽부터 북청 물장수?  퍼나르느라고 종종거름 빠른걸음으로 골목마다  busy땀 바쁜땀 범벅, 헉허 학학? ㅎㅎㅎ

 

 

  예강13  

 

 

"죄없는 신 의장 아이들 얼마나 큰 상처 입었겠나"  

 2004.8.19 (목) 06:35   중앙일보

 

[중앙일보 이가영 기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18일 "(국회 내에 과거사 특위를 설치해)포괄적으로 과거사를 조사한다면 친북활동과 용공활동을 한 것도 다 조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날 대구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당내에선 이견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과거사 특위 설치를)반대하는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 내 과거사 특위 설치 제안에 대한 답변이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그렇지만 특위는 국민이 볼 때 절차적인 공정성이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며 "조사위원들도 검증을 받은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문사위 파문을 의식한 발언이다. 박 대표는 그동안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 부친의 친일 의혹 파문에 대해 언급을 피해왔다. 그러나 이날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박 대표는 "신 의장에게 아이들이 있느냐.(신 의장 선친에게는)손자, 손녀가 되는 아이들의 입장을 생각해 봤다"면서 "애들은 아무 죄 없는 것 아닌가.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겠느냐"고 말했다. 연좌제의 불합리성을 지적한 것이다. 신 의장의 사퇴설에 대해 그는 "사퇴는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원한 게 이런 것이냐"며 노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들은 "이런 식이면 정치권이 만신창이가 될 것"(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이라고 열린우리당을 견제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여당이 친일조사 대상을 확대하겠다는데, 이렇게 되면 진실규명에 10년이 아니라 100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했다. 일종의 '재조사 무용론'이다. 그러면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경제 살리기 등을 언급하며 쟁점을 '과거'에서 '현재'로 치환하는 데 주력했다. 김 원내대표는 특히 실형을 선고받은 노무현 대통령 측근 최도술씨 문제를 거론하며 "국민들은 수십년 케케묵은 과거사보다 2년 전 성공한 비리의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고 화살을 돌렸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이가영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ideallee/ - '나와 세상이 통하는 곳'ⓒ 중앙일보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촌평) 언젠가 한번은 치뤄야 할 격렬사생결단 진흙탕 격투... 현재 한국의 지도층 대부분 忠日이었지. 저항이 엄청날 걸~ 불량놈!현이 어떨결에 좌충우돌 어영이부영이하다 보니, 과거사 청산 길목에 들어섰을 뿐. 대세는 거슬리 수 없는 건디... 이 노무 나라는? 글쎄다?

촌평2)  "애들은 아무 죄 없는 것 아닌가.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겠느냐? 음... 그러네? 근디말여. 살인자 애비둔 자녀들이 가난에 찌들고... 너무 가련한 상황에서, 아버지가 수갑차고 잡혀가는 것을 보고 어찌 동정해야 하지? 음... 경찰관보러 잡아가지 말라고 할까? "애들은 아무 죄 없는 것 아닌가.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겠느냐? 가 적당하겠지. 우리네 인생이란 게 참으로 애절한 사연이 많다. 고문당했던 당시의 자녀들 역시 아무 죄없이, 집안이 풍비박산되어 오돌오돌 떨었을 것. 결국 종자탓? 니탓? 내탓이오? 헷갈리지? 음ㅁ...

촌평2-1) ㅎㅎ, 연좌제 불합리성때미? 애덜에 그 큰 상처 입었나? 그네가 애비처럼 무력사용하여 상처냈남? 애비때미 애덜을 오라질해 가는 것도 아닌데? ㅎㅎㅎ

촌평3) 그네가 모정어린 애정이 넘쳐 흘러 홍수구먼. 냉수한사발? 정수된 물이나 들이키고 속차려? 밥상차렷! 정신차렷!! 동류의식? 신기()년일세. 니 걱정이나 혀라~

 

 

 

  예강14  

 

 

‘선친 친일’ 辛의장 기나긴 2박3일

  2004.8.19 (목) 06:37   서울신문  

 

[서울신문]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18일 오후 2시 김부겸 비서실장,김희선 의원과 함께 서울 여의도 광복회 사무실을 찾았다.김우전 회장과 김유길 사무총장 등 임원들에게 “돌아가신 선친 문제로 독립 유공자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죄한 뒤 “친일진상규명 노력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머리를 숙였다.신 의장이 거듭 용서를 구했지만 김 회장은 끝까지 ‘용서’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으면서 “앞으로 민족정기를 세우는 데 앞장서겠다니 마음이 뿌듯하다.”는 말로 대신했다. 이날 방문은 당 의장으로서 사실상 마지막 공식 일정이었다.땀을 뻘뻘 흘리며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이제라도 용서를 빌 수 있어 홀가분하다.”고 말하는 신 의장의 표정 역시 ‘기나긴 2박3일의 장고(長考)’ 이후 의장직 사퇴를 결심했음을 확인시켜 주는 듯했다. 신 의장 선친의 친일행적 파문이 불거진 것은 지난 16일 저녁 6시30분쯤.경남 창원지역 공단을 둘러본 뒤 부산으로 향하던 버스에서 신 의장은 김형식 부대변인으로부터 한 시사 월간지의 ‘선친 친일 행적’ 보도 사실을 전달받았다. 잠시 얼굴이 굳어졌지만,다시 냉정을 되찾은 듯 기자간담회를 열라고 지시했다.그리고 꼼꼼한 성격의 ‘메모광’답게 버스 안에서 기자간담회 내용을 메모했다.그리고 기자들 앞에서 선친의 일본군 헌병 복무 사실을 시인했다.그는 17일 울산 방문과 일본 민주당 의원 간담회 일정을 소화하는 등 버티기에 들어갔다.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당 의장으로서의 거취문제는 절대 가볍게 처신할 일은 아니다.”고 즉각 사퇴 거부 의사도 밝혔다.천정배 원내대표 역시 긴급 원내대표단 회의를 갖고 “연좌제는 안 된다.”고 말했고 김희선 의원 역시 ‘사퇴 불가론’을 펴며 지원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신 의장은 그날 오후와 밤 문희상 의원,김부겸 비서실장 등 가까운 의원들을 잇따라 만나 대책을 논의한 뒤 대구·경북 방문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그리고 밤새 통음한 것으로 알려졌다.한 측근 의원은 “당의 앞날과 친일진상규명법의 연착륙을 위해 (사퇴를)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굳힌 것 같다.”고 말했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저작권자 (c) 서울신문사]

촌평) 난 단련된 몸통이라서? 하나도 힘이 안들던디... 길었남? ㅎㅎㅎ

 

  

 

   예강15  

 

이부영 與의장직 승계-1

2004.8.19 (목) 09:58   연합뉴스

 

신기남 의장직 사퇴

(서울=연합뉴스) 맹찬형기자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장이 19일 당 의장 직을 사퇴함에 따라 원외인 이부영(李富榮) 상임중앙위원이 이를 승계했다. 선친의 일제하 헌병 복무와 이에 대한 뒤늦은 시인에 따른 파문으로 당 안팎의 사퇴 압력을 받아온 신 의장은 이날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긴급 확대간부회의 에서 의장직 사퇴 의사를 표명한 데 이어 특별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 사퇴했다. 이에 따라 지난 1월11일 전당대회 지도부 경선에서 신 의장에 이어 3위로 직선 상임중앙위원에 당선됐던 이부영 위원이 당헌에 따라 당 의장직을 맡아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와 함께 152석의 원내 과반 여당을 이끌게 됐다. 여권은 신 의장의 사퇴를 계기로 친일진상규명법 개정, 국회내 과거사특위 설치 등 과거사 청산 작업에 한층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여 정기국회를 앞둔 정국의 긴장 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또 비당권파로 분류됐던 신임 이 의장은 그동안 정동영(鄭東泳) 통일장관, 신 의장, 천 원내대표 등 이른바 `천.신.정' 3인이 주도하는 당권파의 당 운영에 다소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만큼 향후 열린우리당의 진로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신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친일잔재 청산과 민족정기 회복운동의 대의를 조 금이라도 훼손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당 의장직에서 물러난다"면서 "이제 역사의 진 실을 밝힐 때이며, 저의 아픈 가족사를 딛고 역사적 과업을 이뤄달라"고 말했다. 신 의장은 또 "선친 관련 보도를 접한 후 지금까지 3일은 제 평생 겪어보지 못 한 가장 무겁고 심각한 고뇌의 시간이었고, 새로이 알려진 사실에 대해 겸허한 마음 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려 한다"면서도 "7월 당시 제가 아는 사실만이라도 솔직 하게 말하지 못한 것은 저의 모자람이었다고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를 거짓 말쟁이로 몰아가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신 의장의 퇴진으로 우리당은 이부영 임시체제로 운영되게 됐고, 정기국회 등 정치일정을 감안해 일단 연내에는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하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기 로 했다.
당내에서는 신 의장 사퇴 이후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이 의장직을 승계하는 방안 과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놓고 논란이 있었으나, 정기국회 입법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당권을 둘러싼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 위원이 의장직을 승계하는 쪽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중진의원들은 지난 18일 저녁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비공개회동을 갖고 이같이 합의했고, 19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는 이를 추인했다. 신임 이 의장은 재야 출신으로 14대 국회때 통합 민주당 소속으로 원내에 입성 해 3선의 관록을 쌓았고, 지난 97년 대선과정에서 민주당과 신한국당의 통합으로 창 당된 한나라당의 원내총무까지 지냈으나 지난해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 에 합류했다. 우리당은 지난해 11월11일 김원기(金元基) 의장 체제로 출범했고, 지난 1월11일 전당대회에서 직선으로 선출된 정동영(鄭東泳) 의장이 4.15 총선 과정에서 있었던 ` 노인폄하' 발언에 책임을 지고 지난 5월17일 사퇴한 이후 신 의장 체제로 운영돼왔다.
mangels@yna.co.kr

촌평) 어영부영했다가 나한티 혼줄 잘릴뽄 했떤 야행성 부엉이가 댓빵? 그나저나 큰일이구먼. 어영부영하는 척?하다가 갑자기 놀래키는 부엉이는 조문을 좋아하기 때미... 어느날 갑자기 죽지도 않은 정일넘 조문가자고 하면 어쩌지?  야행성이기 때미 야밤을 틈타 홍두깨질하면? 빨간년넘들 때미 바람잘날 없는 몸통이 예강?

 

 

 

   예강16  

 

박대표 "과거사 포괄적 대폭 진상규명"-1    

2004.8.19 (목) 10:20   연합뉴스

 

과거사진상규명특위 조건부 수용 시사 (서울=연합뉴스) 추승호 기자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19일 "과거사 를 포괄적이고 대폭적으로 진상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날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상임운영위에 참석, 이같이 말하고 "여당 이 하는 것을 보면 조사하는 사람의 자격 기준이 전혀 없다"며 "과거 전력을 봤을 때 국민 앞에 떳떳하고 중립적이고 전문지식이 있는 인사로 (조사위원이) 구성돼 제 대로 규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6.25 때 누가 침략을 지켜냈고 그 때 만행으로 누가 피해를 봤는 지 밝혀내고,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대립시기에 누가 국가 안보를 지켜냈고 누가 국 가안보를 위협했는 지 공정하게 규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의 이같은 언급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제안한 국 회 과거사진상규명특위에 대해 조건부 수용원칙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표는 "과거 역사때문에 현재와 미래가 어렵다는 대통령과 여당의 시각에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이렇게 이야기가 나온 마당에 과거 역사적인 것 다 짚어보고 어떤 것이 잘못됐는 지 교훈으로 삼자"고 말했다. 박 대표는 과거사 조사위원 자격과 관련, "중립적이고 검증된 학자에 의해 대폭 적으로 과거사를 짚어보자"며 "(여당 안은) 위원장이 아무나 임명하면 되는 데 전문 지식이라든가 과거 공산당 경력이라든가 검증 없이 중요한 일 할 수 있겠느냐. 확인 안되는 것 아무거나 발표하고, 아무도 책임 안지고, 이 나라가 온통 명예훼손, 고발 로 복잡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이어 "여당이 추진하는 법을 보면 친일조사 때 아무나 오라고 해서 안오면 징역형인데 이런 식으로 해서는 의문사가 간첩을 민주인사로 만들었듯이 진 상규명은 커녕, 나라에 큰 해를 끼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과거사 조사범위에 대해 일제시대와 6.25 전쟁, 4.19와 5.16, 냉전시대 등을 일일이 거론했다. 그는 "일제시대 어떻게 나라를 뺏기게 됐는 지, 동포를 괴롭히고 적극적으로 친일행위 한 사람은 누구이고 애국.독립지사들은 누구인 지, 해방후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할 때 우리의 선택이 옳았는 지, 누가 6.25 침략으로부터 지켜냈고 그 때 만행으로 피해 입은 사람은 누구인 지 밝혀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4.19 혁명이 일어나게 된 부정과 무능의 주체는 누구이고, 5.16후 산업화의 공과는 무엇인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던 냉전시기에 누가 국가안보를 지켜내고 위협했는 지,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본 사람은 누구인지, 이 기회에 공정하게 규명해보자"고 말했다chu@yna.co.kr

촌평1) 그네가 얼마전부터 예기하던 극히 일부의 내 견해를 요약해 주었구먼. 손도 안대고 코푸는 일이 가끔 있어서 기쁘다. 정책한국당 창당할깜? 흠... 날보면 사시나무 떨 듯하는 년넘들이 경악?

촌평2) 과거사 규명은 코즈모스(우주) 만큼이나 막연한 광범위지. 이성계 위화도회군까지 손델순 없잖여. ㅎㅎ, 지금 당장 민족의 미래가 급하기 때미 일제부터 현재까지, 반민족행위 즉 충일, 빨갱이 문제만 해결해도 국민들이 정의와 공의를 바탕으로 사랑과 풍요의 이정표를, 아름다운 꿈을 펼칠 수 있지. 내민족의 미래가 낙관적 역동적일 수 있다는 것이지.

촌평3) 過去之事往事無論이란 말이있지. 매듭이 말끔한데도 과거를 자꾸 논한다면,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할 우리의 자손에게 누가 되지. 그래서 과거의 일은 지나갔으니 논하지 말자는 것이지. 과거의 불의를 해결할 수도 있는데 해결 안한다거나, 은폐될 때, 과거를 논하지 말자는 의미는 아니지.

촌평4) 배심제의 민족국가범죄재판소가 생기게 되면 많이들 조심하게 되지. 민족과 국가에 대해 함부로 경거망동, 언행하지 못하지.

 

 

   예강17  

 

신기남 사퇴 회견 네티즌 비판 쏟아져

  2004.8.19 (목) 15:11   조선일보

 

[조선일보 인턴 기자]
19일 오전 9시 30분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의 의장직 사퇴 기자회견과 관련, 인터넷 포탈사이트 등에는 신 의장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판과 실망이 쏟아지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기가막혀’라는 네티즌이 “우리 국민이 신기남 의장을 친일파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라며 “거짓말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않나”라고 기자회견 내용을 비판했다. 신 의장은 회견에서 부친의 과거 친일 행적에 대해 “겸허한 마음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다”면서 “7월 당시 제가 아는 사실만이라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것은 저의 모자람이었다고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사이트 조인스닷컴에는 ‘최순철’이라는 네티즌이 “끝까지 변명으로 일관한다”면서 “몰랐다는 말은 말도 안되고, 또 일본군이나 경찰이나 다를 것이 무엇인가”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사이트 동아닷컴에는 ‘rim37’이라는 네티즌이 “부친의 친일행적이 밝혀지기 하루 전날조차도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3대가 가난하고 친일파 후손의 3대는 떵떵거리고 산다’며 그 자신이 바로 떵떵거리고 산 친일파의 후손임에도 바로 자신에게 해당하는 비난을 스스로 헤댔다”며 신 의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비난했다. 대표적인 친노(親盧) 사이트 서프라이즈에도 기자회견 이후 간간이 신기남 의장의 이야기들

 이 올라오고 있다. ‘똥향기’라는 네티즌은 “신 의장이 아버지 행적을 몰랐을리 없다”면서 “말 되는 소리 해라”고 분노했다. 또 이 네티즌은 “집안에 사진도 있었을 텐데, 아부지 악질 행각을 몰랐을리 있나”고 반문했다. 또 본인을 열린우리당 당원이라고 소개한 네티즌 ‘똘똘이아빠’는 신 의장의 기자회견 직후 “신 의장 본인이 부친이 일제 때는 교사였었고, 해방 후 경찰에 투신하여 고위 경찰간부를 지냈다는 자랑을 여기저기에 하고 다닌 것이 계기가 된 것이다”며 “자기 반성을 토대로 정말 자신의 과거에 한점 부끄럼이 없는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서 누가 뭐라해도 떳떳하게 옳고 그름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 ‘techsa’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이 “증인도 나왔고 오장(하사)이면 뻔한건데 잘못이 있다면이라니”라며 “그만둬야 하는 이유가 도덕성 문제 때문인 것을 모르는 것이냐”며 기자회견에 실망감과 분노를 드러냈다. ‘uiop62’라는 네티즌은 “당연히 정계은퇴 선언을 해야 한다”라며

“신동아에서 이 사실 밝히지 않었으면 끝까지 오리발 내밀고 일제청산 한다고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바로바로’라는 네티즌이 “신기남 아버지가 일본헌병이라서 욕을 하는게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나쁘다”라며 신 의장 개인보다 도덕성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또 ‘풀사랑’이라는 네티즌은 “거짓말로 버티다가 증인까지 나타나니 할 수 없이 자백하는것이 범죄자와 똑같다”라며 신 의장의 행동을 비판했다.
  신 의장의 홈페이지에도 ‘강서갑구 주’라는 네티즌이 “조용히 완전히 정치에서 물러나는 것이 과거사를 사죄하는 것임을 알고 기회주의자의 낙인을 무서워하라”며 신 의장을 비난했다. 그러나 신 의장을 옹호하는 네티즌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같은 사이트에서 ‘지지자’라는 네티즌은 “솔직히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 보기 좋다”며 “친일 청산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더욱더 명백하게 일해주시기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또 열린우리당 홈페이지에는 “당신의 그 결단이 비록 고통이 되겠지만 이 나라의 위정자들이 가야 할 길이 아닌가 싶다”며 “이 나라를 위하여 의장님과 같은 위정자들이 더욱 많아져 정치인이 진정 존경받고 믿음을 받는 사람이 되는 초석이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격려의 글이 베스트 글로 선정되어 게시판에 올라와 있다.러나 신 의장이 광복회 사과와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19일 오후 2시40분 현재 신 전 의장의 홈페이지에는 그‘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제목으로 신기남의 선친은 대한민국 최고의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수훈하

신 신상묵 전투사령관입니다”라는 내용이 버젓이 남아 있다. (조혜정 조선일보 인턴기자·명지대4년·woory0404@hotmail.com )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촌평1) 은퇴하시게. 혼자 하야하기 심심하면 물귀신되어 빅그네하고...

촌평2) 남산에서 무방향 짱돌날려서 대가리 터지는 기득층특권층지도층 신기 년넘 <클릭~> 10명중 8,9명은 忠日? 십중팔구? 심각?

촌평3) 묘지와 족보가지고 장난하는 년넘들 중 지역 토호행세 년넘 대부분이 忠日 사실을 완벽히 은폐하고 애국지사로 조작, 변형의 달인 등 부지기수, 무량대수, 불가사의.

촌평4) '일장기 휘날리며'로 바꾸면 1초 이전  모두 용서?

촌평5) 신기년넘의 忠日 사건이 반민족 범죄청산의 기폭제가 되길 기원한다. 체계있고 일사분란, 이로정연, 흐지부지 되지 않는, 꼼꼼한 정리정돈이 내유외강 민족과 국가의 풍요 미래를 보장한다.

촌평6) 忠日 및 불량놈!현 등 정일넘 똥줄 기쁨조 됴다세력의 청산, 도태 및 참수작업이 내 민족과 국가의 아름다운 도약을 보장한다.

 

 

 

   예강18 !!  

 

신기남 의장 부친 기념비, 한라산 정상에   

 2004.8.19 (목) 19:13   경향신문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의 부친 신상묵씨를 칭송하는 기념비가 한라산 정상에 2개나 세워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1개는 사라진 상태며, 1개는 한라산 백록담 북벽에 아직도 남아 있다. 19일 제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일제시대 친일 행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신상묵씨는 제주 4·3사건의 마무리단계인 1954년 8월 28일 제주도경찰국 제16대 국장으로 부임, 1956년 12월 2일까지 재직했다. 당시 제주도 상황은 한라산에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된 5명의 무장대를 토벌하기 위한 마지막 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신 국장은 이들의 행적이 포착되지 않자 1954년 9월 21일을 기해 한라산 금족령(산중 입산자는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해제하고 한라산 개방을 선언한 뒤 주민들의 성곽 경비도 철폐하는 조치를 취했다. 제주 경찰은 이에 맞춰 ‘평정 기념비’를 한라산 백록담 서쪽 정상에 건립했다. 산악인 진창기씨(49)는 “현임종씨가 지은 ‘본대로 느낀대로’ 책에는 평정기념비를 배경으로 1958년 8월에 촬영한 사진이 나온다”며 “그 이후 이 기념비가 신 국장을 찬양하는 내용 일색이라는 이유로 일부 산악인들에 의해 쓰러뜨러진 뒤 서쪽 절벽으로 굴러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평정 기념비가 세워진지 1년 후인 1955년 9월21일에는 당시 제주 4·3사건 토벌부대였던 신선(神選)부대장 허창순이 글을 쓰고, 동화임업사장 이관철이 건립한 것으로 새겨진 ‘한라산개방평화기념비’가 한라산 백록담 북벽 정상에 세워졌다. 지금도 남아있는 한라산개방평화기념비에는 “제주도경찰국장 신상묵은 4·3사건으로 8년간 봉쇄됐던 한라보고를 갑오년 9월21일 개방하였으니 오직 영웅적인 처사가 아니리오. 다만 전도(全島)는 기여한 자유와 복음에 감훈할지어다”라고 새겨져 있다. 신 국장은 1955년 2월9일에는 직접 5명의 무장대 가족을 방문해 자수하면 목숨은 보장한다며 자수를 권고했던 것으로 기록돼있다. 제주4·3연구소 오승국 연구실장은 “신상묵 국장은 부임 후 선무공작과 유화책에 집중해 4·3사건을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친일논란과 관련, 한라산개방기념비가 좋다 나쁘다라는 단정적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홍균기자〉

 

촌평1) ㅎㅎㅎ, 17번 촌평하자마자 까마귀날자 (천정에 메달아 놓은) 배 떨어지남? 거봐, 빙산의 일각이여. 극히 일부지만? 지방 토호세력 등 우리나라 기득층, 지도층 년넘 집안의 교활한 만행에 비하면 신기넘 애비는 명함도 못내밀지? ㅎㅎㅎ

촌평2) 서쪽 절벽으로 굴러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음... 떼굴떼굴 지쪄서 파손되었겠구먼. 승질 더러운 년넘이 발길질? 귀한 忠日忠韓 물증? 유물을 훼손했구먼. 박정희 기념관? 됴다도서관에다가? 아니지... 忠日박물관에다가 모셔놓고 후손에게 간쓸개 긴장보관 잘하라고, 조심하라고 경각을 삼았으면 좋았을 껄. 

 

 

    예강19  

 

"당시 친일 안한 사람은 실력이 없었어"

2004.9.6 (월) 16:20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기자]
 
선배 교수들의 친일행적을 논문에 언급했다는 이유로 '괘씸죄'에 걸려 재임용에 탈락한 후 6년째 서울대 교정에서 천막생활을 하고 있는 김민수 전 서울대 미대교수가 '친일미술'의 개념과 범위, 업보와 유산, 그리고 이 시점에서 친일청산이 필요한 이유 등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오마이뉴스>는 김 전 교수의 조속한 강단 복귀와 명예회복을 바라며, 그의 글 전문을 소개한다. 이 글은 월간 <민족예술> 9월호에 실린 것을 필자가 재구성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1. 친일청산이 절실한 이유

최근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신종아편을 투약한 후 심각한 환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고구려는 고대중국의 소수민족 정권"이라는 둥 패권주의 행보가 도를 넘어선다. 이에 한국정부는 신중론의 차원에서 고구려사의 연구역량을 축적해 국제사회에서 '고구려사는 한국사의 불가분한 일부분'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텐노제(天皇制) 파시즘과 대동아공영권을 잊지 못한 일본은 왜곡, 망발, 신사참배 등 제국주의 야욕을 아직도 꿈꾼다. 이 와중에 며칠 전 국내에선 한 '국립' 서울대 교수의 주장이 논란이 되고 있다. 과거사 진상규명에 관한 TV토론에서, 그는 내부의 자성을 지적하면서도, 일본 학자들이 전후에 치밀하게 짜놓은 범죄의 재구성 자료에 근거해 일본식으로 정신대 문제를 주장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패망 후 철수하면서 일제는 반인륜적 범죄와 수탈의 증거자료를 대부분 없애버리지 않았던가. 설상가상 해방공간에서 친일파가 장악한 권력의 비호 아래 과거사 진상규명도 무산되었다. 아직도 대학에서 친일문제 언급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도 같아서 말했다가는 왕따에 파문까지 당한다. 이런 피해·은폐국 학자가 가해국 일본의 주장을 대변하듯 "정신대 관련해 일본에는 2000점의 자료가 있고 그런 일본학자들이 존경스럽다"고 한 것은 큰 오해를 살수도 있다. 한가지만 물어보자. 일본 측 연구와 사료는 그토록 감탄하고 존경하면서, 실제 정신대 피해 당사자들부터 나온 '피를 토하는 실증' 인터뷰와 사료는 왜 말하지 않는가? 이처럼 불과 60여년 전의 친일문제를 논의하는데도 장애가 많은 나라에서 어떻게 천년도 넘은 고대사 왜곡에 맞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친일파 비호론자들의 방식대로라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따지는 것은 국력과 시간의 낭비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늘 이렇게 말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일을 따져서 무엇 하나? 이제 와서 불신과 불화를 조장하는 저의가 뭐냐. 국가관이 의심스럽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국가와 민족은 근대의 산물이다. 따라서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사에 대해 논할 수 없다"고까지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정말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다.역설적으로 이런 풍경 때문에 현재는 역사문제에 발목 잡히고 삶이 혼란스럽다. 그래서 역사문제는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미래를 담보한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오늘, 한국 미술계 내 친일미술과 일제잔재가 "청산이냐 정리냐"라는 말장난을 떠나 완전히 사라지게 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운보 김기창의 '화필보국'
 
▲1944년 <회심>에 실린 운보 김기창(1914~2001)의 '총후병사(銃後兵士)'
 
▲ 1944년 <소국민>에 실린 운보 김기창의 '적진육박(敵陣肉薄)'
혹자는 완전군장한 병사가 접이의자에 앉아 있는 '총후병사'(위)에 대해 단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자세라서 멸사봉공의 의지가 약해 친일경향성이 희박한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오른쪽 그림을 보라. 김기창의 이 '적진육박'(敵陣肉薄)은 1944년 '결전(決戰)미술전'에 출품한 그림으로 '조선군 보도부장상'을 수상했다.

<소국민>의 주독자층은 아이들이었다. 황국신민으로서 아이들의 전투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붓 가는데 마음 가고, 마음 가는대로 붓 간다. 이런 그림은 철저한 내선일체의 마음이 없이 절대로 그릴 수 없다. 창검을 꼽고 육박전을 치르러 돌진하는 황군의 살기가 마치 표범과 같아 서늘하다.

그의 친일행적은 다채롭다. 대표적인 것만 예로 들면, 1942년에서 1944년까지 개최된 반도총후미술전 초대작가를 비롯해, 1943년 8월 7일자 매일신보에 징병제 축하 시화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로 화필보국했다. /

 
 

2. 유산과 업보

그동안 한국 미술계에서 친일미술과 일제잔재 청산에 대한 주장과 연구는 소수의 뜻있는 연구자들에 의해 이어져왔다. 해방 이후 작은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대표적으로 1983년 미술잡지<계간미술>의 특별기획 '한국미술의 일제식민 잔재를 청산하는 길'에 참여한 9인의 연구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김윤수·문명대·박용숙·안휘준·이경성·이구열·임종국·정양모·최순우. '한국미술의 일제 식민잔재를 청산하는 길'. <계간미술>. 25. 1983 봄호).

그 후 친일미술의 범위를 잡지 삽화와 표지 일러스트레이션까지 확장하고 김은호·김기창·심형구·김인승·윤효중·김경승의 친일 행적을 심층 조명한 1990년대 초 이태호의 연구를 거쳐, 방대한 친일미술 사료를 '전시체제 미술활동'으로 분류해 연대기적 서술방식으로 집대성한 최열의 <한국근대미술의 역사>(1998)와 같은 굵은 족적들이 있었다.

이외에도 몇몇 연구자들의 노력이 점과 점을 연결하며 미약하게나마 '친일미술 연구사'라는 흐름을 형성해왔다(친일미술 연구의 역사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해방 후에서 1990년대까지 연구사를 정리한 다음 문헌을 참고바람. 최열. '친일미술 연구의 역사와 개념, 범주' <광복 57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 발표문>. 2002.8.14.).

그러나 아쉽게도 해방 후 59년이 지난 현재까지 미술계에서 친일미술의 용어와 개념조차도 합의된 적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명백한 사료를 눈앞에 두고도 친일미술가를 규정하는데 늘 논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친일미술을 '일제잔재' 혹은 '식민잔재'라는 말과 뒤섞어 사용하고, 설상가상 혹자는 그것이 특정 양식과 주제만의 문제인양 감각과 기법차원에서 논의하자고 초점을 흐렸다. 이 결과 처리해야할 친일미술의 쓰레기더미는 거대하게 쌓여갔다.

여기엔 두 가지 큰 원인이 있다. 첫째는 청산을 가로막는 친일미술인들과 그 후예들이 용어의 초점을 계속 흐려놓았다는 점이다. 다른 문화예술계처럼 미술계 역시 친일세력이 해방공간에서 지배구조의 기득권을 장악했다. 곧이어 친일미술의 더미위로 은폐·엄호용 독버섯들이 피기 시작했다.

예컨대 아무리 친일을 했어도 재능과 업적이 뛰어나 문화예술에 공헌했다는 '재능론과 기여론'에서부터, 친일은 강압에 의한 부득이한 결과였다는 '상황론', 따지고 보면 일제 때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친일한 것이 아니냐는 '전국민친일론' 등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임헌영. '정신사적 측면에서 본 친일예술'. <친일음악의 진상展 기획특집: 굴욕의 노래, 친일음악>. 민족문제연구소. 2003).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재능론과 기여론'이다. 대표적인 예가 친일미술을 가리는데 있어 만일 어떤 화가가 초기 일본화풍을 버리고 훗날 새로운화풍을 모색했다면 친일잔재 극복에 노력한 바가 있기에 과거 행위에 대해서는 묵인할 필요가 있다는 식의 주장이다(원동석. '민족미술의 정립문제'. <마당>. 1983.6.).

혹자는 "미술에 있어 친일행위란 어느 미술가의 개인적 친일 언동이나 일제부역보다는 그의 특정 작품의 주제와 내용상의 일제정책 협력형태가 지적되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이구열. '역사 규명과 특정인 매도의 차이'. <월간미술>. 1993.8).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친일미술을 소위 '순수미술'을 논의할 때처럼 마치 자치적인 영역에 존재하는 미학적 논쟁거리로 분리시킴으로써, 의도에 상관없이 친일미술가를 슬그머니 안개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둘째는 친일미술이 '일제잔재'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유전자가 복제되어 일상 삶과 시각문화를 지배할 만큼 자가증식했다는 점이다. 은폐된 친일미술은 일제잔재의 형태로 교육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정신과 철학이 부재한 이 복제과정은 형식주의에 사로잡힌 후진양성과 시각문화를 조장했다. 그러나 빈껍데기 문화보다도 더 큰 폐해는 일제잔재의 형태로 남겨진 미술가들의 반사회·반문화적 기회주의 삶의 가치관이다.

이는 정신사적으로 죽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것이 한국의 주류 미술가들이 '순수미술'의 미명하에 현실문제와 무관한 삶을 살고, 일제에 화필보국했듯이 독재권력에 아부해 미술을 환경치장술로 격하시키고, 심지어 친일의 마음과 손으로 안중근, 유관순 등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동상과 영정을 도맡아 제작해 민족정기를 능욕한 이유이다.

또한 천황제 가족주의 파시즘으로부터 학습한 일제잔재로서, 학맥·인맥 중심의 미술계는 자신의 이익만을 집단적으로 보호하는 파벌형성에 주력한 못된 전통을 세습시켰다. 이때 '순수'미술이란 온갖 속세의 죄를 스스로 씻기 위한 면죄부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이런 업보로 오늘날 한국 미술계에는 '친일미술과 일제잔재'를 동시에 수술해야하는 병원 수술방과 같은 막중한 스트레스가 남겨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개념은 다르며, 치료방식도 달라야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즉 미술계의 일제잔재란 친일미술이 청산되지 않은 결과 남겨진 산물로, 친일미술의 유전자를 보유한 미술계의 제도적 습성·미학적 태도·형식·기법 등을 망라한 용어인 것이다. 달리말해 일제잔재를 해방 이후에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확대 재생산시킨 장본인들이 바로 친일미술가들인 것이다.

치료의학 차원에서, 고질적 종양에 해당하는 친일미술을 먼저 수술해야 일제잔재라는 증세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치료시기를 놓쳐버렸기에 친일미술과 일제잔재는 한데 뒤엉켜 돌연변이와 온갖 합병증을 유발한다.

따라서 한편으로 친일미술 종양제거 수술을 진행하고, 다른 한편에서 일제잔재의 여러 합병증에 대한 입체적이고 보다 섬세한 치료가 강구되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개념적 혼란이 해방 후 친일미술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해 야기된 결과라고 본다. 그 자체가 시급히 청산해야할 일제잔재인 것이다.

 
  친일 과오를 부끄러워하지 않던 월전 장우성  
 
 
▲1944년 '결전미술전람회 목록' (김복기 소장)
 
이 사료를 보면, 운보 김기창의 '적진육박'(敵陣肉薄)을 위시해 출품작 제목 거의가 전투적 의미로 가득 차 있다. 결전미술전람회는 양화(洋畵), 조소(彫塑), 일본화(동양화) 3부로 나뉘어 경성일보사와 조선군 보도부가 주최하고 조선총독부 정보과, 국민총력조선연맹, 조선미술가협회가 후원한 대표적 친일미술전이었다.

이 목록에 의해 조병덕, 한홍택, 배운성, 박영선, 김영선, 윤효중, 장우성 등 20여명의 부일협력자들의 행적이 밝혀진다. 창씨개명을 해서 확인 작업이 요청되는 인물들도 다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위 사진에서 붉은 선으로 표시한) 월전 장우성은 유관순 열사의 영정을 심하게 왜곡·능욕하고도 또 다시 영정 제작을 맡아 최근까지도 논란을 빚고 있어 주목하게 한다. 그는 1983년 <계간미술>(봄호)에 친일미술 청산 기획특집이 나가자 다른 친일미술가들과 함께 신문지면에 반박 광고문을 게재해 실력행사도 불사하는 등 과오를 부인해 왔다. /
 
 

3. 개념과 범위

친일미술을 단지 시늉만이 아니라 진정 청산해야할 대상으로 여긴다면 이제 그 의미는 분명해져야 한다. 친일미술은 '아르누보'나 '팝아트'와 같이 진리, 미, 자유를 추구하는 일반적인 예술활동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제의 침략주의와 내선일체 황국신민화 시책을 수행할 목적으로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미술단체, 시책 선전을 위한 미술품 제작, 저작 및 기타 방법의 활동을 뜻한다. 이러한 영역에서 현저한 활동을 한 미술계 인물을 '친일미술가'라 한다.

이는 법률적으로 이미 합의된 사항에 기초해 내린 정의이다. 해방 직후 대한민국 제헌국회는 친일미술가를 규정할 수 있는 법적토대를 이미 마련해 놓았다. 1947년 7월 2일 제정된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 등에 대한 특별조례'와 이 조례를 토대로 1948년 9월 29일 법률3호로 공포된 '반민족행위처벌법'(이하 반민법으로 약칭)이 그것이다.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 등에 대한 특별조례에는 민족반역자에 대한 정의와 함께 부일협력자를 "일본통치 시대에 일본세력에 아부하여 비적행위로 동포에게 해를 가한 자를 부일협력자로 함"이라 규정하면서, 협력자에 해당하는 죄를 적시하고 있다.

친일미술 정의를 위해 관련 사항만 추리면, "일본통치의 부·도 이상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이 되었던 자"(나-1항), "일본국책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각 단체 및 언론기관의 지도적 간부"(나-3항) 조항이 있다.

또한 반민족행위처벌법 제4조10항은 "일본국책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각 단체본부의 수뇌간부로서 악질적인 지도적 행동을 한 자", 제11항은 "종교, 사회, 문화, 경제, 기타 각 부문에 있어서 민족적인 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본침략주의와 그 시책을 수행하는데 진력하기 위하여 악질적인 반민족적 언론, 저작과 기타 방법으로써 지도한 자"로 명시하고 있다(법조항 인용은 무크·친일문제연구(3). <반민특위: 발족에서 와해까지>. 가람기획. 1995. 350~357쪽에 근거함).

만일 반민법에 의해 출범한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활동이 친일세력에 의해 무산되지 않았더라면, 동법 제4조11항이 명시한 "종교, 사회, 문화, 경제, 기타 각 부문"의 조사활동 영역에 근거해 친일미술가에 대한 처벌과 단죄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친일미술 청산작업은 관념적 차원이 아니라 일제와 그 협력자들이 저지른 '광기의 추억'이 생생하던 시기에 국가적으로 합의한 반민법의 토대 위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친일미술은 일제 침략주의가 추구하는 군국주의 파시즘을 선전했다는 점에서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 (NSDAP)이 의도한 전체계획 속의 한 구성요소인 '나치미술'혹은 '제3제국의 미술'과 유사한 성격을 띤다. 그러나 반민법에 의거할 때 친일미술이 나치미술과 다른 점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미술가의 '부일협력의 적극성'에 초점이 맞춰진 용어라는 사실이다.

전체 일제강점기 중에 민족반역자와 부일협력자들은 한일합방 이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친일미술가들의 적극성이 집중적으로 현저해진 시기는 일제 말기 1937년 중일전쟁부터 해방 전까지 소위 '전시체제 미술활동시기'로 분류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미술사가 최열은 친일미술을 전기와 후기 친일 시기로 구분한다. 그는 말하길, 전기친일 시기는 "개화파, 개화자강 노선 따위 안에 자리잡은 친일사상과 의식에 이어져있는 미술행위"를 뜻하고, 후기 친일시기는 해방이후 식민성의 청산을 과제로 삼은 시기를 말한다면서, 전기를 다시 1차와 2차 친일시기로 구분했다. 이중 2차 친일시기가 바로 "1937년 또는 1940년부터 행해진 전시체제 미술활동을 대상으로"한 시기이다).

 
  내선일체를 위한 치밀한 세부묘사  
 
 
 
▲단광회 회원의 '조선징병제시행기념 기록화'. 1943년
 
오른쪽 그림은 친일미술단체 단광회 소속 19명의 화가들이 4개월에 걸쳐 공동제작한 대작이다. 여기에 일본인 화가들과 함께 김인승·박영선·김만형·손응성·심형구·이봉상·임응구가 참여했다.

이 그림은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쌍스의 화가 마사치오가 세속적인 '납세의 의무'를 설득하기 위해 그린 <세금을 바치는 예수. 1426~7>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화면 중앙의 학도병을 둘러싼 인물들의 자세와 표정에 주목하기 바란다. 징병제가 조선의 자식을 황군으로 내선일체하는 '영광된 의식'임을 암시한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자식의 어깨에 살포시 얹은 왼손에서 광기의 의식은 거의 종교적 수준의 절정에 달한다.

여기에 그림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또 다른 보조 장치가 있다. 서로 다른 필체의 세부 인물묘사이다. 이를 통해 일억일심의 마음과 상황적 신뢰감을 불어넣는다. 바로 이것이 공동제작한 진짜 이유였다. 그림은 조선인들에게 징병제 시행에 따른 '육체헌납의 의무'를 여러 시각적 장치로 교묘히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친일미술품은 단순 심리를 이용한 선동에서부터 종교와 신화까지도 동원하는 고단수 선전물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따라서 이미지의 맥락이 지닌 의미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
 
 

중일전쟁 발발 다음해인 1938년에 일제는 조선을 전시동원체제로 개편했다. 이는 조선인을 총알받이로 전장에 내몰고 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체제로서, 바로 이 체제유지를 위해 고안된 시책이 '내선일체 황국신민화'였다. 일제는 신사참배 및 창씨개명을 통해 조선인과 일본인(내지인) 사이의 차별을 없애는 것처럼 선전했다.
사실은 1938년 시행한 지원병제도가 여의치 않자 1942년 징병제로 전환하기 위한 위계에 불과했다. 그러나 당시 차별 없이 일본인이 된다는 내선일체 전략에 저항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감격한 나머지 자발적으로 시책 선동에 발 벗고 나선 조선인 지식인들과 예술가들도 많았다.
이 시기에 친일미술가들의 심리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대표적으로 구본웅과 심형구의 예를 보자. 예컨대 구본웅은 1939년 제18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의 유채수채화 분야에 대해 평하면서 "내선일체의 현하에 있어 조선미전을 일 변방이 아니라 중앙화단의 연장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양화 참견기'. <조선일보>. 1939.6.13~16)고 주장하고, 1940년 5월에 이르러 "신동아 건설에 있어 화단의 역할" ('신동아 건설에 있어 화단적 역할'. <동아일보>. 1940.5.1)을 강조하더니, 마침내 같은 해 7월 "신동아 건설을 위하여 미술의 무기화에 힘쓸 것"('사변과 미술인'. <매일신보>. 1940.7.9)을 힘차게 외쳐댄다. 또한 심형구는 신체제 아래에서 신문삽화, 포스터 등을 그려 생산미술에 힘써서 멸사봉공하자는 식으로 진지하게 요구하기도 한다('시국과 미술'. <신시대>. 1941.10월호).
이들의 생각은 흔히 친일미술가를 옹호할 때 감초처럼 쓰이는 '상황론'으론 더이상 설명이 불가능하다. 즉 "친일은 강압에 의한 부득이한 결과였다"는 변명의 약발이 더이상 먹히질 않는다. 이는 일본이 중일전쟁으로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1941년 태평양전쟁에 항공모함과 비행기를 띄우는 승승장구를 보고 내선일체 황국신민으로서 친일미술가의 삶을 살겠다는 노골적인 신앙고백과도 같은 것이다.
바로 이러한 친일미술가들의 내면 풍경과 행동은 훗날 자서전에서 일본이 그렇게 쉽게 질줄 몰랐다는 식의 고백을 한 미당 '서정주의 마음'(김죄용. <협력과 저항: 일제 말 사회와 문학>. 소명출판. 2004. 122~125쪽)과도 통한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제강점기 친일미술 진상규명은 최열이 주장하듯 1차와 2차 시기로 구분하되, 2차 시기인 1937년 중일전쟁 이후 해방 전까지의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뤄야한다고 본다. 이 시기 동안 경성미술가협회(후에 조선미술가협회로 개칭)를 비롯해 단광회 등의 친일성격이 현저한 단체 및 기관 소속의 간부급 위원들과 각종 관제 전시회와 친일 전람회의 심사위원과 추천작가 및 출품 작가들이 집중검토 대상에 속한다.
미술계에서는 앞서 언급한 반민법 제4조10항 "일본국책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각 단체본부의 수뇌간부로서 악질적인 지도적 행동을 한 자"가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관제 단체전과 전람회의 경우, 심사위원을 맡은 자와 연 4회 특선 이상을 수상해 추천작가의 지위를 획득한 미술가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다음은 회화, 신문 삽화, 만화, 포스터, 책표지 등의 매체구분 없이 군국주의 파시즘의 경향과 내선일체 황국신민화 시책 수행에 공헌한 미술가들이 포함될 것이다. 혹자는 순수회화 외에 삽화 등을 친일미술의 공식적 논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소위 대동아공영권 신체제는 전시동원이 국책이었기에 주력 선전매체는 회화보다 오히려 삽화와 포스터였다. 다음의 심형구의 말은 이를 입증한다. "민족의 근본적 요청이라는 것이 예술을 위한 예술은 용허치 않게 되었다. 하등의 목적이 없이 민족이상도 국가의식도 가지지 않은 예술이요, 미술이라면 무가치한 물건이다."(심형구, 위의 글)
기존의 연구 성과에 근거해 현재까지 밝혀진 친일미술가의 수는 대략 43~50여명 선으로 알려져 있다. 1983년 계간미술 특집기획에서 다뤄진 43명, 이태호의 연구를 통해 대략 50여명 이상의 인물이 거론되었다.
이태호는 고 임종국(<계간미술> 1983년) 선생과 원동석(<실천문학> 1985년 여름호), 최석태(<역사산책> 1990년 12월호)에 기초해 52명과 추가적인 명단을 정리한 바 있다(이태호. '1940년대 초반 친일미술의 군국주의적 경향성'. <근대한국미술논총>. 학고재. 1992. 322쪽 참고바람).
이 명단은 앞서 말한 부일협력의 적극성과 해방 후 미술계에 끼친 '인물의 영향력'에 가중치를 두어 면밀히 재검토되어야할 것이다. 그동안 이 땅에서 친일미술가들은 반성과 참회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가 불리하면 은폐하고, 업적홍보 때는 내놓고 활용하며 기득권을 강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물의 해방 후 영향력 평가'는 친일미술가를 판단하는 또다른 중요변수가 되어야한다. 그들의 생존전략은 해방공간에서 보리쌀 2되를 얻어먹기 위해 보도연맹에 가입했다가 영문도 모르고 처형당한 수많은 생계형 부역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기회주의 일신영달형이기 때문이다.

 
  심산 노수현의 '아주 특별한' 만화  
 
 
▲왼쪽은 노수현의 만화 멍텅구리 '운전수편' <신시대> 1941.1. 오른쪽은 같은 만화 '라디오체조편' <신시대> 1941.3
 
심산 노수현(1899~1978)이 1940년 1월부터 그린 이 연작만화는 내용이 매우 특별하다. 형식만 만화일 뿐 내용은 일제의 '전시체제 국민요강 홍보물'에 해당한다.
'운전수편'에서는 "국력총동원하는 때에 운전이라도 배워 전선에 나가자"는 선동을, '라디오체조편'에서는 아이들을 미루꾸로 꾀어서 라디오체조에 동원한다는 내용이다. 이외에도 1941년 2월호 <신시대>에는 "알뜰하게 사는 머리를 써서 신체제 시대에 국민된 도리를 다하자"는 취지의 '알뜰살림편'이 나온다.
이 내용들은 모두 일제가 전쟁 지지열을 고양할 목적으로 창안한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의 핵심 요강들이었다. 심산의 <신시대> 멍텅구리는 1940년 천황의 최측근 고노에 수상이 개념화한 '신체제' 하에서 총독부가 1940년 9월부터 벌인 <전시국민생활체제 확립기준안>의 홍보를 목적으로 했던 것이다. 심산은 이외에도 황군장병 위문용 부채 그림을 그려 일제에 헌납했다. /
 
 

4. 남기는 말

앞서 논의했듯이 친일미술은 일제강점기 미술가의 '부일협력 행위'에 초점이 맞춰진 용어이다. 필자는 이러한 접근이 한국 미술계가 시민사회의 일원이 되어 건강해지는 길이라고 믿는다. 친일미술의 예술사적·미학적 논의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았다. 지면도 부족하고 더이상 논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남농 허건은 남제(南齊)의 사혁(謝赫)을 인용해 "회화의 원리가 세워지기 전, 동양의 화단에서는 우수한 작품을 가늠하는 최고의 기준이 오직 작가의 인격"이라고 했다(허건. <南宗繪畵史>. 서문당. 1994. 23~25쪽). 사혁이 주장한 기운생동, 골법용필, 응물상형, 수류부채 등의 소위 '육법론'(六法論)에 앞서 작품의 제1성분은 인격론이고, 제2성분이 작품의 성질이므로 작품을 따지기 이전에 작가의 인격이 우선한다는 말이다. 친일미술은 작가론의 차원에서 다뤄져야한다.
프랑스의 경우, 파리해방 후 당시 전국미술가연맹 회장이었던 파블로 피카소는 반역자 숙청재판에 회부해야할 미술인 명단을 파리 경시청과 검찰에 전달했는데, 이때 블랙리스트에는 오통 프리즈, 폴 벨몽도, 폴 랑도프스키 등의 유명 미술인들이 포함돼 있었다. 숙청위원회가 주목한 화가들 중에는 점령기간 중에 독일여행을 하면서 나치협력을 한 것으로 보이는 화가와 화상들도 다수 포함되었을 만큼 단호히 진행되었다.
이 결과 숙청작업은 1946년 6월 미술가 23명을 친나치부역미술가로 낙인찍음으로써 숙청이 마무리되었던 것이다(주섭일. <프랑스의 대숙청: 드골의 나치협력 반역자 처단 진상>. 중심. 1999. 264~265쪽). 당시 드골 대통령은 예술가가 가장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선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악에 대해서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임헌영. 앞의 글. 21쪽).
이러한 역사가 있었기에 오늘날 세계는 프랑스에 예술을 위대하게 여기는 사회문화적 풍토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반면 대한민국에서 예술을 위대하게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짐승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고 하건만 철학자 탁석산의 말처럼 한국문화에선 "거장이 죽으면 작품도 함께 잊혀 진다"(탁석산. '한국문화의 정체성'. <디자인문화비평 05: 디자인과 정체성>. 안그라픽스. 2001. 206쪽).
그는 이 특이현상을 한국문화의 천박한 풍토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이는 뻔뻔한 영웅들 자신의 업보 탓이다. 그들은 처벌하자는 것도 아니고 단지 반성하고 자숙하라는 요청에 대해 참회는커녕 집단적 실력행사도 불사했다.
대표적 예가 1983년 <계간미술> 봄호 특집기획 '한국미술의 일제식민 잔재를 청산하는 길'에서 거론된 미술가들이다. 이들은 일간지 지면 광고에 '불신과 불화를 조장하는 저의를 묻는다'(조선일보·동아일보. 1983.4.21일자)라는 성명서를 내고, <계간미술> 발행사인 중앙일보사에 대해 공개사과문 발표를 요구했다.
때론 스스로 '높은 나무의 의연함'을 과시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예컨대 운보 김기창은 1993년 충북 청원에 건립하려던 자신의 기념관 계획에 대해 시민단체 등에서 반대운동이 일어나자 다음과 같이 의연하게 주장했다.
"…(당시) 친일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실력이 없었어. 당시 뽑힌 사람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인데 높은 나무가 바람을 많이 받는 것처럼 나는 지금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것…."
사실 모든 인간은 잘못과 실수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행위에 대한 관용과 용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뉘우칠 때나 가능하다. 그때 비로소 '불신과 불화'의 근본 원인을 해소하고 화합해,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역량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오마이뉴스 기자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촌평) 당시 친일 안한 사람은 실력이 없었어? 무신 실력?  재주? 아양떠는 능력?  알아야 면장하지? 실력있으면 돈 모거나 생활력이 있었것지.  폴짝 뛰어 태평양 징검다리 하와이거쳐 만주가서 독립운동했다면? 말이 쉽지. ㅎㅎㅎ

촌평2) 지금 이시대도 매국노가 지천에 널려있다. 반세기 방치된 매국 쓰레기덜, 목하, 매국쓰레기가 양산되는 현상은 청산하지 못한 忠日 과거사때미...

 

 

     예강20  

방미결과 설명하는 천장배원내대표

2004.10.3 (일) 15:07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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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열린우리당원내대표가 3일 오전 영등포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방미결과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희열/정치/국회/ 2004.10.3 (서울=연합뉴스)

yihy@yna.co.kr

촌평) 흐흐...  이라크 천년만년 장기주둔 천정배 맘대로 확고? 고인돌 시대부터 서울대 애덜은 하나같이  알아서 잘 기더라고. 서울대는 폐교되어야 할 이유가 부지기수. 돼지울 상징 심볼이 뿌옇다거나 흐리다고 생각하지 않니? ?? 내 눈깔이 동태 눈깔은 아니것지? 돼지울은 청색보다 똥색이 운치있는 자연 울타리.

촌평2) 태평양, 물건너가서 재롱잔치 할 필요가 절박했나?  이해 안되는 이상한 행보였지.

촌평3) 일제치하 36년 충일세력이 절딴나는 등 근현대사가 제대로 정리되었다면, 작금 현실, 벌건 대낮에 미국에 알아서 맹종하는 짓거리들을 못할텐데...

촌평4) 요번, 천정에 매달아 놓은 배가 학!! 쇼생크탈출? 야반도주? 미국가서 저지른 만행 가운데, 주한미군 철수연장과 관련해서, 나는 절대 모르는 일이다.

촌평5) 가까운 장래에, 주한미군 문제는 '둥북아 시대'에 걸맞게 근본적으로 재조정 될 것이다.  

촌평6) 지금 정치실세들은 국제역학과 됴다세력의 주구이기 때미 조정불능 한국이다. 한일합빵처럼? 국가간 계약도 평등 수평해야 한다. 난 주한미군관련 국가간 계약들이 불평등했다는 것을 수두룩 증거로 제시, 한국 -미국간 왠만한 경미 사안일지라도 가급적 무효처리. 우 ㅎㅎㅎㅎ

 

 

    예강21  

 

"정부, 사석에선 용산기지협상 '개악' 시인"

2004.10.25 (월) 15:17   프레시안

 

인터뷰] 최재천의원 "협상팀의 '기만적 호도행위' 문책감"
[프레시안 임경구,김하영/기자]  협상의 불공평성에 대한 논란에도 지난주 국무회의를 통과한 용산기지 이전협상 합의문은 26일 한미간 정식 서명을 앞두고 있다. 여야 국회의원 63명이 용산기지 이전협상 감사청구안을 제출했고, 국정감사를 통해서도 ‘개악’의 근거는 다양하게 제기됐지만 정부에겐 마이동풍일뿐이었다.
  
  공은 사실상 비준절차만을 쥐고 있는 국회로 넘어온 상태다. 과반의석의 열린우리당이 ‘불평등 협상’의 마지막 관문의 키를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대체적 분위기는 '통과'쪽에 가깝다. 여지껏 정부 일에 제동을 건 전례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의 극소수 의원들은 여전히 ‘재협상’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몇 안되는 '재협상파'인 최재천 의원과 지난 22일 인터뷰를 가졌다.
  
  
“불평등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처음부터 없었다”
  
  최 의원이 우선적으로 주목하는 대목은 협상과정에서 나타난 우리측 협상팀의 “기망적 호도행위”이다. 그는 “우리 협상팀에게 용산기지 이전협상에 내포된 전략적 의미와 90년 합의각서가 지닌 형식면에서의 위헌성과 내용면에서의 지나친 불평등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이 처음부터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3차 FOTA(한미미래동맹정책구상)회의에서 협상의 실질적 주역이었던 당시 위성락 북미국장(현 주미대사관 공사)이 “중요한 것은 협상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라는 미측의 견해에 동의한다”고 했던 발언 등을 지적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최 의원은 “협상팀은 이 문제를 있는 그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지침을 제대로 받지 않은 상태에서 미측의 일방적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했다”면서 “자신들 스스로 협의 결과를 원점으로 되돌리기에는 너무나 멀리 가버려 협상의 성과와 관련해 대통령과 국민들을 기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용산기지 협상과정에서 외교안보시스템의 문제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현 외교안보팀은 지나친 비밀주의를 고수하며 당연히 알려야 할 사실조차도 비밀로 분류하며 정보를 철저히 독점, 차단하고 있다”면서 “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협상의 내용과 과정이 공개됨으로써 국가이익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행한 각종 형태의 부실 왜곡보고가 드러남으로써 책임을 추궁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 의원은 “합리적인 비용분담의 대원칙을 전제로 한 재협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협상에 관여했던 당사자, 의사결정라인의 책임자 등 NSC, 외교부, 국방부의 협상라인을 대상으로 국회 청문회 실시를 요구하고 “총체적으로 부실한 외교안보시스템의 역량강화를 위한 계기로 작용되어야 할 것”이라고 문책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부, 사석에선 ‘개악’ 시인”
  
  최 의원은 또 최근 불거진 C4I(전술지휘자동화체계) 문제와 관련, “최근 협상관계자가 일부 언론을 통해 ‘미측이 방위비 분담협정을 통해 C4I와 임차료 비용 등을 요구해왔다’고 정보를 유출시킨 의혹이 증폭된다”면서 “이는 자신들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미측이 마치 새로운 요구조건을 내세운 것으로 호도하려는 정황이 짙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협상팀은 미국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부당한 요구조건을 내세운 것을 알았음에도 마치 최근 일인 듯이 이를 언론에 흘려 책임을 모면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당국자는 C4I는 9백만불 한도 내인만큼 문제 없다고 호도하지만 IA 2조의 규정에 근거, 미측은 용산기지 이전협상을 통해서든 방위비 분담협정을 통해서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추산하고 있는 30억~40억 달러의 이전비용에 대해서도 최 의원은 “주먹구구식 아전인수식 계산에 의한 추정금액”이라며 “정부는 당정협의에서 ‘솔직히 얼마가 들지 모른다’고 했고, 협상이 개선이 아니라는 점도 사석에서는 시인했다”고 향후 이전 과정에서 비용의 대폭 증가를 우려했다.
  
  또한 “환경 치유비용 등 천문학적으로 증대할 수 있는 우리측 부담 내용에 대해 우리 스스로 통제할 장치 없이 미측의 ‘선의’에만 맡겨놓고 있어 한국측 부담은 한국경제의 상황에 따라 고무줄처럼 증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이어 용산기지 협상은 GPR과 관련이 없다는 정부측의 부인에도 “미측은 용산기지 이전이 GPR에 따른 최대의 협상 성공사례로 자부하고 있다”면서 “우리에게는 최악의 협상실패 사례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이에 따라 용산기지 협정 UA(이전협정)와 함께 IA(이행합의서)도 국회 비준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측은 IA를 통해 구체적인 요구조건을 규정해나갈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면서 “IA는 UA에서 규정한 범위를 실질적으로 넘어서는 부분이 그대로 남아있어 위헌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협상팀은 당초 IA를 단순한 국회 보고문서로 대체하려는 입장을 유지하다가 위헌성 여부에 대한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의 이의 제기가 상당한 근거를 갖자 은근슬쩍 IA를 조약의 형태로 변경시켰다”면서 “이는 그동안 제기됐던 모든 문제점들이 타당성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이어 “제대로 된 여당이라면 청와대나 정부와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라도 잘못된 것은 더 잘못된 방향으로 악화되기 전에 바로잡아나가야 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당 지도부에 대한 당부를 덧붙였다.
  
  다음은 최재천 의원과의 일문일답 전문.
  
  
“협상팀,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려 하나”
  
  
프레시안 : 용산기지 이전협상의 가장 큰 문제점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최재천 : 용산기지 이전협정의 협상과정과 내용이 있는 그대로 공개될 경우, 우리 외교안보 팀의 총체적 협상전략 부재 및 기망행위가 명백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최근 공개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보고서에 따르면 용산기지와 관련된 대통령의 지시는 한 마디로 ‘90 마이너스 알파’ 였다. 어떤 형태로든 90년 합의각서의 위헌성과 불평등성을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시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측은 한반도의 방위와 직접 관련이 없는 미측의 새로운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른 GPR 개념을 용산기지 이전협정의 ‘임무와 기능’을 통해 반영시키고자 하였으며 우리 협상팀은 별다른 이의 제기 없이 이를 수용하였다.
  
  더구나 GPR(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의 수용에 따른 전략적 의미에 대해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의 협상 결과가 ‘90 플러스 알파’인 것은 너무나 분명함에도 불구 아직까지도 협상팀은 협상 내용이 ‘90 마이너스 알파’로 개선되었다며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용산기지 이전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자주파와 동맹 강화파간의 이분법적 대립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하고 있으나 이는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합리적 타결 노력과 협상 결과에 대해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는 투명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또한 용산지역은 120년간에 걸쳐 외국군대가 주둔했던 오욕의 장소로서 민족 자긍심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반드시 이전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협상 타결 과정과 그 내용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용산기지 이전을 현 시점에서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이 참여정부가 전략적 외교목표로 설정한 동북아평화번영정책과 근본적으로 상치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측면에 대해서도 보다 심도있게 검토되었어야 하나 그렇지 못했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프레시안 : 협상의 구체적인 문제점, 최근 불거진 C4I부터 짚어보자.
  
최재천 : 미측은 ‘임무와 기능의 이전’ 원칙에 따라 협상 초기단계에서부터 C4I와 관련된 모든 비용을 우리측이 부담해줄 것을 요청해 왔고 우리 협상팀은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이를 수용하였으며 작년 일부 방송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며 우리측 부담이 훨씬 가중되었다고 비판하였을 때도 협상팀은 지속적으로 이를 부인하며 개선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최근 협상관계자가 일부 언론을 통하여 미측이 방위비 분담협정을 통해 C4I와 임차료 비용등을 요구해왔다고 정보를 유출시킨 의혹이 증폭되는 것은 자신들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미측이 마치 새로운 요구조건을 내세운 것으로 호도하려는 정황이 짙기 때문이다. 미측은 우리가 부담할 수 없는 부당한 요구조건을 내세웠지만 한번도 말을 번복한 적은 없었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GPR을 포함하여 새로운 지역군의 역할에 걸맞는 모든 비용을 우리측에게 부담해줄 것을 요청하였던 것이고 C4I도 새로운 요구조건의 하나였을 뿐이다.
  
  
프레시안 : C4I 비용을 방위비 분담금에 포함시키자는 것은 미국측의 요구이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면 대등한 협상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최재천 : 그렇다. 미국은 C4I 비용을 4개 항목으로 부류하였다. ▲건물 시설비 ▲C4I 인프라 설치비용 ▲기존 C4I 이사비용 및 부품교체비 ▲C4I 개선비 및 프로그램 개발비다. 그 중 세 번째 것만 9백만불 한도 내이다. 그러나 SOFA 규정에 따르면 facilities(시설) 개념에는 장비(equipment)를 포함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미국이 우리에게 전달한 비용 명세서 내역에도 당연히 facilities의 범주에 C4I 현대화 비용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당국자는 C4I는 9백만불 한도 내인만큼 문제없다고 호도하지만 협정 내용을 조금만 상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측에 C4I 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 구체적 내용과 조건 역시 IA 2조에 규정된 SOFA 특별분과위원회에서 합의권고문을 작성하여 SOFA 합동위원회의 최종 승인만으로 효력을 발생토록 하였다. 미측으로서는 용산기지 이전협상을 통해서든 방위비 분담협정을 통해서든 경로에 상관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협상팀은 나름대로의 논리와 협상력을 가지고 미측과 합리적 타결을 시도하려는 노력은 애당초 포기하고 가중된 협상 결과를 개선된 것처럼 포장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한국측 부담액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 있다”
  
  
프레시안 : 정부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최악의 비판을 면하기 위해서란 말인가.
  
최재천 : 많은 사람들이 협상팀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데 여기에는 불가피한 배경이 있다. 협상팀은 용산기지 이전협상에 내포된 전략적 의미와 90년 합의각서가 지닌 형식면에서의 위헌성과 내용면에서의 지나친 불평등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이 처음부터 없었다. 이 문제를 있는 그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지침을 제대로 받지 않은 상태에서 미측의 일방적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러다가 작년 8월 중 대통령으로부터 조속한 이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합리적으로 따질 것이 있으면 다 따져보고 협상 내용을 최대한 공개하고 투명하게 협상을 진행하라는 지침을 받게되자 상당히 당황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협상팀은 자신들 스스로 협의 결과를 원점으로 되돌리기에는 너무나 멀리 가버렸다. 이때부터 협상 성과와 관련하여 대통령과 국민들을 기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 국가이익을 제대로 반영시키는 정상적인 협상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 협상팀이 실질적인 협상 내용의 개선에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일부 공개된 3차 FOTA 협상 회의록을 보아도 잘 나타나 있다. 협상의 실질적 주역인 당시 위성락 북미국장은 “중요한 것은 협상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라는 미측의 견해에 동의한다”라고 했다.
  
  
프레시안 :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건, 정부가 속이는 것이건 비용이 증액된다는 게 문제 아닌가.
  
최재천 : 비용측면에서만 보면 용산기지 이전에 따른 우리측 부담은 천문학적으로 증대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타결된 협정문안은 여전히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규정으로 되어있다.
  
  GPR 이외에도 환경 치유비용등 천문학적으로 증대할 수도 있는 우리측 부담 내용에 대해 우리 스스로 통제할 장치가 없이 미측의 ‘선의’에만 맡겨 놓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금년 7월 발간된 미국의 회계감사원(GAO)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측 부담이 한국경제의 상황에 따라 고무줄처럼 증감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임무와 기능 이전’이라는 대원칙을 수용한 이상 우리측 부담이 증대할 가능성은 도처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90년 합의각서에는 없었던 행정, 의료 시설 (SOFA 규정에 다르면 ‘장비’까지 포함), 군인가족용 주택 등에 대한 추가 부담도 ‘임무와 기능 이전’이라는 원칙에 근거한 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프레시안 : 주택 임대비도 방위비 분담금을 늘려 충당한다는 계획인데.
  
최재천 : 현재 서울 주둔 주한 미군은 333세대의 가족동반용 숙소를 영내에 가지고 있으며 나머지 984 세대의 가족 숙소를 자체비용으로 임차 사용중에 있다. 그런데 FOTA 협상과정에서 미측은 ‘임무와 기능 이전’ 원칙에 근거, 약 2천여 세대의 가족 동반 미군요원용 숙소를 우리측 부담으로 제공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고 임차료를 마련하는 재원을 방위분담금(SMA)에서 충당하는 방안을 양측이 잠정 합의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측으로서는 현재 미국정부에서 한시적으로 지원받고 있는 주택수당(Housing Allowance)의 한도내에서만 최소한의 부담을 하고 나머지 차액은 방위분담금을 통해서건 용산기지 이전비용을 통해서건 가족 동반 미군숙소 제공이 한국측 부담임을 일관되게 명확히 주장하여 왔고 우리 협상팀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90년 합의각서 대비, 수천억원에 달하는 추가부담을 떠맡게 되었으나 한 번도 스스로 있는 사실 그대로 보고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협상팀이 가족동반용 숙소 임차비용을 미측이 전적으로 부담하게 되었다고 홍보를 하자 이에 대하여 미측이 당초 합의하였던 방위분담금 증액을 통해서 임차료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미측으로서는 비용관련 주요 문제에 있어서 안팎으로 다른 태도를 보이는 우리측 협상태도에 심각한 불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협상팀의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행태가 만에 하나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무원칙한 입장 변경에 따른 것으로 미측이 오해를 한다면 이는 한미동맹의 근본적 신뢰를 뒤흔들 수 있는 동맹의 위기로 악화될 수 있는 사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 크게보면 용산기지 이전비용의 전액부담이 문제인데.
  
최재천 : 전액부담 원칙은 88년 노태우 정권 초기 우리측이 먼저 기지이전을 요청하였다는 사실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의회에서 주한 미군 감축을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와 연계하여 추진하며 그 비용을 동맹국에게 전적으로 부담시키고자 했던 배경과 노태우 정권 출범 직후인 88년 6월 칼루치 미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 이전비용의 한국측 전담 및 연합전력 증강 원칙에 합의한 후 미측의 일방적 주도로 협상이 진행된 과정을 보면 기지이전이 미측의 실질적 필요성을 상당 부분 반영하였으리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기지 이전은 수도권 재정비 차원과 기지이전에 따른 민족 자긍심 회복차원에서 추진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당시의 문건을 통해 보다 확실한 추진 배경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정부가 용산기지 이전 비용으로 30억~40억불 정도를 추산한 것은 합당한가.
  
최재천 : 그저 막연한 추정에 불과할뿐이다. 협상팀은 협상 과정에서 비용 부담의 상한선을 설정하자는 제안조차도 일방적으로 묵살하였다.
  
  
프레시안 : 정부추산 금액이 근거가 없다고 보나.
  정부 추산의 유일한 근거인 IMP는 2003년 4월에 작성된 것으로 90년 합의각서를 바탕으로 최소한의 비용을 상정하여 작성된 것이므로 근거가 될 수 없다. 내년 말 정도에 작성될 MP에서 어느 정도의 실제 비용이 제시될 것인지 불확실하다. 더욱이 소요예산의 산정에 가장 중요한 건축기준에 대하여 국방부는 80년대 기준만 가지고 있을 뿐 전혀 건축 기준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답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액 산정이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한마디로 주먹구구식 아전인수식 계산에 의한 추정금액인 것이다.
  
  정부는 당정 협의에서는 시인했다. 솔직히 얼마가 들지 모른다고 했다. 협상이 개선이 아니라는 점도 사석에선 시인했다. 그런걸 보면 정부가 이번 협상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국민들을 현혹하자는 것 아닌가. 지금이라도 솔직해지라는 것이다. 잘못한 점을 정직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프레시안 : 30~40억이 얼마나 축소된 비용이라고 보나.
  
최재천 : 누구도 예상을 못한다. 다만 93년 김영삼 정권하에서 미측 연구소가 95억불이 소요될 것이라고 제시한 보고서에 근거, 용산기지 이전사업 추진이 중단된 사실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뿐이다. 또한 GPR에 따른 가중된 부분과 환경 치유 비용등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용산기지 이전, 재협상해야”
  
  
프레시안 : 용산기지 이전이 GPR의 일환이냐는 것도 논란이다.
  
최재천 : 미측은 용산기지 이전이 GPR에 따른 최대의 협상 성공 사례로 자부하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따라 터키 등 기지 이전 대상국가에도 한국측 사례를 거론하며 압박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미측이 한국측 입장을 고려, 이를 내놓고 공개적으로 이야기 할 수도 없고...상대적으로 우리에게는 최악의 협상 실패 사례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뿐이다.
  
  
프레시안 : 결국은 재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최재천 : 90년보다 훨씬 개악되었을 개연성이 큰데도 불구, 개선되었다고 국민에게 홍보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잘못이다. 차라리 90년 합의각서를 그대로 수용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합리적인 비용분담의 대원칙을 전제로 한 재협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프레시안 : 재협상 주장은 초반에 한미관계의 신뢰도를 강조한 것과 배치되지 않나.
  
최재천 : 처음에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겠으나 중장기적으로 합리성에 근거, 확고한 신뢰관계에 토대를 둔 진정한 한미동맹관계의 강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재협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문제를 반미나 자주, 동맹 강화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보는 것은 큰 실책을 범하는 것이다. 합리성과 투명성을 토대로 한 진정한 신뢰관계의 구축이 필요한 시기이다. 우리는 한미공수지원협정의 개정 과정에서도 미측이 우리측이 제시한 합리적인 논거에 의해서 비용분담 원칙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협상 성공 사례를 알고 있다.
  
  
프레시안 : 재협상을 한다면 어떤 요구가 반영돼야 한다고 보나.
  
최재천 : 추상적이고 포괄적으로 규정된 문안을 보다 명확히 규정하여 추후에 한미간의 분쟁의 소지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협정 문안 하나 하나를 검토하면서 따져 분명하게 해야 한다.
  
  타결된 현재 협정 문안은 일일이 여기에서 다 지적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점이 많다.
  
  협상팀이 우리측 부담 내역으로서 ‘소액잡비’라고 홍보하고 있는 ‘Miscellaneous Costs'도 규모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아전인수격의 억지 해석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우리 주도의 TurnKey 방식을 도입할 경우, 지금과 같이 건설 경기가 침체된 상태에서 보다 우리 업체의 기지이전사업에 참여가 100% 보장됨으로써 건설분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을텐데 우리 건설업체의 수준이 뒤떨어진다는 사유로 TurnKey 방식을 미측에 한 번도 제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재협상시 이러한 요구사항도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 : 앞서 총체적인 외교안보의 문제점이라고 한 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자면.
  
최재천 : 용산기지 협상과정에서 외교안보시스템의 문제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현 외교안보팀은 지나친 비밀주의를 고수하며 당연히 알려야 할 사실조차도 비밀로 분류하며 정보를 철저히 독점, 차단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 하는 것은 협상의 내용과 과정이 공개됨으로써 국가이익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행한 각종 형태의 부실 왜곡보고가 드러남으로써 책임을 추궁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외교안보분야에서야 말로 총체적이고 과감한 개혁이 가장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범정부 차원에서 혁신 작업이 대통령의 지대한 관심과 열정 속에서 추진되고 있는 데 외교안보분야에서의 개혁 추진은 정책 또는 전략 수립부서로서의 외교 역량 강화에 역점을두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처한 외교 안보 환경은 향후 한반도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정도로 급변하고 있어 우리가 나름대로의 전략적 판단을 가지고 대처해나가지 않으면 19세기 구한말 시대의 재판이 되지 않으리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떤 면에서는 행정수도 이전문제보다 훨씬 시급하고 중차대한 과제이다. 그만큼 외교의 중요성이 커진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NSC-외교부-국방부 협상라인 청문회 대상”
  
  
프레시안 : 국회비준도 논란이다. 정부는 용산기지 UA(이전협정)만 하면되지 IA(이행합의서)는 비준이 필요없다는 입장인데.
  
최재천 : 미측은 IA를 통해 미측의 구체적 요구조건을 규정해나갈 수 있는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한 셈이다. 협상팀은 당초 SOFA 권고합의문의 한 형태인 IA를 단순한 국회 보고문서로 대체하려는 입장을 강고히 유지하다가 위헌성 여부에 대한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의 이의제기가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자 그 간의 입장에서 후퇴, 은근슬쩍 IA를 조약의 형태로 변경시킨 것은 그동안 제기되었던 모든 문제점들이 타당성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프레시안 : IA가 비준없이 넘어갔을 경우 예상되는 문제는 무엇이 있나.
  
최재천 : 앞에서 언급한 구체적, 실질적 내용을 하부기관에 위임한 IA 2조를 비롯해 UA에서 규정한 범위를 실질적으로 넘어서는 부분이 그대로 남아있어 여전히 위헌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레시안 : 열린우리당은 여당으로서는 비준안이 넘어오면 통과시켜줄 듯한데.
  
최재천 : 정부가 부실하게 협상을 마무리한 것을 여당이 그대로 추인해 줄 것인가의 문제이다. 제대로 된 여당이라면 청와대나 정부와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라도 잘못된 것은 더 잘못된 방향으로 악화되기 전에 바로 잡아나가야 하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장기적으로 참여정부의 정체성과도 직결되어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청문회를 한다면 대상과 범위는 어느 정도인가.
  
최재천 : 협상에 관여했던 당사자, 의사결정라인에 있던 사람들 모두를 포함한다. NSC, 외교부, 국방부의 협상라인이다. 장관급은 당연히 포함된다.
  
  
프레시안 : 그로인해 드러난 오류에 대한 문책 절차는 어떻게 되나.
  
최재천 : 문책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총체적으로 부실한 외교안보시스템의 역량강화를 위한 계기로 작용되어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 : 이제 감사원의 감사는 무의미하다고 보나.
  
최재천 : 고도의 전문성과 정책적 사안에 대한 판단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쉽지 않을 것이나 향후 감사원의 정책감사능력을 제고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임경구,김하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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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음... 나중에 물증 확보할 때 써먹을 거니께 잘 보관혀야지~~

 

    예강22  

 
한.미, 용산기지이전협정 공식서명

004.10.26 (화) 14:48   연합뉴스

 

 

26일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용산기지 이전 포괄협정(UA) 및 이행합의서(IA)와 연합토지관리계획(LPP) 개정안에 공식서명식에서 한.미 양국 대표가 서명식을 갖고 있다. /백승렬/사회/국제/ 2004.10.26 (서울=연합뉴스)

srbaek@yna.co.kr

2004.10.26 (화) 15:05  연합뉴스 

윤광웅 국방장관과 주한미군 선임장교 자격인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이 26일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용산기지 이전 포괄협정(UA) 및 이행합의서(IA)와 연합토지관리계획(LPP) 개정안에 공식서명식에서 서명을 한 뒤 악수하고 있다. /백승렬/사회/국제/ 2004.00.00 (서울=연합뉴스)

srbaek@yna.co.kr

촌평1) 음, 한반도 영구분단을 오랜 기간을 준비했었남?  틀리남맞남? 틀리면 말고~~  먼저 용산을 포기하고 평택부근으로 내려가 있으면, 영구분단용 한국수도가 자연스럽게 쫒아 내려올줄 알았남?  아니면 말고~~ ㅎㅎㅎ,  미국의 동북아 전략 지침을 기억상실하고, 부동산 투기, 복부인하고 싶었남? 아니면 말고~~

촌평1-1) 꿈은 누구나 마음대로 마구 꿀 수 있지. 꿈쟁이 몽9처럼....  한다리 예강 꿈이냐 똥다리 똥개 꿈이냐가 중요?  매우 중요~~ ㅎㅎㅎ

촌평1-2) 예강의 섬세한 'x'땜 화들짝!! 얼마나 급했으면 급하게 서류질하남?  아이구이이구 1919? 미국식 한일합빵 꿈꾸남? 아니면 말고~~ 형식적인 절차에 공을 엄청들이는 구먼. 게임은 끝났지?  인내하며 시간을 끌며 나름대로 한 짓이 있지.

촌평1-3) 엄청 물증 확보했지? ,미군된 지집년이 소파수술을 자주 많이 받다보면 스스로 지쳐서 만신창이?  떠나것지? 아무튼, 동북아의 미래를 위해 '미군무용론'을 마구 연구개발해서 가지고 있는 예강... 미국이 자행한 람보식 범법행위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부텀 너무 많은감? 왜사냐? 인간답게 사는 것이 가치있는 삶? 인간이냐? 무효인디 말여? 대가리 많이 굴려서 완전범죄 된 줄 착각?  빡빡 도올 돌돌 닮았다는 것을 증명해 줄께~~ 스스로 떠나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  우 ㅎㅎㅎ

촌평2) 흑백사진... 호랭이 뻐근질하던 미군정이 생각나는군. 미군... 그 때 나도 엄청 고생, 배고펐었남?  꿀꿀이죽 등...  나의 둘째형은 미군부대 구두닦기, 신문돌리기 등 심부름 소년이었지.

촌평3) 동북아 지역은 동북아 市를 중심으로 동북아 방위군이 그 역할을 할 것.

촌평3-1) 가까운 장래에 미군이 철군해야 되는구먼. 주둔 명분이 전혀없기 때미... 그러니 막대한 이전비용, 돈 낭비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예강23  

독립운동가 최재형선생 연해주 가옥2채 첫 발굴

2004.11.14 (일) 06:23   연합뉴스

 

최선생 연구에 전기..해외사적지로 보존 검토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독립운동가 최재형(崔在亨.1860∼1920) 선생이 일제에 체포돼 순국하기 직전까지 가족들과 함께 거주했던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가 옥 2채가 처음으로 발굴됐다.

이는 9살때 함경도 경원에서 러시아로 이주,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인물로서 국 권수호와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다 순국한 최 선생 연구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 로 보인다.

한국외국어대 사학과 반병률 교수는 14일 러시아에 거주하는 최 선생 가족들의 증언과 현지 박물관에 보관된 자료 고증 등을 통해 최 선생이 거주했던 연해주 우 수리스크시의 옛 가옥 2채를 찾아냈다며 관련 사진까지 공개했다.

반 교수는 앞서 국가보훈처에 의해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최 선생에 대 한 현지 추모행사 참석과 사료발굴 등을 위해 올해 9월말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등을 다녀왔다.

반 교수는 "이번에 발굴한 가옥 2채 중 우수리스크시 볼로다르스코보 거리에 있 는 가옥은 최 선생이 1920년 4월 5일 현지에 주둔한 일본군에 의해 체포되기 직전까 지 살았던 집"이라고 밝혔다.

반 교수는 또 최 선생 가족이 1918년 슬라방카에서 우수리스크시로 이사한 후 처음으로 거주한 수하노바 거리의 또 다른 가옥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이들 가옥은 최 선생이 거주했던 당시 집 주변에 있었던 '인민의 집' '실업학교' 등과 함께 원형을 상당부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가옥 발굴에는 11명에 달했던 최 선생의 자녀 중 9번째인 딸 고(故 )최 류 드밀라 페트로브나씨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2000년 그려놓았던 약도와 현재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최 선생의 막내딸 최 엘리자베따 페프로브나(102)씨 등의 증언이 큰 도움이 됐다.

반 교수는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최 선생의 손자(둘째 아들의 3남) 최발렌찐 발 렌찌노비치(66)씨와 함께 이 같은 약도, 증언 등을 토대로 우수리스크시 박물관 등 의 역사자료를 뒤져 이같은 성과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고침>-정치(독립운동가 최재형선생 연해주 가옥2채 첫 발굴)

2004.11.14 (일) 13:54

▲14일 오전 6시15분 송고된 연합 H1-0067, G1-0067 정치 '독립운동가 최재형선 생 연해주 가옥2채 첫 발굴' 제하의 기사중 본문 22째줄 '최 엘리자베따 페프로브나 (102)'를 '최 엘리자베따 페트로브나(92)'로, 24째줄 '최 선생의 손자(둘째 아들의 3남)'를 '최 선생의 손자(셋째 아들의 장남)'로 각각 바로잡습니다.



약도를 남겼던 최 류드밀라 페트로브나씨는 공교롭게도 반 교수 등이 최 선생에 대한 사료발굴 등을 위해 러시아 현지를 방문했던 올해 9월 24일 중앙아시아 키르기 스스탄에서 사망했다.

반 교수 등은 또 최 선생이 일본군에 체포된 이후 부인 김 엘레나 페트로브나씨 가 자녀들과 함께 이사를 한 후 거주했던 집도 발굴했다.

반 교수는 이번에 발굴된 최 선생의 가옥 주변에는 1910년대 한인독립운동의 중 심기관이었던 고려족중앙총회, 전로한족중앙총회, 대한국민의회 등의 사무실이 있었고 1919년 3월17일 당시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됐던 중요한 장소라며 최 선생 연구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 교수는 어린 시절 러시아로 이주, 자수성가해 러시아와 한국 등 2개의 조국 을 위해 완벽한 책임을 다한 인물이라며 현지의 고려인 사회 뿐만 아니라 해외 동포 사회의 '역할 모델'(role model)로 추앙받아야 할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국가보훈처는 이번에 발굴된 최 선생 및 가족들이 거주했던 가옥 3채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거쳐 가옥을 매입,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로 보존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 으로 전해졌다.

최 선생은 러일전쟁 이후 일제의 한국 식민화 정책이 본격화되자 1908년 이범윤.

이위종.안중근 선생 등과 함께 동의회를 조직, 의병부대의 무장투쟁을 지원했다.

선생은 특히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전로한족중앙총회의 의원, 대한국민의회 외 교부장 등을 맡아 진보적 민족주의 활동을 펼쳤으며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 총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일본군은 1920년 4월 연해주 지역의 러시아 혁명세력과 한인 독립운동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체포, 방화, 학살 만행을 대대적으로 자행했는데 이때 선생도 붙잡혀 순국했다.

그러나 체포 이후 순국 과정과 유해 안장 장소 등의 과정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 고 있다.

한편 최 선생의 손자 최 발렌찐 발렌찌노비치씨는 모스크바 종합기술대학 출신 으로 비행기 합금기술 관련 연구소를 끝으로 은퇴한 후 현지 '러시아고려인' 월간신 문 기자, 카자흐스탄의 고려일보 모스크바 주재 기자 등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모스크바 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사진있음) lkw777@yna.co.kr

촌평1) 음... 잘하구 있군. 애민족 행위하던 년넘덜을 왜곡미화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훼손없이 찾아야겠지. 별로 당부할 것은 없지만... 혹시 반민족행위에 앞장 선 년넘을 조우하게되면, 놓치지 말고 오라질.  박물관용, 후손 교육자료용~

촌평2) 원래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의 칼막스 공산주의 이론은 너무 좋지. 그 시대의 봉건 지주문화, 착취시대에 내가 살았다면, 나 같아도 생명을 걸고 혁명했을 것. 공산주의 이론에 문제가 있었다면, 내가 정확히 짚어줬지. 문제가 있었다면, 인간의 '소유욕'을 간과한 것이 결정적, 치명적 실수.

촌평3) 난 레닌이 흘린 눈물에 대해 잘알고 있지. 아먼드 해머 넘은 피폐하여 굶주리는 구 소련을 위해 일한 자선가 아닌 기업가, 쌀집아저씨? ㅎㅎㅎ, 미국의 식량무역 봉쇄를 뚫고 곡물과 모피의 교환무역에 성공했지. 레닌이 불러들여 신임장을 줘서 몸통에 지녔지. 신임장 덕분에, 당시 극심했던 검문, 검문소마다 동서불문 사뭇 통과할 수 있었지. 아무튼, 구세주같은 인물이었남? 굶주림에 포위되어 고립,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레닌의 고통을 해머 넘이 시대상황 탁월분석력, 배짱, 상업수완으로 어느정도 해결해 주었지. 그 이후는 이념전쟁으로 세계가 고통받게 된 것이고.... 고르비의 결단은 조용히 아주 조용히 누가 눈치 못채게 간직~ 진짜 용기있는 사나이라고 평가내렸고, 몰래 간직중~~

촌평4) 탁월한 정보력분석력 소유한 푸틴 대통령을 세운 러시아인은 복받는 것이지. 난 정보력의 중요성을 틈나는 대로 강조했지. 좋은 지도자, 안목있는 지도자, 분석력있는 지도자의 의사결정은 그 국민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미, 아주 중요하지.  한마디로, 좋은 지도자를 만나느냐 못만나느냐 그것은 자기 팔자? 국민의 팔자이지. 국민덜이 팔자 고친 나라가 드물지?

 

 

   예강24  

 

 

평택주민, 용산협정 비준반대 국회 앞 천막 농성

2004.11.23 (화) 09:00   민중의소리

 

평택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22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용산미군기지 이전협정의 국회비준과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막기 위해 이날부터 국회 앞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한다고 선포했다.

국회는 오는 26일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안과 LPP(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 개정안을 해당 상임위인 통외통위에 상정, 내달 4일 공청회를 갖은 후 7일 상임위 차원에서 안건을 처리하고 8일이나 9일 올해 본회의 회기 안에 비준 처리 여부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미군기지확장반대 평택, 팽성읍 대책위, 민중연대, 통일연대, 평통사, 민변, 민주노동당, 녹색연합 등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굴욕적인 용산미군기지 이전협정을 발효시키려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을 규탄하고 국회에서 국민 부담 가중시키고 생존을 위협하는 용산협정과 LPP 개정안을 전면 폐기하고 재협상에 임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계획도 없고 얼마나 들어갈 지 모르는 어마어마한 국민적 부담을 묻지 말고 처리해 달라는 용산협정안에 동의하는 국회의원은 일제시절의 을사 5적과 같은 역사속의 매국노로 낙인찍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광훈 민중연대 상임의장은 여는 말을 통해 "6.15 공동선언을 통해 우리민족끼리 오손도손 살겠다고 전 세계에 천명한 지금 남북의 대결 전선은 없어졌다"라며 더 이상 미군이 한반도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군이 갈 곳은 평택도, 아메리카도 아닌 본토 영국으로 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원내에서 용산기지 협정과 LPP 개정안에 대한 철저한 검증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을 대표해 참석한 이정미 최고위원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언급한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성은 미국의 동북아 패권 확대 의도가 담긴 용산기지이전 협정을 폐기하는 데서 확인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 김지태 위원장은 "자기 재산을 한 두푼 모아 그것이 내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야 열심히 일하지 어느 순간 다른 곳으로 가서 살라고 하면 누가 수긍하겠나"라며 주민들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미국의 요구에만 충실한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만약 기지이전 협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장갑차에 깔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발로 걸어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한 투쟁 의지를 보였다.

농성장 천막 설치, 경찰의 원천 봉쇄로 실패

 

하지만 농성 돌입은 경찰의 원천 봉쇄로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이날 경찰은 미리부터 천막이 실려 있는 차량을 겹겹히 둘러싸 기자회견을 끝내고 천막을 설치하려는 참가자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단체 관계자들은 "왜 남의 차를 막고 서 있느냐?"라며 비켜 줄 것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여의도에 단 하나의 천막도 추가할 수 없게 하라는 상부 지시가 있었다"라며 완강하게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참가자들간의 몸싸움이 일어났고 일부 참가자들은 부상을 당했으며 천막을 실은 차량도 일부 파손을 당했다.

약 20여분간 지속된 몸싸움 끝에 참가자들은 정치권과의 싸움을 집중해야 할 때 경찰과 소모전을 벌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 일단 노상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농성에 돌입한 후 추후 상황을 봐서 천막 설치를 시도하기로 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한편,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의원은 내일(23일) 오후 4시 평택을 찾아 팽성읍 주민들과 간담회를 갖고 현장의 애로점과 요구사항들을 듣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상종 기자

촌평1) 요즈음말여, 꼭 독립운동하는 일반사람? 독립軍된 마음으로 산다니께. 사실 오래전부터~

촌평2) 됴다 = 이완용.       회충, 천장배 등 대부분 서울대 애덜 = 對米 충성둥이 재롱둥이.    이등박문 = 리포트? 라포터 등등...

촌평3) 난, 이미 수십년? 5 ~ 6년 전부터 포항, 오산 등 딱 1군대 소대병력 등 소규모 미군 주둔을 제의해 왔었지. 아무도 모르는 기획을 가지고 있었기때미...  이젠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단 1명의 미군의 미군일지라도 한국에 주둔할 수 없다. = 러시아 개입 등 한반도 전쟁 억지력 확보이후 즉 현재, 미군이 스스로 알아서 떠나는 방식의 목표설정.

촌평4) 현재 작전중~~

 

 

 

 

    예강25    

평택 미군기지, 부상자 발생

2006년 4월 7일 (금) 16:03 YTN

[앵커멘트]  국방부가 미군기지 이전부지의 영농 차단 작업에 들어간 평택시 대추리에서 경찰과 주민들이 충돌해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또 경찰 병력이 진입로를 뚫고 들어가 농수로에 콘크리트를 붓기 시작했습니다. 취재기자 연결해 자세한 상황 알아보겠습니다. 이지은 기자!  주민과 경찰이 충돌하면서 부상자도 발생했다고 하는데,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리포트] 국방부가 평택 미군기지 이전 부지에 농수로 차단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해 5명이 다쳤습니다.  부상자는 민주노총 조합원인 34살 현 모 씨 등 5명입니다. 국방부는 오늘 오전 9시부터 사설 경호업체 직원 7백여 명과 경찰 5천여 명을 동원해 진입 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민 백여 명이 진입로에서 짚단을 불에 태우고 투석전을 벌임에 따라 충돌이 빚어졌습니다. 지금은 경찰이 농수로로 들어가기 위해 트럭과 승용차로 진입로를 막고 있는 주민들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오후 한 시 쯤에는 경찰 병력이 진입로 한 곳을 뚫고 들어가 농수로에 콘크리트를 부었습니다.  또 다른 농수로 두 곳에서도 콘크리트를 붓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방부 측은 이 밖에도 논두렁과 논길을 불도저로 갈아엎고 다리를 부수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곳곳에서 주민들과 충돌이 빚어지고 있어 차단 작업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질문] 미군기지 이전을 두고, 국방부와 주민들의 갈등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뭡니까?

[답변] 바로 국방부가 세운 미군기지 이전 계획을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방부는 용산 미군기지를 이전하기 위해 내년 4월에 평택에 시설 공사를 시작한 뒤, 오는 2008년에는 기지 이전을 완전히 끝낸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평택기지 예정 부지에 살고 있는 535세대 가운데 330여 세대가 이주 신청을 했거나 이미 이주를 완료했습니다.

또 서산간척지에 확보한 대체농지도 이미 절반 이상인 86만평이 이주 농민 59명에게 팔렸거나 임차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와 일부 주민들은 국방부의 대책 여부와 관계없이 미군기지 이전 자체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범대위는 지난달에 이전 예정 부지 4분의 1에 해당하는 60여 만평에 논갈이를 마친 뒤, 씨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국방부는 주민들의 영농 작업을 미리 차단한 뒤, 미군기지 이전 작업을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까지 YTN 이지은[jelee@ytn.co.kr]입니다.

[저작권자(c) YTN & Digital YTN.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지은

촌평) 통일직전 대한민국의 수레바퀴 궤적이 갈팡질팡 진흙탕, 지랄궤적...

 

 평택 미군기지, 농수로 차단 작업 종료

수업 종

 

    예강26  

 

국방부-농민 '평택평야 전쟁'

2006년 4월 7일 (금) 19:56   한국일보

 

 

국방부가 7일 경기 평택평야에서 전쟁을 치렀다. 불도저와 굴착기를 동원한 용역업체 직원 700여명이 전투에 동원됐지만 지휘관은 현역 육군 준장인 경창호 국방시설본부 대미사업부장. 상대는 이미 국방부 소유로 전환된 기지건설 예정지에서 영농활동을 재개하며 기지건설을 반대하고 있는 주민들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 등 200여명이었다.

경 장군은 “주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 농수로를 차단하고 논두렁을 제거하라”고 작전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강력히 저항하는 주민들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주민과 범대위 관계자 6명이 다치고 6명 경찰에 연행되는 불상사가 나고 말았다.

국방부는 이날 오전 9시께 굴착기 4대와 불도저 2대, 레미콘 차량 6대로 무장한 용역 직원들을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리 지역으로 투입 시켰다.
 

 

  전ㆍ의경 50개 중대 5,000여명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이들을 호위했다.

대추리 지역에서는 처음부터 주민들과 범대위 회원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다. 주민들은 길목에 눕거나 마른 짚에 불을 붙여 굴착기와 불도저의 진행을 방해했다. 일부 주민은 용역 직원과 경찰 저지선을 뚫고 불도저로 올라가 중장비 기사를 끌어내고 장비를 점거하기도 했다. 주민들의 항전이 장시간 이어지면서 논두렁과 농로를 파손하는 작전이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반면 도두리 지역은 주민들의 저지선이 오래가지 못했다. 농수로가 시작되는 도두리는 영농활동의 사활이 걸린 곳. 국방부는 수로를 차단하면 영농활동도 저지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 곳에 전력을 집중했다. 전ㆍ의경과 용역직원들은 볏짚을 태우며 저항하는 주민과 범대위 회원들 해산한 뒤 포크레인으로 수로를 파괴하고 콘크리트를 부어 손쉽게 폐쇄했다.



국방부는 기지가 들어설 농지의 소유권이 정부로 넘어온 만큼 주민들의 영농활동은 의도적인 기지건설 방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고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고 이주마저 거부한 채 올해도 농사를 짓겠다며 버티는 일부 주민들을 강제로 퇴거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내놓은 방안이 농사가 불가능하도록 해 주민들을 고향 땅에 대한 집착에서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지난 달 주민들이 논갈이에 나서자 포크레인으로 농로에 대형 구덩이를 파 영농활동을 저지한 데 이어 이번에 수로까지 차단함으로써 국방부는 이번 작전의 성과를 자신하고 있다. 국방부는 기지가 들어설 농지의 경계선을 따라 철조망을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남은 주민들은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대추리 이장 겸 주민대책위원장인 김지태(51)씨는 “논두렁을 베고 죽는 한이 있어도 고향을 버릴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000여평의 논농사를 짓는 송재국(69) 노인은 “이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디 가서 새로 정을 붙이고 살어,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지”라고 울먹였다. 주민들과 범대위는 양수기를 동원해서라도 농사를 짓는다고 맞서 ‘황새울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평택=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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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1)  나는 항상 이겨놓고 싸워왔다. 878특수군 군장 예강은 '세계금융전략가'이다. 모사와 지략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촌평2) 내가  미국을 이겼다? 예수님이 이겨 놓으신 세상을 이겼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6장 33절.

 

촌평3) 인류통화, 세계통화, 기축통화 '동북아'에 의해 미국통화 달러는 아르헨티나가 과거 '으악'했던  나락으로 '으 아악!' 할 것이다. 푸우핫!ㅎㅎㅎㅎㅎ!!!

 

 

    예강27  

 

평택 미군기지, 농수로 차단 작업 종료

2006년 4월 7일 (금) 20:30 YTN

 

[앵커멘트] 평택 미군기지 이전 부지에 대한 국방부의 농수로 차단 작업이 완전히 종료됐습니다.

취재기자 연결합니다. 김석순 기자! 오늘 상황은 종료가 됐습니까?

[리포트] 오늘 예정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은 오후 한 시쯤부터 시작돼, 4개 구역 가운데 3군데에서 작업이 완료됐습니다.

국방부 측은 나머지 농수로 1곳의 타설작업을 완료하지 않은 상태로 오후 6시 반 쯤에 농수로 차단 작업을 종료했습니다.

국방부는 오늘 오전 9시부터 사설 경호업체 직원 7백여 명과 경찰 5천여 명을 동원해 진입 작전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민 백여 명이 진입로에서 짚단을 불을 붙이고 투석전을 벌이면서 몸싸움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파악된 부상자는 민주노총 조합원과 주민 등을 포함해 모두 10여 명입니다. 다친 사람들은 모두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또 경찰은 현장에서 진입작업을 막고 충돌을 빚은 시위자 30여 명을 연행했습니다. 오늘 작업은 종료됐지만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그동안 미군기지 이전에 거세게 반대해온 점을 생각해볼 때, 앞으로 작업이 완전히 종료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기동취재부에서 전해드렸습니다.

[저작권자(c) YTN & Digital YTN.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김원배

 

 촌평1) 가까운 장래에 미국이 스택 인플레이션? 스테그플레이션?  브레탄우즈 협정 이후, 미국년넘 모두가 나서서  철근에 콘크리이트를 타설한 철근 콘크리이트 인플레이션, 철콘플레이션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촌평2) 21세기 초반이다. 세계통화, 인류통화, 기축통화 '동북아'가 뜨면...  세계에 널려있는 달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의 미래는? 푸우핳ㅎㅎㅎㅎ!! 게임은 끝났다. game all over~

 

 미군기지, 농

 

    예강28  

 

대추리·도두리 주민들, 국방부 파괴한 농수로 복구

2006-04-12 오전 9:16:42   © CoreaF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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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울에 다시 생명의 물 흐른다

 

 

이민우 기자 , 2006-04-12 오전 9:16:42

 

 
포크레인과 레미콘으로 국방부 용역이 파괴해 놓은 농수로가 복구돼 황새울 들녘 곳곳에 농수가 공급되고 있다. 2차례에 걸쳐 국방부가 평택 주한미군기지확장 수용예정부지에 대한 ‘영농 차단’을 진행했으나 주민들의 농사일에 대한 의지는 꺾지 못한 것이다. 지난7일 국방부는 용역 750여명과 경찰 5천여명에 포크레인 4대와 레미콘 3대 등 10여대의 중장비를 동원해 3번과 2번 수로를 파괴한 뒤, 콘크리트를 부어버렸다. 이날 농수로 파괴를 위해 국방부는 미성년자까지 포함된 용역을 고용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들 용역과 중장비 대여 등에 들어간 돈은 1억2천2백만원이나 된다. 이에 앞서 국방부는 지난달 15일에도 용역 150명과 포크레인 따위의 중장비로 논에 구덩이를 파는 등 농경지에 대한 ‘영농 차단’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11일 처절했던 농수로 파괴 현장을 둘러봤다. 황새울 들녘엔 아직 포크레인과 불도저가 휘젓고 다닌 흔적이 남았다.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졌던 곳과 농수로 근처엔 레미콘 바퀴 자국이 선명하다.

하지만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올해 농사 성공을 위해 중요시 생각하는 농수로는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복구됐다. 포크레인이 파괴했던 부분의 흙색이 다른 곳과 다를 뿐이다. 도두리 쪽에 있는 3번 수로의 경우 국방부 용역이 레미콘으로 쏟아 부었던 콘크리트가 말끔하게 정리됐다. 또한 포크레인으로 파괴됐던 농수로는 수로에 부어졌던 콘크리트와 흙을 번갈아 쌓는 방식으로 복구가 이뤄졌다. 2번 수로도 마찬가지다. 포크레인과 레미콘에 유린당했던 흔적으로 콘크리트 뭉치가 곳곳에 널려 있긴 하지만 물이 흐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농수로 복구는 국방부가 ‘차단 작업’을 진행한 7일 밤과 8일 새벽 사이에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의 농수로 복구에 대해 국방부는 업무방행 등의 혐의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국방부는 농수로를 다시 폐쇄하는 방침도 검토 중이라 언제 또 주민들과 충돌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농사꾼이 농사 안 지으면 그건 죽는 것”
이와 관련 팽성주민대책위 관계자는 “아무리 농수로를 부수거나 지킴이들을 구속하더라도 농사 짓고 평화의 땅 황새울을 지켜내려는 우리들의 의지엔 변함이 없다”며 영농 작업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관계자는 “이제 곧 모내기도 해야 하고, 농사일엔 농수가 생명과 같기에 농수로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고야 말겠다”며 “국방부가 다시 농수로를 파괴해도 또 복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수로엔 다시 물이 흐르게 됐으나 국방부 용역과 경찰의 강제 집행으로 주민들의 가슴에 남은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이상렬 도두2리 이장은 “정성껏 비료와 함께 볍씨까지 뿌려놓은 땅을 불도저로 뭉개버렸다”면서 “농사꾼이 농사 짓다 안 지으면 그건 죽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상렬 이장은 “우린 욕심도, 바라는 것도 없고 그저 우리 사는 이 땅을 평화롭게 살다가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일 뿐”이라며 “스레트(슬레이트·slate) 집에서 살망정 제발 지금 이대로 살게 해달라는 게 희망사항이지 그 이상은 없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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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1) 농수로 복구는 국방부가 ‘차단 작업’을 진행한 7일 밤과 8일 새벽 사이에 진행된 것? ??   하루밤 새벽사이  강을 아홉번이나 건넜구먼. 一夜九渡하기.

촌평2) 미국이 1970년대 초반부터 2006년까지 크리이트 인플레이션을 토목했다. 무려 36년?을 하루같이 견고하게, 심혈을 기울여, 정성들여 공사한 스태그플레이션? 철콘플레이션...  

촌평3) 농수로 차단을 위한 콘크리이트 타설은 몇 시간밖에 안걸렸다. 그래서 농민들이 타설시간에 비례하는 시간안에 쉽게 복구했다. 미국년넘들이 36년?을 하루같이 지구에 타설한 달러 철콘플레이션은 현실적으로 파괴가 불가능하다. 내가 대강 계산한 예측 =  철콘플레이션 파괴 소요시간 ≒ 36년 ( = 13,140 일 = 315,360 시간 = 18,921,600 분 =  1,135,296,000 초)

 

촌평4) 인류통화, 세계통화, 기축통화 '동북아'에 의해 미국통화 달러철콘플레이션으로 경악? 달러가 휴지조각?

 

 

    예강29  

평택미군기지 시위, 진압과정 부상자 속출

2006년 5월 4일 (목) 10:42   뉴시스


평택미군기지 시위, 진압과정 부상자 속출

【평택=뉴시스】
 

촌평1)  아휴 18!! .... .... 독립군이 따로 없군.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독립해야?  imf때 처럼, 지금처럼 미국 애덜한티 강탈 안 당할려면 당연히 독립해야.

 

촌평2) 그래도 지구는 돈다? 동북아는 건설이 된다. 미국의 走狗, 6.15의 주구 윤국빵!! 오늘아침 tv뉴스마다 불순한 세력이 움직이고 있다고 국민에게 새빨간 거짓말, 주둥질했다.

 

촌평3) 영구분단을 노린, 분단중앙 수도이전과 그 주변에 영구 미군기지 건설을 해가며, 부귀영화에 환장한 6.15년넘이 반민족반국가, 불순하지 않은 가?

 

촌평4) 윤국빵... 이 넘을 오랜세월 예의주시 해 왔다. 통일계엄군 특수부대가 기관총을 쓰다듬으며 기름칠, 벼르고 있다.

 

촌평5) 나는 항상 이겨놓고 싸워왔다. 동북아 건설에 필요한 기획을 일부 공개 ? 거의 공개, 80% 공개했다. 연동환율기법 貝개념전산체계 등 몇가지만 공개하면 인류애 자본주의는 현실화된다.

 

촌평6) 이제 국민이 대다수 깨닫기 시작했다. 미국은 새로운 통화, 세계통화, 인류통화, 기축통화 '동북아' 때미 크게 당황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쪽빡찰까봐 전전끙끙 미국년넘들~ 우 ㅎㅎㅎㅎㅎ

 

촌평7) 문신부, 시민단체, 대추리 주민 등 시위대 명단을 보관 바란다. 독립유공자 이상의 포상, 예우가 통일 대한민국의 의무이다. 왜 포상 예우? 대한민국을 온몸통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지도세력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세력을 온 몸통으로 체험했다. 민주화 세력을 환멸, 경멸해왔다.

 

촌평8) 통일 대한민국에서는  6.15괴수 김큰스님, 곰회상, 이용해, 한환갑, 불량놈!현 등 부지기수 6.15년넘은  기관총 난사한다. 왜? 영구분단 매국질에 혼신을 다했기 때미.

 

촌평9) 서울대 저능아가 이헌재, 강봉균  등  imf때 매국질에 혼신을 다한,  사리영욕 정열년넘은 짖이겨 놓는다. 왜 짖이겨? 국가위기때 매국질 엄두낼 년넘이 없게 하기위해서... 참고로, 수많은 imf 종범을 배출한 학교이며, 갖은 지랄 대학인  서울대는 폐교된다.

 

 

    예강30  

 

"친일파 후손들 땅 처분하지마"

2006년 10월 5일 (목) 10:30   노컷뉴스

 
친일파 후손들이 소유한 부동산을 임의대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며 정부가 친일파 후손들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모두 받아 들여졌다.

청주지법 민사10부는 청주지검이 친일파
민영휘 후손 등 6명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임의대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며 낸 부동산처분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후손들이 토지를 제 3자에게 매매할 경우 친일파 재산환수 특별법에 따른 국가귀속이 어려워져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며 "청주시 산성동 13만여평에 대한 매매와 증여, 저당권 설정 등 일체의 처분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청주지법 민사14단독 김광순 판사와 민사15단독
구창모 판사도 검찰이 올 8월과 9월 민씨 등 민영휘 후손 14명이 소유권을 가진 땅에 대해 낸 부동산처분금지 가처분신청 4건에 대해 모두 인용결정을 내렸다.

이와 함께 청주지법 충주지원도 최근 친일파 민영휘 후손 민모씨 등 10명이 소유권을 가진 충북 음성군 금왕읍 44평에 대해 검찰이 낸 같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한편 민영휘는 2차대전 당시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한 공로 등을 인정받아
조선총독부로부터 작위를 받았으며 일제의 한반도 토지강탈에 협력한 대가로 거액의 재산을 형성한 친일매국노로 알려져 있다.

청주CBS 김인규 기자 leankim@cbs.co.kr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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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1) 아카시아와 잡초가 무성했던 산성외곽, 사방팔방 무너져 내린 산성은 초라했었지.  성을 다시축조, 흔적 조차없었던 성가퀴 복원 등 상당산성 복원때 속앓이 했었지. 복원공사하는 사람들이 손을 못대고 피해가면서 공사하는 것을 봤지. 민씨집안 땅이라서 복원을 할 수 없다는 거였지. 그게 복원이라면 03 상도동에 맨날 지랄한 나의 강력민원은 물거품입니까? 이런식으로 복원하려면 안하는 게 나요. 하지마세요. 어떻게 국가귀중 문화재가 개인 것이 되었는 지... 화가 나서 말했지. 괜찮아요. 요거, 손 바닥만한 땅을 손댄다고 민씨집안이 지랄하면 나도 가만 안있어요. 산성복원은 소중한 민족얼입니다.

 

촌평2)  참 고

 

 

 

    예강31  

"“우리 국민 납치-고문하다니”…獨, 美CIA 요원에 체포영장"

2007년 2월 2일 (금) 03:31   동아일보

[동아일보]

테러범으로 오인돼 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에게 납치됐다가 풀려난 레바논계 독일인 칼레드 엘 마스리 사건이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에 다시 타격을 가했다.

독일 법원은 지난달 31일 엘 마스리 씨를 2003년
마케도니아에서 납치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데려가 5개월간 감금 고문한 혐의로 CIA 요원 13명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엘 마스리 사건은 미국이 외국에서 납치한 테러용의자를 고문이 가능한 제3국의 감옥으로 이송해 온 관행을 확인해 준 것으로 유명하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독일과 미국의 돈독한 외교관계를 고려할 때 신중하기로 정평난 독일 사법부가 영장을 발부한 것은 CIA의 관행에 큰 법적 타격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물론 독일 법원은
궐석재판을 허용하지 않고 미국도 신병을 독일에 넘길 가능성이 없지만 이번 영장 발부로 이들 CIA 요원은 유럽 지역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됐다.

엘 마스리 씨는 2003년 12월 독일 울름에서 마케도니아 스코페로
휴가를 떠났다가 마케도니아 국경에서 억류됐다.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함부르크 지부장 칼레드 알 마스리와 이름이 비슷한 것이 화근이었다.

마케도니아 정부는 3주 만에 그를 풀어줬으나 곧 검은 옷을 입은 괴한들이 나타나 그를 붙잡아 때리고 벌거벗긴 뒤 항공기편으로 이라크
바그다드를 거쳐 아프가니스탄 카불까지 데리고 갔다.

엘 마스리 씨는 석방을 요구하며 40일 가까이 단식투쟁을 벌인 끝에 초췌한 몰골로 2004년 4월 알바니아의 외진 도로에 버려졌다. 미국 측은 사과 한마디 없었고 독일로 돌아갈 돈도 주지 않았다. 그는 결국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에 떨다가 알바니아 군인들에게 발견됐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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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1)   미국도 신병을 독일에 넘길 가능성이 없지만 ? 무슨 소리 ? 독일은 악마 cia애덜을 넘겨줄 때까지 100년, 1100년 불독처럼 물고 늘어져라.미국이 망해야 인류의 미래가 보인다.

 

촌평2) 우리나라는 cia 개년넘들이 우글바글한 나라이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가지고 놀며, 욕망에 가득찬 정치인들에게 개껌하나 안주면서 마구 충견으로 만들어 이용후생한다. cia 개년넘들은 kcia 등 자기 쫄따귀를 무량대수 두고 한국의 국민을 가지고 논다. 한국인이 한국국민을 개처럼 잡게 만드는 cia의 비열한 지랄에 나는 분노했다. 격분한 나는 미국을 증오하며, 미국이 망하길 기도하며, 미국이 망할 수 있는 언행에 충실하고 있다. <중략>

 

 

    예강32  

 

유럽의회, 英·獨 등 CIA 비밀 감옥 운영 비난 보고서 승인

2007년 2월 14일 (수) 22:14   뉴시스

 
스트라스부르=AP/뉴시스】

유럽 의회가 미 중앙정보부(CIA)의 유럽 내 비밀 감옥 운영을 사실상 묵인한 일부 유럽국들을 비난하는 내용의 최종보고서를 승인했다.

유럽의회는 14일 찬성 382 대 반대 256(부재 74)으로 CIA가 테러 용의자들을 비행편을 통해 비밀 감옥으로 이송한 것을 묵과한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일부 유럽국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승인했다.

유럽의회 특별 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가 1년여 간의 면밀한 조사를 통해 제출된 이번 보고서는 이들 정부들이 용의자 이송을 눈 감아줌으써 사실상 CIA의 비밀 감옥 운영을 묵과했다며 이들 정부 역시 비밀 감옥 운영 공범이라고 비난했다. 보고서는 하지만 비밀 감옥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CIA의 유럽 내 비밀 감옥 운영 논란은 지난 2005년 11월 미
워싱턴포스트가 폭로하면서 처음 불거졌다. 이에 유럽의회 조사위는 지난 1월부터 관련 조사를 유럽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를 계속해왔다.

한편 조사 과정에서 일었던 영국의 조사 협조 거부에 관한 사항은 보고서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담당 집행위원의 증언 거부에 대한 비난은 포함됐다.

엄성원기자 swum@newsis.com

촌평) CIA의 비밀 감옥 ? 흐흐, 안산 감옥하고 유사 ? 이 새끼덜!! 하늘나라 올라오면 지옥으로 직행이다.

 

  

    예강33  

스위스, "CIA 납치 의혹 조사하겠다"

2007년 2월 14일 (수) 22:39   뉴시스

 

【베른(스위스)=AP/뉴시스】

스위스 정부가 미 중앙정보부(CIA)가 이슬람 성직자를 납치, 이집트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성직자가 탄 항공기가 자국 영공을 통과했다는 보도와 관련, 자국 검찰에게 관련 조사를 명령할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내각은 14일 성명을 발표하고 CIA가 비밀 작전을 통해 아부 오마르로 알려진 이집트 출신의 이슬람 성직자 오사마 하산 무스타파 나스르를 이탈리아에서 납치, 독일을 경유해 이집트로 이송하는 도중 오마르가 탄 항공기가 자국 영공을 통과했다는 보도에 대한 관련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각은 특히 피랍에 자국 영공이 이용됐다는 사실을 용인할 수 없다며 검찰에 관련 조사를 지시하겠다고 전했다.

오마르는 지난 2003년 2월17일 이탈리아 밀라노 거리에서 CIA에 납치됐으며 이후 이집트로 이송돼 수사관들에게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마르는 피랍 약 4년만인 지난 11일 석방됐다.

CIA는 지난 수년간 유럽 각국에서 테러 용의자들을 대상으로 불법적인 납치와 감금 등 비밀작전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오마르 납치 역시 이의 일환으로 보인다.

엄성원기자 swum@newsis.com

촌평1) 용인할 수 없다며 검찰에 관련 조사를 지시 ? 조사만 하지 말고 응징해야 한다. 비밀 조직원 색출해서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

촌평2) 불법적인 납치와 감금 등 비밀작전을 수행 ? 음, 나는 용서하는 방법이 특별하다. 음, cia 애덜을 납치 감금한다. 그리고 비오는 날, 누구 몰래 개패듯 패야 한다.

         항상,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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