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뉴욕의 자생적 금융조직 투달러시스템, 커브마켙이 지금의 나스닥으로 도약, 발전했다. 뉴욕의 금융력 발전에 비례하여 나의 세계금융력도 독학의 발전과정을 밟았다.  나는 정치권을 움직여 코스닥설립을 기초했다. 중기업증권거래소 등 코스닥은 내 기획대로 되지 않았다.  금융기득권확보를 위해 나를 철저히 무시하고 학력카르텔을 자랑삼는 년넘끼리 지랄했다. 코스닥의 문제를 지적한다. 코스닥을 투기와 기존거래소 개념으로 몰고간 것이다. 97년 촉발된 imf...  나의 세계금융력은 '저금리재정적자확대'를 창의케했다. imf처방과 정반대 기법이었다. 나의 끊임없는 과감한 액션은 미국을 겁먹게 했다.<예강의 저서 '파이프1' p252, p255의 (3)참조> '세계금융대공황'을 경고하며, imf위기를 극복케했다. 문제가 있었다면 내가 제시했던

 

을 변형, 변조, 취사선택, 무시하는 등 도요다의 어리석은 자기성취 사리사욕과 잘난척으로 160조원을 투입하고도 구조조정을 매듭짓지 못했다는 것이다.  1998년 5월1일, 내가 청와대로 들어가서 비서실 홍승찬과장에게 제시했던 저금리는 실질금리16%(당시 체감금리 30%이상)에서 시작되는 점진 4단계로 최종 8%이하, 재정적자는 100조원이었고, 즉시 투입이었다. 80조원이면 구조조정이 완료될 수 있었지만...  도요다는 금모으기로 imf를 극복했다고 국정홍보에 광적인 집착, 사기쳤다. 국민은 말도 안되는 장난질, 도요다의 광적인 사기홍보에 놀아났다. <중략>    나의 이런 세계금융력을 활용하여 세계최초로 '동북아영화거래소'를 설립하기로 했다. '동북아영화거래소'는 스크린쿼터제를 비웃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문화의 수호차원을 넘어 한국영화의 산업화, 세계시장 진출에 일조할 것이다.  거래소 개념이 충분한 예강은 치밀하게 기획된 영화산업화의 기반을 구축할 것이다. 한국에서 성숙된 동북아영화거래소는 적당한 시기에 동북아市로 안착된다. <중략>      

   '동북아영화거래소' 設立周備委員長 예강이 자료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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