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50주년

 

 

10월 4일은 구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사진 위)를 발사한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디스커버리 뉴스와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들은 20일 스푸트니크가 가져온 당시의 충격과 이후 이어진 우주 개척 경쟁에 대해 보도했다.

1957년 10월 4일 스푸트니크의 성공적인 발사에 대한 미국인들의 최초 반응은 충격이기보다는 경외감이었다는 것이 블룸버그 통신의 설명.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인들은 놀라움을 느꼈으나 국가 안보에 끼칠 잠재적 영향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곧바로 패닉 상태와 경고가 이어졌다. 핵탄두 장착 미사일이 미국으로 날아올 수 있다는 공포가 퍼졌던 것이다.

같은 해 11월 3일 소련은 스푸트니크 2호를 쏘아 올렸다. 이 위성에는 ‘라이카’라는 이름의 개가 태워졌다.

떠돌이 개였다가 ‘특수 훈련’을 받은 라이카는 지구상 생명체 중 최초로 우주 공간으로 나아간 존재였다. 10일 가량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라이카는 발사 후 수 시간 만에 숨졌다. 심한 스트레스와 단열재 파손 때문에 높아진 내부 온도가 사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1959년에는 미국이 두 마리의 원숭이를 우주로 보냈다가 귀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1961년 소련이 최초의 우주 비행사를 탄생시킴으로써, 미국에 대한 우주 기술 우위를 또 한번 극적으로 입증했다. 보스토크 1호의 가가린이 최초의 우주인이다. 가가린이 훈련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다음 해에는 미국이 역전극을 펼쳤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것이다. 이 후 최초의 화성 착륙, 최초의 목성 및 수성 탐사, 토성 탐사, 우주 왕복선 발사 등 대사건들이 이어졌다.

지난 50년간 지속된 우주 경쟁은 냉전 구도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이 엄청난 돈을 쏟아가며 우주 산업을 육성했던 것은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군비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구 소련이 몰락한 후 미국은 우주 산업의 독보적인 리더로 자리잡게 된다.

50년 전 스푸트니크의 발사 성공은 맹렬한 우주 개척 경쟁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1) 1957년 10월 4일 러시아 스푸트니크1호가 세계최초인공위성.

2) 1958년 미국은 익스플로러 1호가 처음

3) 1961년 가가린이 탔던 보스토크 1호

4) 1962년 글렌이 탄 프랜드쉽 7호.

5)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착륙.

 

  미 항공우주국이 최근 공개한 투명하고 커다란 달 이 사진이 해외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대기는 가시광선 중 푸른색 파장을 산란하기 때문에 지구 주변이 파랗게 보이게 된다. 그런데 높이 올라갈수록 대기는 옅어지고 결국은 사라진다. 이 때 파란색 무리(halo)가 우주의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사라지는 듯한 모습이 연출된다. 미 항공우주국이 최근 공개한 사진은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가 2006년 고도 335km에서 촬영한 것으로, 사진 속에서 달은 투명한 모습으로 떠오르고 있다. 외계의 낯선 행성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신비한 모습이다. 기술적으로는 지구의 대기와 우주를 나누는 절대적 구분선은 존재하지 않지만, 이론적 편의를 위해 지표로부터 약 100km 지점을 대기권의 최상부로 여긴다는 게 미 항공우주국의 설명. 그 고도를 넘어서면 지구에 발딪고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색깔의 달이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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