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촌 기념비

 

  한국의 정치불안과 빈곤으로 인한 한인들의 연해주 이주가 시작되었던 1863년, 양치해, 지신허 등 하산지역 남쪽을 중심으로 최초의 한인촌이 생겨났다.  1870년대에 8,400명으로 집계된 연해주 한인 이주민의 수가 1923년에는 12,000명까지 이르게 되었음. 

  1929년 하산지역 북부의 포세에트구 한인마을은 한인극장과 문화회관은 물론 한인 자치기관을 두고 있었으며, 행정기관에서는 한글을 사용하는 등 한인정착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듯이 보였음.

그러나 1937년 소비에트 인민위원회의 강제이주 명령에 의해 2차례에 걸친 연해주 한인 강제이주가 집행되면서 현재 러시아·CIS 국가에 산재해 있는 고려인 동포들의 한과 설움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임.

 

  이렇게 붕괴된 한인촌은 일제침략시 항일운동에 크게 기여한 지역으로 많은 독립지사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1999.8월 한민족연구소가 3.1 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연해주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기리고 재러 고려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신한촌 기념비를 설립하였음.

 

    이에 '2002 한·러 친선특급 시베리아철도 대장정'도 항일 독립운동사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신한촌 항일운동 기념비 앞에서 그 첫발을 시작하였음.

 

 

  

신한촌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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