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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돈강의 고려인

 

 

<kbs 앵커 멘트>

구 소연방에 사는 고려인들, 흔히 연해주와 중앙아시아를 떠올리기 쉽습니다만 러시아 남부 돈 강 유역에도 10만 명이 넘게 살고 있다는 사실, 아시는 분 많지 않을 겁니다.

고달팠던 근대사의 물결에 휩쓸려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다시 러시아 남쪽까지 유랑의 길을 떠났던 동포들인데요. 역사적 조국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지난 채 살아가는 돈 강의 고려인들을 신성범 특파원이 만났습니다.

<리포트>

돈(Don)강은 깊고 넓었습니다. 수천톤짜리 유조선이 지나다닐 정도입니다. 제정 러시아 시절 농민들이 저항의 깃발을 올렸던 '스텐카라친' 반란의 고향이자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의 무대입니다.

돈강의 하구로 아조프해와 맞닿은 아조프 마을... 김 미하일 일리치씨는 아침부터 바빴습니다. 김씨는 고려인으로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농장의 주인입니다.

<녹취> "(뭘 심었어요?) 감자 심었어요. (내년에는 뭐하시려고?) 내년에는 파를 할 예정입니다."

올해 추수를 끝낸 들판은 내년 농사준비에 한창입니다. 김 씨의 농장은 전체 넓이가 3천 헥타아르, 서울 여의도 면적의 3배가 넘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중앙 아시아에서 넘어와 이 땅에서 52년째 살고 있습니다.

<녹취> 김 미하일 일리치('미르농장'주인) :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살다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일곱 살 때 이곳 로스토프로 이사를 왔어요."

부모님이 새벽부터 밤까지 땅에 붙어 살다시피 하며 물려준 토지에 돈이 생길 때마다 땅을 사 모아 이 농장을 일궈냈습니다. 밭 한가운데는 인부들이 농사철 때 먹고 자는 농막이 있습니다.

농삿일이 한창일 때는 500명이 넘는 인부가 동원되고 겨울에도 예순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현지 러시아 사람들이지만 중요한 직책은 고려인들에게 맡겼습니다.

저장 창고는 배추와 양파 당근... 올해 수확했다가 팔고 남은 야채로 가득차 있습니다. 저장창고 책임자는 한국말은 서툴지만 모두 고려인입니다.

<녹취> 박 알렉산드르 : "(밀양박씨입니까?) 충주 박 씨입니다."

친인척끼리,동포들끼리 도와주면서 살고 있는 고려인 농장입니다.

<녹취> 이바신카('미르농장'직원) : "열심히 일하는 고려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김씨와는 12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김씨의 가족사에는 고려인들의 겪어야했던 유랑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어머니 이정숙 할머니는 어릴적 한글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원동,즉 소련 연해주에 살다가 스탈린의 명령으로 짐을 싸야 했던 1937년의 그 날을 할머니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녹취> 이정숙(김미하일 어머니/92세) : "가슬(가을),그해 팔월열닷새날 우리 바곤(화물열차)에 앉았지 그리(그렇게)추울때는 아니었지"

짐짝처럼 화물열차에 실려 수만리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오는 도중 많은 고려인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녹취> 이정숙(김미하일 어머니/92세) : "고생했어...스물사흘(23일)을 왔어 스물사흘을 왔어 스물사흘을... 바곤(화물열차)에다 실어서.. 짐승을 싣고 다니는 그런 바곤에다 실어서"

할머니는 먼 고향 고려땅과 김치,국수맛을 잊지 못하는 영원한 고려 사람이었습니다. 김 미하일씨의 큰 딸 비올레타는 러시아에서 나고 자란 고려인 4세입니다. 올해 서른 아홉, 할머니,아버지 세대가 겪은 고초는 익히 알고 있지만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숙명입니다.

<녹취> 김 비올레타(김미하일 딸/39세) : "고려인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그 역사적 조국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지금은 러시아라는 작은 조국이 있고 스스로를 러시아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아들과 손녀,그리고 증손자들... 이정숙 할머니 가족은 이제 4대째 돈 강 부근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아조프 옆 바타이스크 마을... 오 보리스씨의 집을 찾았습니다. 한국 취재진이 왔다는 소식에 한 동네에 사는 고려인들이 모였습니다.

<녹취> 이 지니야 바타이스크 거주/60세) :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 (몇년도에?) 1953년도에"

러시아말과 한국말이 섞이긴 했지만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 러시아 땅에서 기반을 잡고 지역에서 신망이 높다고들 했습니다. 이제 관심은 자기의 뿌리를 찾는대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제두시카 할아버지 오가이 모이세이 할머니 박 마리나. 오 보리스씨는 어렸을 적 어른들한테 들었던 모든 기억을 되살려 러시아어로 간이 족보를 만들었습니다. 할어버지 윗대부터는 모두 독자였습니다.

그러나 해주 오씨라는 것외에는 할아버지 윗 대는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돈강 유역의 중심도시 로스토프 나 도누, 이곳을 중심으로 러시아 남부에는 약 10만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습니다. 연해주에서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던 고려인들이 1953년 스탈린 사망이후 거주제한이 풀리면서 살 곳을 찾아 기후 좋고 땅이 기름진 이 곳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로스토프 나 도누에 있는 한국어 교육원, 5년 전 문을 연 이곳에서 400명이 넘은 고려인들이 한글을 배우고 있습니다. 젊은 여성은 노래방 반주기로 한국 노래를 틀어놓고 한글 공부를 합니다. 노래가사의 한글발음을 러시아어로 그대로 적어서 따라 부릅니다. 이날 저녁 나 마리나는 무대위에 섰습니다. 고려인들의 잔치로 로스토프 부근은 물론 수백리 떨어진 지방에서까지 동포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모였습니다.

<녹취> "한국 한번 보고 죽었으면 하는 게 원입니다."

동포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한국 음악과 춤이 큰 인기입니다. 한국 땅을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고려인 5,6세 청소년들이 능숙하게 이효리춤을 춥니다.

<녹취> "(음악을 어디서 들었나?) 디스크에서"

끊어졌던 고국에 대한 관심은 민족적인 자부심과 함께 더 커지고 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고국, 한반도를 역사적 조국이라고 부르는 돈 강의 고려인들.... 이들은 비록 국적은 러시아지만 뿌리와 핏줄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는 동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7월 저희 프로그램에서 소개해드렸던 아프리카 부시맨, 강제 이주 됐던 부시맨들이 보츠와나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 이겨서 2만년 삶의 터전으로 돌아갈 길이 열렸다는 소식입니다. 망향의 한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고려인들에게도 고국 땅을 밟을 수 있는 기회가 보다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국제] 신성범 기자
입력시간 : 2006.12.1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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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고려인> ⑦계 니콜라이 독립운동가후손협회장 

2007년 2월 26일 (월) 07:00   연합뉴스

 

(알마티=연합뉴스) 유창엽 특파원 = "고려인들에게 가장 비극적인 일은 한국어를 못배웠다는 사실입니다."

독립운동가 계봉우(1880~1959) 선생의 손자로 현재 카자흐스탄 독립운동가 후손협회장을 맡고 있는 계 니콜라이(56) 씨는 지난 2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특히 지금의 젊은 고려인들이 한국어를 못배운 데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계 회장은 "고려인들이 70년간 모국과 떨어져 살며 소련 당국의 사상정책으로 사고방식마저 바뀌었다"며 "젊은 세대 고려인들이 한국어를 잘 몰라도 아쉬울 게 없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진실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크질 오르다에서 대학을 나와 17년간 체육교수를 지낸 계 회장은 자신도 한국어실력이 부족해 요즘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면서 고려인들의 한국문화와 역사, 언어 교육을 위한 한국 당국의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993년 알마티로 이주한 뒤 '알마티 스포츠강화협회'에서 후진에게 탁구를 가르치는 계 회장은 카자흐 독립운동가 후손협회 일을 주도해온 인물 중의 한명이다.

홍범도, 이동휘, 계봉우, 김경천 등 중앙아시아와 연관있는 독립운동가 15명을 기리기 위해 1998년 독립운동가 후손 300여명이 세운 협회는 삼일절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 등의 행사를 주관하고 독립운동사를 알리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1년부터 협회장을 맡아온 계 회장은 "삼일절 등의 행사에는 인접국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등의 '뜻있는' 고려인들도 초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독립국가연합(CIS) 전역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중 카자흐와 러시아 거주 고려인들만이 공식적인 독립운동가후손협회를 결성해 활동중"이라고 설명했다.

함경도 영흥 출신인 계봉우 선생은 이동휘 선생을 따라 신민회에 가입한 뒤 1911년
북간도로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연해주로 옮겨 역사와 국어를 가르치다 1937년 카자흐 크질 오르다로 강제이주 당한 뒤 79세의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역사가이자 정치인으로서 활동하면서 독립의식을 고취한 계 선생은 1860년대 이래 연해주 고려인의 이주개척과 그들의 항일독립운동사를 담은 '아령실기' 등의 역사물을 1920년 상해판 '독립신문'에 연재했다. 또 '조선역사', '국어(조선어)', '조선지리' 등의 교과서 편찬을 주도했다.

할아버지인 계봉우 선생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느냐는 질문에 계회장은 "8살때 돌아가셔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서도 "할아버지께서 언젠가 비누거품으로 면도하시다 장난삼아 제 얼굴에 비눗거품을 묻히셔서 울음을 터뜨렸는데 할아버지께서 이를 두고 몹시 속상해 하실 정도로 여리고 자상한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계 회장은 "큰 아버지께서 어려운 생계를 이어가시다가 병으로 40세에 작고하신 후 둘째인 제 부친께서 할아버지를 모셨다"면서 "당시 아버지께서 어려운 살림에도 할아버지께서 식전 술로 드시는 보드카 50g은 매일 챙겨드렸다"고 회고했다.

그는 "할아버지 슬하 4남1녀 중 막내인 삼촌(계학림(81))께서 역사교사를 지내셨으며, 1938년 이후 카자흐내 고려학교들이 폐쇄된 이후엔 할아버지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해 후학들에게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yct9423@yna.co.kr    (끝)    <모바일로 보는 연합뉴스 7070+NATE/ⓝ/ez-i><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촌평) 카자흐스탄 독립운동가 후손협회장을 맡고 있는 계 니콜라이(56) 씨 ?  흐흐, 예강철 제작소 준공식 초청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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