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약탈문화재 반환 요구 차단,

국내 전시도 프랑스 동의 있어야

입력 2011.04.13 21:11 | 수정 2011.04.13 23:37

의궤 반환 합의문 문제점·예상되는 논란

경향신문 | 황경상 기자 | 한국과 프랑스 정부가 체결한 '외규장각 조선왕조 의궤'에 관한 합의문에는 논란이 될 만한 부분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그간 정부는 '대여가 아닌 반환이 돼야 한다'는 비판이 있을 때마다 '명분보다 실리를 챙긴 협상'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합의문의 구체 내용에 대해선 언급을 피해 왔다. 문화연대와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가 입수해 13일 공개한 합의문을 보면, 정부의 회피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해석의 여지에 따라 '굴욕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는 불리한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번 합의문을 통해 다른 약탈문화재에 대한 반환 요구를 할 수 없게 만든 부분이다. 합의문 제4조는 "의궤들의 대여는 유일한 성격을 지니는 행위로써 그 어떤 다른 상황에서도 원용될 수 없으며, 선례를 구성하지 아니한다. 이는 문화재 반환요청 관련 당사자들을 대립되게 했던 분쟁에 최종적인 답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향후 외규장각 의궤의 영구대여·반환 등의 요구를 하더라도 들어주지 않을뿐더러, 외규장각 의궤 이외의 약탈문화재는 일절 돌려주지 않겠다는 '못박기'로 해석되는 규정이다.

반환받은 의궤를 국내에서 활용하는데도 지나친 간섭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5조는 "제3자 기관이 임시전시 목적으로 한 권 또는 여러 권 의궤들의 대여를 요청할 경우 이는 양측의 합의에 맡긴다. 동 의궤들의 대중 전시시에는 동 합의문을 언급한다"고 돼 있다. 규정에 따르면
국립중앙박물관이 7월 예정하고 있는 의궤 특별전시전도 프랑스 측의 동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당초 외규장각 의궤 1차분 반환에 맞춰 우리 측이 기획한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취소된 것도 프랑스 측이 거부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문에 잠복해 있는 또 하나의 주요 쟁점은 그간 정부가 주장해 온 '사실상의 영구대여'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합의문 제1조를 보면 "동 대여는 갱신되는 5년 단위 기간으로 한다"고만 돼 있다. 또 합의문 전체의 유효기간을 규정한 제10조 또한 "금번 합의는 5년 기간으로 체결한다. 동 합의는 양 당사자가 외교채널을 통해 서면 통보함으로써 5년 단위 기간으로 갱신된다"고 돼 있다. 결국 합의문에는 어디에도 '영구 대여'를 위한 양국의 합의나 노력을 명시해 놓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협상 당시 합의문에 '영구'라는 표현이 명시돼 있지 않아도 일단 책들이 모두 돌아오면 갱신 형식으로 사실상 영구 대여가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상의 영구대여'라는 정부의 해석은 과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 문화연대 측의 주장이다. 더욱이 제3조를 보면 의궤는 대여가 갱신되는 시점인 2016년에 프랑스로 다시 한번 돌아가야 한다. 합의문은 "한국 측 당사자는 2015년과 2016년에 한국 문화재를 주제로 하여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전시회 및 양국간 교류를 위해, 금번 합의 대상이 되는 의궤들이 가용될 수 있도록 한다"고 돼 있다. 만일 프랑스 측이 갱신 시점에서 의궤를 돌려받은 뒤 태도를 바꾸어도, 합의문에는 이에 대응할 근거 조항이 없는 셈이다.

문화연대 측은 제6조에 명시된 "관련 비용은 한국 측 당사자가 부담한다"는 내용도 굴욕적이라고 평가했다. 약탈문화재를 반환받는데 우리 측에서만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이탈리아는
오벨리스크를 이집트에 돌려줄 때 이탈리아 정부가 관련 비용을 부담했다는 것이다. 단국대 김문식 교수(사학)는 "사실이라면 반발이 예상되며 진상 확인을 통해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황경상 기자 >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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