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강1  

"내 방에 들어오지 말랬잖아! 100대 맞아!"

오마이뉴스 | 입력 2011.04.27 14:07

[오마이뉴스 김미영 기자]

"으앙~~앙 앙 앙~~. 푸름이 너 물어내~!! 내 방에 절대 들어오지 말랬잖아! 흑흑흑. 김푸름 너 100대 맞아야 해! 으앙~~~~~"

여름이가 갑자기 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앙칼지게 푸름이를 야단치며 제 분을 삭이지 못해 난리가 났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1년 후에 '딸랑딸랑' 소리 들으려고 했는데..."

"여름아! 왜? 무슨 일이니?"

"엄마! 김푸름이 내 달걀을 깨뜨렸어요. 흑흑흑"

"뭐라고?"

"으앙~~~ 내 달걀 깨뜨렸다고요!"

이런, 낭패다. 그 달걀은 지난 주 여름이가 글쓰기 교실에서 선생님께 받아온 것이다. 부활절을 기념해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한 개씩 나눠 주신 모양이다. 달걀을 나눠 주시면서 고이 간직하고 있으면 일 년 후에 달걀을 흔들었을 때 '딸랑딸랑'하는 소리가 난다고 하셨단다. 여름이는 일 년을 보관할 요량으로 달걀을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대에 차서 나에게 '딸랑딸랑' 소리를 들려주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여름이가 책상 위에 놓아 둔 달걀을 푸름이가 가지고 나온 일이 있었다. 그것을 본 여름이는 화들짝 놀라며 갖은 아양을 떨어 푸름이를 달래 푸름이 손에 있던 달걀을 아주 소중하게 건네받았었다. 그리고 깨뜨리지 않아 다행이라며 안도 했었다. 더 깊숙하게 숨겨 둔다고 했었는데 푸름이가 어떻게 여름이가 숨겨둔 깊숙한 곳을 찾아내 달걀을 깨뜨린 걸까.

그때, 여름이는 제 방문 앞에 경고문까지 붙여 놓았었다. 그 경고문에는 푸름이가 들어와서 제 물건을 만지면 '100대 맞는다'라고 빨간 글씨로 써 있었다. 사실 푸름이가 여름이 물건을 만지고 어지럽히고 고장 낸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참다참다 못해 여름이는 경고문을 써서 붙여 놓았던 것이다.

 

"여름이가 얼마나 속상할지 엄마도 알아"

나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상처 난 여름이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일이 우선이었다. 여름이에게 얼마나 소중한 달걀인지 알고 있는 내 마음도 여름이처럼 아팠다. 여름이가 얼마나 속상할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달래줘야 하나. 너무 화가 난 여름이는 내 말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푸름이를 원망하면서 울고 있었다.

일단 나는 푸름이를 피해 여름이를 데리고 여름이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가 정신없다. 요즘 푸름이는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이런저런 말썽을 일으킨다. 여름이가 제 책상 위 한켠에 놓아 둔 머리핀 서랍에 달걀을 담아 두었는데 푸름이가 거기까지 뒤진 모양이다. 누나 의자를 딛고 책상 위까지 올라가 머리핀 서랍 속의 달걀을 꺼내 떨어뜨린 것이다.

"여름아! 울지 말고 엄마 말을 좀 들어봐. 여름이가 얼마나 속상할지 엄마도 알아. 엄마한테 일 년 후에 '딸랑딸랑'소리도 들려준다고 했었잖니. 그런데 여름아, 푸름이는 아직 너무 어려서 여름이가 그렇게 화를 내도 자기가 잘못한 걸 잘 몰라. 여름이 마음이 속상하겠지만, 여름이가 푸름이를 좀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여름이는 대답이 없다. 나는 다시 한번 간곡하게 여름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여름아, 엄마가 선생님께 혹시 나눠 주시고 남은 달걀이 있는지 여쭤볼게. 있으시다면 엄마가 사정을 말씀드리고 한 개 달라고 부탁드려볼게. 그러니까 화 좀 풀어라~"

"엄마, 달걀이 있을까?"

"글쎄, 그건 모르지만 여쭤보기는 할게. 음... 만약 남아 있는 달걀이 없으면 엄마가 똑같이 만들어줄게."

"그림은 어떻게 하구?"

"아직 깨진 달걀이 있으니까 그거 보고 똑같이 엄마가 그려줄게"

"엄마, 그럼 꼭 달걀 구해줘야 해"

"그래, 알았어"

엄마도 6살 터울 남매와 함께 자랍니다

그제야 여름이는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달걀을 구해보겠다는 내 말에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금방 푸름이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아무것도 모르는 푸름이는 저 혼자 신이나 놀고 있다. 그런 푸름이 옆으로 가더니 여름이가 푸름이를 안고 이야기를 한다.

"푸름아, 누나가 미안해. 아까 누나가 너무 화가 나서 너한테 말을 막해서 너도 기분이 나쁘지? 나도 너가 내 물건을 망가뜨리면 기분이 나뻐. 다음부터는 누나도 말 막 안 할테니까 너도 누나꺼 함부로 만지지 말아줘, 알았지?"

누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푸름이는 여전히 제 놀이에 빠져 있고, 동생이 알아 들었는지 못알아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여름이도 그런 푸름이 옆에서 놀이를 거든다. 그렇게 금세 화해를 한 남매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범한 일상이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고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여름이를 낳았을 때, 아이는 하나로 족하다고 생각 했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내다가 그 마음이 바뀌어 6년이나 터울 지는 푸름이를 낳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둘 낳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옹골차게 잘 키우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늘 갖고 있던 소신과 원칙이 그저 이론이 될 뿐, 정작 아이 앞에선 무너지기도 한다. 그 무너진 소신과 원칙을 새로 세우기를 반복 하면서 나도 아이들과 함께 조금씩 자라는 것 같다.

내일은 잊지 말고 글쓰기 선생님을 뵙고 꼭 여쭈어 봐야겠다. 그리고 구할 수 없으면 여름이에게 한 약속을 지켜 내가 직접 만들어 줄 생각이다. 거실 가운데 나란히 앉아 남매임을 자랑하고 있는 사랑스런 두 아이와 함께 여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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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강2  

[노컷뉴스 김효희 기자]

이집트 교사가 겁먹은 어린 학생들에게 심한 체벌을 가하는 영상이 공개돼 논란 끝에 결국 체포됐다고 지난 27일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 등 외신들이 전했다.

☞ 여아 머리채 잡고 체벌하는 이집트 교사 영상 보러 가기

이달 초 공개된 이 영상은 이집트 가르비야주 교사 마그디 엘-샤르가 5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아이들 숙제검사를 하다가 겁먹은 여학생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자로 마구 때리는 등 지나친 체벌을 가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숙제검사를 위해 줄지어 선 어린 학생들은 엘-샤르가 소리를 지르며 나무 자를 치켜들자, 하나같이 몸을 움츠리며 겁먹은 모습이다. 자에 손바닥이나 목 뒤 등을 맞은 아이들은 울거나 뒤로 몸을 피하려고 했다.

핑크색 옷을 입은 한 여학생은 유난히 겁을 먹고 몸부림을 치다가 엘-샤르에게 머리채를 잡혔다. 이 학생이 울음을 터트리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은 엘-샤르는 학생의 몸 여기저기를 자로 내리쳤다.

이날 최소 10명의 어린아이들이 체벌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괴로워하는 아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의 웃음소리가 함께 녹음됐다. 엘-샤르도 웃음을 머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데일리메일은 당시 교실에는 이 모습을 지켜본 성인이 두명 이상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집트 핵교는 '체벌로 악명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2008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지역에서 교사가 학생을 자로 때리고 배를 주먹으로 쳐 체포된 바 있다'고 전했다.

해외누리꾼들은 '불쌍한 아이들' '사람 맞나' '충격적이다' '이 사람 만나서 얘기 좀 하고 싶다' 등 댓글을 올리며 비난을 쏟아냈다.

tenderkim@cbs.co.kr 저작권자ⓒ CBS 노컷뉴스(www.nocut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촌평) 소름 돋는다. 나도 이런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나무자가 아닌 대나무 큰 자로... 학대음란증의 전형이다. 교단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

 

촌평1) 아주 여리고 여린 어린 애덜을 학대하는 동영상을 보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 내가 이집트 권력자였다면, 정말로!! 사지를 찢어 죽인다! 대가리를 도끼로 내리찍는 것은 기본. 이 넘이 너무 지옥을 몰라요. 난 지옥체험이 많지. 난 악에 대해 더 악하다. 왜? 싸우는 영이기 때문이다 = 여호와 나의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나의 칼있으마.

 

  

  예강3  

한나라-한대련 `등록금 인하' 설전

연합뉴스 | 조현철 | 입력 2011.06.11 11:29

황여우 "인하 의지 확고" 한대련 "반값 실현해야"

(서울=연합뉴스) 김범현 이한승 기자 = 한나라당 황여우 원내대표가 10일 오후 숙명여대 100주년기념관에서 가진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회장단과의 `대학등록금 면담'에서는 시종일관 긴장감이 흘렀다.

이날 한대련의 대규모
촛불집회가 예고된 민감한 상황 때문인지 면담에 앞서 한나라당과 한대련은 면담 공개 여부를 놓고 한차례 신경전을 벌였다. 이로 인해 면담은 예정보다 30분 늦게 시작됐다.

공개된 면담에서 황 원내대표는 등록금 부담완화를 위한 한나라당의 의지를 설명하는 데 주력했지만, 한대련 측은 등록금 문제에 대한 울분을 터뜨리며 정부ㆍ여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황 원내대표는 "등록금 인하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며 등록금 인하, 장학금제도 확대,
학자금대출 개선 등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3개 트랙'을 소개한 뒤 "국민의 의견을 모아 정부와 협상하고, 6월까지는 마칠 것"이라며 한대련 측의 의견을 구했다.

한대련 학생들은 "실망스럽다", "국가가 교육공공성을 저해하고 있다", "정부ㆍ여당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등의 비판적 태도를 고수하며 반값 등록금 공약 미실현에 대한 사과를 촉구했다.

그러나 황 원내대표는 "오늘 모임 취지가 사과를 받는 것이냐 등록금을 이야기하는 것이냐"고 반문하면서 "사과가 필요하면 당에서 얘기해볼 것"이라며 사실상 수용하지 않았다.

나아가 과거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 공약'을 놓고도 설전이 벌어졌다.

한대련 소속 한 학생은 "황 원내대표가 한나라당 대선 공약인 반값 등록금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했다"고 몰아부쳤지만, 황 원내대표는 "언제 어디서 말했는지 확실히 말해달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이에 일부 학생은 "반값 등록금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아니라고 하면 오늘 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반값 등록금을 할지 말지를 말해 달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배석한 황영철 의원은 "여러분이 진정성있게 등록금 문제를 고민하는지 되묻고 싶다"며 "여러분의 기본 사고는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비판적인데, 선을 갈라놓고 출발하면 안되지 않겠느냐"며 한나라당이 등록금 문제에 진정성있는 접근을 하고 있음을 역설했다.

또한 황 원내대표가 "등록금을 낮추지만
도덕적 해이에 빠질 정도는 어렵다"고 말하자, 한대련 의장인 박자은 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사과도 없는 정치인들의 도덕적 해이 아니냐"고 따졌다.

이날 촛불집회를 놓고도 황 원내대표가 "법 기준에 잘맞추면 당이 왈가왈부할 수 없다. 다만 정치적으로 변질될까 그런 걱정은 한다"고 말하자, 박자은 회장은 "그렇게 말해 안타깝다. 평화로운 시위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황 원내대표는 당 일각에서 제시된 장학금 지원 기준에 대한 학생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B학점', `하위' 등은 잊어라. 장학금 개념이었는데 정정시켰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면담이 예정 시간을 넘겨 2시간20분 가량 이어졌고, 황 원내대표는 면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학생들의 앙금이 쉽게 풀리겠느냐"며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kbeomh@yna.co.kr jesus7864@yna.co.kr (끝) < 긴급속보 SMS 신청 > < 포토 매거진 > < M-SPORTS >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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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7.2255 = '반값등록금' 2차 국민 촛불집회…1천명 참가

2011.0620.1615 = '세상에'..등록금이 총장부부 파출부 월급...

2011.0620.1640 = 한국 대학 등록금 OECD 3위‥"정부 지원 늘려야"

2011.0620.1835 = 한대련 "'반값등록금 불가' 발언 무책임"

2011.0622.1844 ='등록금 적립금 전환 금지법' 상임위 통과

2011.0623.1418 = "등록금 못 내린다" 정부-사립대 여전한 입장 차

2011.0624.1824 = 국립대, 9년간 기성회비 3조원 교직원에 지급

 

 시각장애인의 꿈은 ‘안마사’가 아니에요”

파이낸셜뉴스|입력 2011.11.07 16:03 |수정 2011.11.07 17:29

"책을 통해 그들의 '눈'이 되다" 한국점자도서관 육근해 관장

"많은 시각장애아들이 어려서부터 '난 안마사가 될거야'라고 말합니다. 수학자, 과학자도 얼마든지 될 수 있는데 말이죠. 시각장애인들은 굉장히 논리적이고 암기력도 좋거든요."

세상의 빛을 잃은 이들이 마음의 빛마저 잃는게 걱정 됐을까. 한국점자도서관 육근해 관장(50)의 말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는 보이지 않아도 읽고 생각하고 꿈꿀 수 있다고 믿어 외길을 걸어왔다. 바로 한 권의 '책'을 통해서다.


▲ 한국점자도서관 육근해 관장

육 관장의 부친 고(故) 육병일 관장은 우리나라 최초로 점자도서관을 세웠다. 그는 10살 때 시력을 잃어 시각장애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1969년 사재를 털어 점자도서관을 세우고 책을 만들었다. 당시 일곱살 아이였던 육 관장은 그런 아버지를 모시고 이 곳 저 곳을 함께 다녔다.

"시각장애인들이 사회적으로 굉장히 냉대를 받던 시기였어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아우 장님 재수없어'라고 말했죠. 다방에 가면 소금 뿌리면서 쫓아내고, 버스나 택시를 타는 것도 하늘에 별따기였습니다." 육근해 관장은 당시 기억을 이렇게 떠올렸다. 고(故) 육병일 관장은 시각장애인들이 이렇듯 천대 받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책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이 공부할 기회를 주고, 나아가 스스로 살아갈 길을 열어주고 싶어 종로 일대에 도서관을 세웠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지만 육 관장이 느끼는 현실은 여전히 아쉽다. "복지가 급성장했지만 아직도 '빵'을 어떻게 던져줄까를 고민해요. '빵'을 스스로 만드는 방법을 알려줘야 하는데 말이죠." 그는 시각장애인이 다양한 직업을 통해 사회적 리더로 활약하는 모습을 꿈꾸고 있었다. 인터뷰 도중 육 관장이 건넨 책 한 권엔 그런 그의 바람이 잘 담겨 있었다.


▲ 육근해 관장이 운영하는 출판사 '도서출판 점자'에서 만든 점ㆍ묵자 책. 다양한 촉각을 느낄 수 있는 페이지도 더해 시각장애인들의 이해를 도왔다.

가로가 긴 책의 왼쪽에는 주황색 바탕에 글자가, 오른쪽에는 독수리 모양의 스티커 라벨과 깃털이 달려 있었다. 독수리를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깃털은 하늘을 나는 독수리에게 정말 중요한 존재야." 비장애인도 책을 볼 수 있도록 점자와 묵자(일반 글자)를 함께 인쇄했다.

"시각장애인과 친구들이 함께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장애인은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친구도 나처럼 책을 읽는구나. 똑같구나' 생각하도록 말이죠. 점자와 묵자책을 따로 만들면 서로 소통할 수 없게 되거든요." 육 관장에게 책은 지식과 사고를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하기 위한 '매개체'였다.

책 오른편엔 독수리 모양의 스티커 라벨과 깃털들을 달았다. 독수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또 깃털은 어떤 촉감인지 알게하기 위함이었다. 눈을 감고 책을 만져봤다. 상상 속에서 독수리가 깃털을 날리며 하늘로 힘차게 날아 올랐다.

생각하는 책들을 직접 만들고 싶어 출판사도 세웠다.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된 < 도서출판 점자 > 다. "시각장애인 뿐 아니라
다문화 가정, 정신지체 장애인, 노인 등 독서장애인의 비율이 20% 정도 되요. 이 분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 노력을 인정 받아 최근에는 서울시로부터 우수 사회적 기업인 '더착한 서울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1년간 출판되는 책 5만종 중 점자책의 비중이 2%를 채 넘지 못할만큼 관심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점자도서관, 출판사를 함께 운영하는데 늘 재정상 어려움이 많다. "정부로부터 예산의 20~25%가 나오고 나머지는 후원으로 간신히 운영되는 실정이라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죠. 기계도 노화돼 바꿔야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3년차라 지원도 곧 끊기기 때문에 성공한 사회적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도서관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도 문제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이 없어요. 전부 사립이고 정부의 제도권 바깥에 있죠. 민간도서관이 각자 움직이고 점자책을 중복 제작합니다. 그러니 책이 부족해 예컨대 대학에 다니는 장애인 학생들은 4년간 자료를 어떻게 확보할 지 항상 고민해요. 중앙에서 집중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민간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야 하죠."

외국의 장애인 도서관을 직접 방문하고 공부해 한국에 맞는 모델을 찾으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미국과 스웨덴의 경우 모두 국립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민간인 경우도 예산을 거의 다 지원받죠. 국가가 나서서 만들고 각 지역의 장애인 도서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합니다."

육 관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역시 '문화'를 통해 바꾸는 것이다.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키워나가야 해요.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장애를 이해하고, 인권을 생각하고, 내 친구라 여기고, 삶 속에 자연스레 배어 문화로 자리잡는거죠. 그럴 때 장애인들이 책을 통해 마음과 생각이 풍요로워지고 삶의 만족도가 높아질거라 생각합니다."

그에게 있어 '보람'은 역시 만든 책을 보고 시각장애인들이 행복해 할 때다. "장애인 분들과 부모님들이 책이 정말 좋다, 보기 편리하다, 고맙다 이런 이야기를 하실 때 굉장히 보람을 느껴요.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죠." 지난 2008년부터는 책을 들고 시각장애인들을 찾아가는 '북버스'를 시작했다. 앞으로도 미래형 도서관을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예정이다.

인터뷰를 마친 후 우연히 찾은 육근해 관장의 블로그 제목은 다름 아닌 '함께 사는 세상'이었다. 커서가 향하는 곳곳에서 장애인과 함께해 온 그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러던 중 육 관장이 인용한 한 책 속의 글귀가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노부유키에게 색은 '사과의 빨강', '바나나의 노랑'처럼 가르쳐야 했다. 그러자 노부유키는 "그럼 오늘은 바람이 무슨 색이야?"하고 물었다. 노부유키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에 색이 있다면 바람에도 똑같이 색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 오늘은 바람이 무슨 색이죠?- 쓰지이 이츠코 著 >

책을 통해 장애인들의 문화와 생각,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humaned@fnnews.com 남형도기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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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희망을 노래하다

 

스타킹 ‘야식배달부’ 김승일씨의 제2 도전

 

국민일보 |입력 2011.11.16 17:54 |수정 2011.11.16 17:54

다시는 노래하지 않으려고 했다. 남루해진 꿈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힘에 이끌려 대중 앞에 섰다. 더벅머리에 허름한 점퍼를 입은 작은 체구의 청년은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네순도르마'(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렀다. 처연한 그의 음색에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12월 SBS TV '스타킹'에 출연한 후 성악가의 꿈을 이룬 김승일(34)씨. 그는 그렇게 우리 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7년 동안 수원에서 야식배달을 하던 그의 이야기는 꿈을 잃어버리고 사는 대중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다음 달이면 제가 세상 밖으로 나온 지 1년이 돼요. 친구들은 5년은 지난 것 같다고 그래요. 저도 그렇게 느껴져요. 아마도 그건 그동안 제게 감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난 1년 동안 그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쟁 같던 지난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성악가의 꿈에 한 발짝씩 다가갔다. 4월 경기도 문화의 전당에서 '내 생애 첫 번째 공연'을 열었다. 예매 3일 만에 2000석 가까운 전 좌석이 매진됐다. 5월엔 그와 곧잘 비교되던 폴 포츠와 함께 무대에 섰다.
제헌절엔 국회에서 애국가를 불렀고 최근엔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가 됐다. 외모도 달라졌다. 세련된 어린왕자 헤어스타일과 깔끔한 감색 콤비를 입었다. 그는 희망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길 원한다. '잃어버린 나'를 찾은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노래는 나의 힘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랑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며 노래를 불렀다. 오르막길엔 아랫배에 힘을 주고 페달을 힘껏 밟으며 고음을 냈다. 힘을 줄수록, 페달을 힘껏 밟을수록 고음은 높아졌다. 노래를 부를 때 행복했다. 수원시 가요제, 서울시 청소년 가요제, 안양시 가요제, 오산시 가요제에서 대상을 휩쓸었다. 이어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뽐내기 대회'에서 연말대상을 수상하면서 막연히 '노래가 내 인생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1994년에 경기도 청소년 성악경연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했지만 클래식보다는 대중음악이 좋았어요. 당시 서태지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을 때였지요. 가요제에서 노래를 부르며 수천명의 환호를 받은 경험 때문인지 제한된 공간에서만 연주되는 성악은 왠지 권위적인 것 같고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그가 성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르는 '카루소(Caruso)'를 듣고 나서였다. "음악을 듣는 순간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어요. 노래에 담긴 희로애락의 감성에 머릿속이 멍해지는 듯했어요. 이후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고 부르게 됐어요. 노래를 부를 때 가슴속 이야기를 풀어놓는 듯 후련해질 때도 있었지요." 멜로디는 힘이 되었다.

봉인된 꿈

96년 한양대 성악과에 합격했다. 막연한 음악에 대한 꿈을 구체화시킬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였다. 아들이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 학비 마련을 위해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그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어머니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는데 세상이 끝나는 것 같았죠. 나 때문이란 생각에 학교를 그만두고 앞으로 노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절대로 노래하지 않으리라.'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 음악은 가까이 할 수 없는 '판도라 상자' 같은 것이었다. 음악에 대한 꿈은 대학 1년을 끝으로 마음속 깊숙이 봉인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노래를 좋아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다니던 교회에도 발길을 끊었다. 성가대를 보면 노래하고 싶어질까 두려웠다.

그는 돈 때문에 맺힌 한을 풀기라도 하듯 몸이 부서지도록 일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 1시까지 일했다. 택배, 퀵서비스, 노점상, 유흥업소 전단지 배부 등 돈 벌 수 있는 일은 다했다. 그렇게 수천만원을 모았다. 그러나 친구에게 사업자금으로 빌려줬다 떼였다. 교통사고도 연거푸 났다. 스스로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싶었다. 3년을 그렇게 보냈다. 자살결심도 세 번이나 했다.

"자고나면 빚이 늘어나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라고 느껴질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조금씩 환경을 돌려놓는 힘이 있었어요. 전 성령님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잊고 살았지만 주님은 저를 잊지 않고 줄곧 지켜보고 계셨던 거지요."

야식집 사장을 꿈꾸며

야식집은 추운 겨울이 더 바빴다. 27세 때부터 7년 동안 경기도 수원시 매교동 '수원야식'에서 배달을 했다. 돈을 모아 야식집 사장이 되겠다는 소박한 꿈도 품었다. 홀로 있을 때 노래로 삶의 고단함을 덜어냈다. 우연히 휴대전화에 녹음한 노래를 들은 사장이 '스타킹'에 출연 신청을 했다. 그래도 나가지 않으려 했지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방송출연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방송이 나간 후 시청자 게시판에 130쪽이 넘은 댓글이 달리고 격려 전화도 많이 받았다. 일약 스타가 됐지만 그는 묵묵히 지난여름까지 야식배달을 계속했다. 무대에 올라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면 행복했고, 많은 사람들의 환호가 감사했지만, 방송 후 잠시 동안의 관심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니홈피엔 그의 노래를 듣고 희망이 생겼다는 사람들의 메시지들이 이어졌다. 뇌경색으로 몸져누운 어떤 분은 "당신의 노래를 듣고 삶의 희망을 찾았다"고 했다. 한 암 환우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치료를 포기했었는데 당신이 성공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서 치료받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저만을 위해 살았는데 이제 저의 노래가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고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야식배달일은 그만두고 음악공부에 매진하려고 해요. 내년에 한양대 성악과 2학년에 복학해 못 다한 학업을 계속할 겁니다. '띠 동갑' 동생들과 같이 공부할 생각에 설렘 반, 긴장 반입니다." 오랫동안 봉인된 꿈을 꺼내는 순간이었다.

음악과 함께 찾은 신앙

그는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으로 '내 생애 첫 번째 공연'을 꼽았다. 무대에 서기 전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 당신이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요. 노래를 시작하게 한 것도, 노래를 그만두게 한 것도 어머니니까 긴장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절대로 울지 않고 프로답게 할게요.' 울지 않겠다고 몇 번을 다짐했지만 첫 곡을 시작도 하기 전 가슴이 타는 듯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세상은 참 따뜻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 많이 조르셨을 것 같아요. '우리 승일이 좀 도와주세요' 그랬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어려운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젠 교회에 다시 나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는
복음성가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좋아한다. 요즘 그는 교회 초청으로 무대에 서게 되면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생각에 기쁘다고 했다.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생각도 긍정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예전엔 '내가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먼저 했는데 이젠 '하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된다고 하잖아요. 간절히 원하고 간절히 바란다면 희망은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니까요."

희망의 대장정을 꿈꾸며

그에게 소망을 물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심장병 어린이와 어려운 이웃을 돕는 '희망대장정 콘서트'를 열고 싶다고 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사랑만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저에게 노래는 희망입니다. 꿈을 이루지 못한 분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그는 무대에 서기 전 '제 노래가 희망이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는 2012년 2월(12, 14일), 5월(19, 20일) 서울 삼성동 올림푸스홀에서 '테너 김승일 독창회 초대'를 연다. 클래식, 가곡, 영화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통해 용기와 희망의 이야기를 건넨다. 그는 이제 '꿈을 꾸는 자'에서 '꿈을 주는 자'가 됐다.

글 이지현 기자·사진 홍해인 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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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내 인생] 50년 넘게 주부로 살다 팔순 앞두고 대학생 된 조재구(78)씨

"나는 10학번 대학생, 외워도 자꾸 잊어먹지만 공부가 즐거워"

조선일보 |입력 2011.11.30 23:37 |수정 2011.12.01 15:24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5남매 키우다 70대 들어 치매 초기 진단

일흔 셋에 일성여중고 입학 재작년 수능 치르고 관광일본어과 입학

받아주는 곳 있으면취업 도전하고 싶어


해마다 수능 철이 되면 신문에 "올해 수능 최고령 응시자는 ○○세 ○○○씨"라는 기사가 납니다. 2010학년도 수능 때는 제가 최고령이었어요. 경인여대 관광일본어과의 10학번입니다.

 

↑ [조선일보]1933년생 여대생 조재구(가운데)씨가 30일 오전 인천 계양구 경인여대 교정을 젊은 학생들과 함께 거닐고 있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저는 왜정(倭政) 때 초등학교 마치고 시집갔어요. 2남 3녀를 모두 시집·장가 보내고 73세 때 만학도가 다니는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 입학했지요. 꼬박 4년 걸려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수능을 치렀어요. 기자들이 별걸 다 묻더군요. "공부가 힘들지 않았느냐" "수학도 잘하느냐"…. "힘들어도 즐겁다. 수학 성적은 묻지 말라"고 했어요.

저는 아침 7시 전에 집을 나서요. 경기도 고양시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대화역까지 가서 오전 7시 30분에 출발하는 경인여대 셔틀버스를 탑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수업 듣다가 오후 5시 10분에 학교를 떠나는 셔틀버스를 타면 우리 집에 7시쯤 도착합니다. 부지런히 밥 차려 먹고 다시 공부하다가 달게 자고 다음 날 또 학교 가는 나날이에요.

좌절의 순간요? 왜 없겠어요. 기를 쓰고 공부했는데 1학년 1학기 때 일본어 듣기에서 C학점을 맞았어요. 다른 과목은 전부 A 아니면 B였지만, 그래도 어찌나 분하고 처량하던지…. 학기 마치고 1년간 휴학하면서 일본어 학원에 다녔어요. 올 9월에 복학해 두 번째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어요. 손주들한테 "할머니 열심히 공부하는 거 봐라. 너희도 정신 차리고 살라"고 했어요.

어릴 때 충남 부여에서 유복하게 자랐어요. 아버지는 농림학교를 마친 인텔리였지요. 잠깐 관리 생활을 하셨는데, 일본인들이 공출 때마다 "조선 사람들 농작물에 등급 매길 때는 무조건 상·중·하 중에 하급을 주라"고 하도 들볶아 관두셨대요. 아버지는 양반이라 당신 손으로 지푸라기 하나 집어들지 않으셨어요. 명주 두루마기 입고 논두렁에 반듯이 서서, 일하는 사람들한테 "여기 무엇을 어떻게 심어라" "고랑은 이렇게 내라" 하고 시키셨지요. 그래도 아버지가 농림학교 졸업생이라 그런지 우리 집 농사가 근동에서 제일 잘됐어요.

아버지는 신학문을 배웠지만 사고방식은 옛날 식이셨어요. 저는 어려서 공부를 참 잘했지요. 보통학교 졸업할 때 교장선생님이 우리 집까지 찾아와 "재구는 꼭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제 실력이면 학비 한 푼 안 내고 장학금 받으며 중학교를 마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저는 가슴 졸이며 듣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사양했어요. "딸들은 얌전하게 집에 있다 부모가 정해주는 짝과 맺어져야지, 집 밖으로 나다녀선 안 된다"고 하셨죠.

그 말씀 그대로 저는 집에 있다 스물세 살 때 사범학교 나온 교사와 결혼했어요. 못 가본 길에 대한 열망이 솟구칠 때마다, '자식들 키워놓고 나서…' 하고 생각했어요. 1984년 세상 떠난 남편은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저는 5남매 키우며 짬짬이 한복 바느질을 했어요.

70대에 접어들면서 자꾸만 전화번호를 잊어버려 한방병원에 찾아갔어요. 치매 초기라는 진단이 나왔어요. 깜짝 놀랐지요. 자연의 이치라면 받아들여야겠지만, 너무 빨리 진행되지 않도록 뭐든 배우자고 결심했어요. 막내아들이 일성여중 원서를 내밀더군요. 우리 집에서 서울 마포에 있는 학교까지 '버스→지하철→지하철 환승→마을버스'로 세 번 갈아타고 2시간 걸려 등교했어요. 첫날부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요. 체력을 기르려고 시간표에 없는 과목까지 전 과목 교과서를 전부 지고 다녔어요.

6~7개월 지나자 다리에 힘이 붙더군요. 고된 만큼 즐거웠어요. 몰랐던 것을 하나하나 깨치는 기쁨은 세상 다른 재미에 댈 게 아니더군요. 자식들 덕분에 금강산,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동남아 다 가봤어요. 가슴이 탁 트여 즐거웠지만, 그걸로 끝이었어요. 공부는 달랐어요.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았어요. 물론 나이가 있으니 자꾸 잊어버리지만, 100번 외워서 잊으면 101번 보면 돼요.

경인여대에 입학할 때 총장님이 저를 따로 부르셨어요.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에서는 계단 오르내릴 때 난간을 꼭 잡고 다니세요." 그 말씀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교수님들이 프린트물 나눠줄 때 제 것만 따로 한 부 확대 복사해서 주십니다. 눈이 침침해 칠판이 안 보일 때 저는 염치 불구하고 주위 학생들에게 제 공책을 들이밉니다. "교수님이 뭐라고 쓰셨니? 여기다 얼른 써줄래?"

건강이 허락하면 대학원도 가고 싶어요. 중국어도 배우고 영어도 지금보다 잘하고 싶어요. 받아주는 곳이 있다면 취업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저도 대학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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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중학생 母 "용서하려고 매일 기도한다">

연합뉴스|손대성|입력 2011.12.27 19:10|수정

가해 학생 신상공개에 "절대 안된다"

"학교 폭력 막지 못한 건 어른의 잘못"

(대구=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매일 아침 아들 영정을 보며 (가해 학생들을) 용서하려고 기도합니다."

친구 폭력에 못 이겨 자살한 대구 중학생 A(13)군의 어머니 임모(47.중학교 교사)씨는 27일 대구시내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차분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이같이 밝혔다.

 

임씨는 사건이후 1주일동안 힘든 나날을 기도로 버텨냈다.

가톨릭 신자인 임씨는 "최근에는 성당에 자주 가지 못해 불성실한 신도"라면서 "그렇지만 (하느님께)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솔직히 가해 학생들을 내 아이와 똑같이 해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며 "하지만 그건 생각일 뿐이고...모두가 어려움을 이겨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가해 학생들의 신상이 공개되는 점에 대해서도 "그건 절대 안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가해 학생의) 한 부모는 집에 찾아오고 다른 부모는 전화로 만나고 싶다는 말을 전해왔다"며 "아직 가족들이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나중에 만나자고 전했다"고 털어놨다.

임씨 역시 가해 학생과 또래인 중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이다 보니 학생의 생활을 많이 이해하는 편이다.

그러나 아직은 사건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어 용서의 마음을 굳히지는 못한 듯 보였다.

그는 "학교 폭력이 이 정도로 심할 줄 상상하지도 못했다"며 "주먹 한 대 쳤으면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않았을 것인데 우리 아이가 이 정도로 당했는지는 몰랐다"고 했다.

그는 "결국 잘 살펴보지 못한 내가 제일 잘못"이라고 자책했다.

임씨는 짧은 호흡을 가다듬고 "지금 용서가 된다면 거짓말이겠지요"라며 스스로에게 반문하는 듯한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가해 학생들이) 지은 죄만큼 벌을 받고 대신 사회봉사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면서 "아직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머뭇거리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힘들어했지만 눈물을 떨구지는 않았다.

그는 "상을 치르고 나서 가족들끼리 울지 않기로 약속했다"며 "그런데도 오늘 첫 출근을 하는 순간 운전대를 잡고 울었고, 학교 휴게실에서 혼자 펑펑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임씨는 숨진 아들이 평범하지만 모범생이었고 국사와 지리, 철학책을 많이 읽은 어른스런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A군은 검사가 돼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어머니는 전했다.

하지만 A군은 그런 꿈에 도전해보기도 전에 학교 폭력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임씨는 "착하고 평범한 사람이 잘 살아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며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 된다고 가르쳤는데 내가 잘못 가르쳐 너무 착하게 키운 게 아닌지 후회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른이 잘 못해서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겠느냐"며 "그래도 아이들에게 못되게 살라고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고 착하게 살라고 가르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폭력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알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된다는 생각에 유서를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족이 모두 패닉상태"라면서도 "그렇지만 서로 의지하고 힘든 상황을 이겨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큰 아들이 30일 방학에 들어가면 가족 모두 심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에도 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작은 애 유골을 강이나 산에 뿌리자는 말이 나왔지만 항상 가까이 보고 싶어 추모공원에 안장했다"고 덧붙였다.

sds123@yna.co.kr < 포토 매거진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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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1.1229.1837 = '중학생 자살' 가해자 3명 사법처리(종합)

 

2) 2011.1230.1837 = "또래에게 수년간 폭행당했다" 초등생이 고소

 

3) 2011.1230.2247 = 대구 '자살 중학생' 부모 "가해자 상대 손배소"국민일보

 

4) 2011.1231.1918 = 대구 '중학생 자살' 가해자 2명 구속

 

5) 2012.0101.1819 = "광주 자살 중학생 3명에게 학교폭력 당했다"

 

6) 2012.0103.1357 = 중학생의 '폭행 일기'‥고립과정 적나라

 

7) 2012.0101.1400 = 흐느끼는 광주 자살 중학생 유족들

 

8) 2012.0103.1740 = 조현오 "학교폭력, 형사법적 사고 틀 넘어 적극 대응"

 

9) 2012.0103.2247 = 가해 학부모 '적반하장'‥'폭행 일기' 수사

 

10) 2012.0106.0022 = "차라리 죽고 싶었다"…피해학생 후유증 시달려

 

11) 2012.0106.0049 =교사·친구, 보고도 못 본 척…"나도 당할까봐"

 

12) 2012.0106.0812 = 미국서 학교 폭력 가해자 흉기로 살해 '무죄'

 

13) 2012.0107.1918 = 나이 어려 구속 안돼 걱정안해” 10대, 끔찍

 

14) 2012.0107.1918 = [단독] 법원 "'적반하장 부모'도 위자료 내야"

 

15) 2012.0107.2348 = 왕따일기 학생 "성기에 전기충격도 당했다

 

16) 2012.0109.1759 = '돈셔틀' 강요ㆍ감금폭행한 마포 중학생 구속

 

17) 2012.0110.2340 = '폭력 갈취사슬'에…중고생 700여명 돈 뜯겨

 

18) 2012.0110.2340 =대구 자살중학생母, 법정서 눈물로 '엄벌'호소

 

19) 2012.0110.2340 = 대구 '자살 중학생' 항소심도 실형

 

20) 2012.0816.1223 = `왕따 자살'...학교법인 등 1억3천 배상판결 (종합)

 

21) 2012.0816.1236 = 학교폭력으로 재판 받는 중에, 신고한 후배 보복폭행

 

22) 2012.0818.1143 =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올 입시에선 '무용지물'

 

23) 2012.0820.1716 = 교과부, '學暴 기재거부' 전북교육청 특감키로

   

장애우 위해 반 친구 모두 수화

“네가 있어 더 많은 걸 배운단다” 본문


중앙일보 | 조영민 | 입력 2012.05.04 03:52 | 수정 2012.05.04 05:34

온양여고 2학년 5반의 특별한 우정

 

청력장애가 있는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반 전체 아이들이 수화를 배우고 있어 화제다. 온양여고 2학년5반에 재학중인 염유리 양과 반 아이들이 그 주인공. 학교측에서도 2년 연속 같은 담임 교사를 배정하는 등 배려를 하고 있다.

조영민 기자 < cym2060joongang.co.kr > 사진=조영회 기자 < rutcjoongang.co.kr >

 

 

염유리(가운데)양이 박소라 담임교사와 학급 친구들(김재희?배유정?최은비양)과 함께 운동장 옆 화단에서 수화를 가르쳐주고 있다.

 

"친구들 배려·도움으로 진학의 꿈 가져"

1일 오후 1시 온양여고 운동장 옆 화단에서는 몇몇 학생들과 교사가 활짝 핀 꽃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봄이라 그런지 꽃이 예쁘게 폈네. 유리야 꽃이 예쁘다를 어떻게 표현해?"

"그건 양손을 펴서 얼굴에 대고 꽃을 만든 다음에 엄지 손가락을 볼에 갖다 대면 돼.(수화)"

최은비양이 유리양에게 수화를 물어보자 유리양은 기다렸다는 듯 그것을 대답해 준다. 은비양과 유리양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다. 그래서인지 서로 눈빛만 봐도 통한다. 은비양은 수화실력도 수준급이다. 요즘 반 친구들 모두가 유리양으로 인해 수화를 배우고 관심도 높아졌지만 아직 은비양처럼 의사소통을 잘하는 친구는 드물다.

"제 꿈은 시각디자이너에요. 친구들의 많은 배려와 도움으로 꿈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죠.(수화)"

유리양은 장래희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수화로 이렇게 답했다. 요즘 유리 양은 학교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은비양을 비롯해 자신을 살갑게 대해주는 반 친구들과 자신을 잘 아는 박소라(27·여)담임 교사가 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는 유리양을 위해 필기를 도와주고 각종 준비물도 챙겨주는 생활도우미 김재희양과 학습도우미 배유정양이 있다. 이들은 박 교사가 학기초 유리양을 배려하기 위해 지정해준 도우미들이다. 유리양이 빡빡한 고등학교 생활을 버텨내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친구들 외에도 2학년 5반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유리양에게 다가가 수화를 물어보고 함께 수다를 떨며 즐거워한다. 5반 학생들은 유리양 덕분에 기본적인 수화는 모두 할 줄 알게 됐다. 비록 청각장애는 있지만 이동수업을 갈 때조차 유리양의 곁에서 함께 이동해주고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어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러한 배려는 유리양을 긍정적인 변화로 이끌었다.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생긴 유리양이 1학년 때부터 포기했었던 대학 진학에 대한 계획을 다시 수립하게 된 것이다. 이제 유리양은 한 발 한 발 자신의 꿈을 향해 정진하고 있다.

"방과후에는 학원에 다니며
포토샵일러스트를 배우고 있어요. 예전에는 공부에 별로 흥미가 없었는데 지금은 국사와 사회, 일본어 과목에 관심이 많이 가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도 가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노력도 하겠습니다.(수화)"

"유리 최선 다하는 모습 보며 도움 받아"

"수화를 배우는 게 재미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수화에 관심이 있었지만 배울 기회가 없어서 혼자 익히곤 했는데 지금은 유리와 함께 지내다 보니 일상적인 대화는 다 수화로 표현할 수 있죠."

유리의 생활 도우미 김재희양. 재희양은 요즘 수화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졌다.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유리와 보내는 덕분에 수화를 배울 기회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재희양은 생활도우미로서 유리양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다. 숙제가 있으면 알림장에 적어 유리양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자신이 챙겨 올 수 있는 준비물은 직접 가져오기도 한다. 방과후에도 유리양과 핸드폰 문자로 수다를 떠는 등 우애를 다지고 있다.

 "담임 선생님이 저에게 재희양을 많이 도와주라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도움을 받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수화도 그렇지만 유리가 모든 일에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보고 저 역시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앞으로 유리가 학교생활에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생각입니다."

 재희양은 "의사소통만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다른 친구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덧붙이며 미소를 보였다. 이 같은 생각은 유리양의 학습도우미 배유정양도 마찬가지. 유정양 역시 "유리가 지금보다 더 활발해 졌으면 좋겠다"며 "유리와 친해지고 나니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2년 연속으로 유리의 담임을 맡고 있는 박 교사는 "유리가 학우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 학교 내 행사 등에서 소외되지 않고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이젠 학급의 모든 아이들을 도우미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학급 학생들의 노력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신성순 교장은 역시 "염유리 학생의 적응은 본교 교직원 및 학생 모두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름'에 대해 인식하고, '다름'을 따뜻하게 감쌀 줄 아는 능력을 지닌 본교 구성원들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느낀다"며 "이러한 통합 교육의 사례가 널리 퍼져 학교 폭력 문제의 해결을 도울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전했다.

조영민.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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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 마비 극복' 컴퓨터 전문가 된 김태완 경위

연합뉴스 | 입력 2013.09.21 06:02 | 수정 2013.09.21 06:56

 교통위반 차량 추격 중 오른손 마비 '한 손의 컴퓨터 고수'…자격증 4개



(고창=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 "마비된 손 탓만 하면서 평생 동료의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한 손의 컴퓨터 고수(高手)' 전북 고창경찰서 김태완 경위는 컴퓨터 자격증을 따기 시작한 계기를 마비된 오른손을 어루만지며 설명했다.

 


마비된 손에도 김 경위가 보유한 컴퓨터 자격증은 모두 4종.


워드프로세서, 아마추어 무선기사, 정보기기운용기능사, 인터넷 정보관리사 등 두 손을 모두 사용하는 사람도 쉽사리 따기 어려운 자격증들이다.

그의 오른손에 불운이 찾아온 것은 1989년 8월 16일 오후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내달리던 위반 차량을 쫓으면서였다.

이날 오후 김 경위는 고창의 한 국도변에서 교통 업무를 하고 있었다.

한 화물차가 교통 법규를 위반하고 도주했고 화물차의 수상한 행동을 의심한 김 경위는 경찰오토바이를 타고 화물차를 뒤쫓았다.

화물차를 뒤쫓던 그의 오토바이는 커브길에서 균형을 잃었고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농로 옆 전신주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경찰에 임용된 지 채 3개월도 되지 않아서 일어난 사고였다.

사고 뒤 김 경위는 나흘간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른쪽
대퇴골과 오른팔 신경이 크게 손상된 뒤였다.

진단명은 '우상완신경근손상 및 우대퇴골 골절'. 다행히 대퇴부는 수술로 회복됐지만 오른손은 경과가 좋지 못했고 그 뒤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절망과 좌절의 병원생활이 끝나고 6개월 만에 현장에 복귀했지만 불편한 몸으로 경찰관의 소임을 다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결국 동료의 배려로 치안수요가 적은 파출소로 발령을 받았고 3년의 세월을 그렇게 보냈다.

항상 동료에게 짐이 된다는 부담감은 그를 짓눌렀고 더는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는 '정보통신' 분야로 눈을 돌렸다.

그는 "전문적인 손기술과 지식이 필요한 부서인 만큼 부담감도 컸다"면서 "잘해낼 수 있을지도 걱정되고 두려움도 앞섰지만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습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여유가 있을 때마다 관련 책자를 탐독했고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작은 기술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한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에 처음에는 동료도 반신반의했지만, 나중에는 그의 열정적인 모습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그를 도왔다.

6년이 지났고 2001년 9월 14일 '한 손의 컴퓨터 고수'가 탄생했다. 김 경위는 당당히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증을 따냈다.

그 뒤로 19년이라는 세월동안 그는 정보통신부서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7년간 그와 함께한 동료는 "처음에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며 "하지만 김 경위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정보통신 업무에서만큼은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7년간 그와 근무하면서 대부분의 정보통신 업무와 경찰로서 업무를 대하는 자세를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김 경위는 앞으로도 정보처리기사 등 정보통신 분야에서 '정복'하지 못한 분야에 도전할 계획이다.

그는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두 팔을 벌려 아이들을 안아 주지 못했다. 또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작은 못 하나 박아주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면서 "제가 이렇게 제 역할을 하면 살 수 있었던 것이 가족과 동료의 응원 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chinakim@yna.co.kr (끝)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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